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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속되는 분단과 별리의 역사

두 사람의 방은 '만남의 집' 이층에 있었다. 아직 짐정리가 채 끝나지 않은 듯 방구석에는 '징역보따리'가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그 방은 지난해 11월 작고한 최남규 선생이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던 방이기도 하다. 중풍으로 인해 몇 해 동안 고초를 겪으면서도 북녘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주인을 묵묵히 지켜봐온 두 평 남짓한 그 방에 이제 새로운 주인이 들어온 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은 어두웠다.

"돌아가신 최남규 선생의 피맺힌 한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최 선생은 의식을 잃어버린 뒤에도 누가 곁에서 고향이야기를 꺼내면 반사적으로 몸을 뒤척였다 하더군요. 어쩌면 감옥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세월들이 더 행복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육신의 자유는 얻었을지언정 북에 두고 온 처자를 생각하면서 보내야 하는 지금의 하루하루야말로 감옥보다 더한 징역살이 아니겠습니까?"

석방의 기쁨도, 손님들을 맞이하던 분주함도 잠깐, 두 사람의 표정은 내내 어둡기만 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보안관찰법의 족쇄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들은 남쪽 땅에서 그리운 동지들과 자신들을 후원해 준 많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칠십 노인의 가슴속에서 그리운 가족들과의 재회를 제쳐두고 그 무엇을 의미있다 하겠는가.

최남규 선생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출소장기수들이 북녘의 그리운 가족과 고향산천을 목 매이게 그리다 한 많은 기다림의 세월을 마감해야만 했던가.

"새해 첫 날, 통 한숨도 못 잤다"는 손성모, 신광수씨. 세상 사람들이 새 천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에 들떠 있을 동안 그들은 오히려 수십 년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아련히 떠오르는 가족들의 모습을 잊을 새라 기억 속의 순간 순간들을 부여안고 그들은 밤새 베갯잇을 적셨을 것이다. 이 기나긴 분단과 별리의 역사는 언제쯤 끝날까. 통일의 새 세기는 과연 언제쯤 가능할까.

덧붙이는 글 | 안영민 기자는 월간 말 취재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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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지와 민족21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는 (사)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명진TV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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