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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중세의 수도사 '호르헤'. 웃음을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편』이 '웃음을 예술로 격상시킴으로써 성직자를 타락시킨다'고 믿었으며, 이 책의 탐독을 막기 위해 살인을 불사하고 마침내 수도원까지 홀라당 태워버린 가엾은 광신자. 호르헤에게 있어 '웃음은 죄'였다.

그로부터 700여 년이 지난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썰렁함이 죄'가 되었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머감각'이 필수 덕목으로 부상했으며, 순간의 실수로 잘못 뱉은 '썰렁한' 말 한마디는 그 진실성과 무관하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한편, '대중예술계'에서는 코메디언(혹은 개그맨)의 경계가 무너졌다. 가수, 탤런트는 물론이고 아나운서에 작곡가까지 개그맨 뺨치는 '웃기는 사람들'이 등장해 상종가를 누리게 된다. 토크쇼에 불려나온 연예인들은 자신의 사생활 공개를 비롯해 '망가지기'를 마다 않고 방청객을 웃기는데 열심이다. 아예 '누가 누가 더 웃기나'를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는 토크쇼가 만들어졌다. 간혹 출연료만 축내고 사라지는 게스트들이 있으나, 이들을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각본을 따르는 코메디보다 더 '웃기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함에 따라 정체성에 위기를 느꼈음인지 개그계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다. 개그맨들이 공중파 TV를 통해 '라이브 콘서트'를 시작한 것이다.(그렇다고 생방송은 아니다) 이름하여 <개그콘서트>. 2-3년 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개그 공연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이걸 안방으로 끌어온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개그맨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면서 즐기는 라이브 공연이 TV 앞에 둘러앉은 시청자에게도 그대로의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실제로 필자는 분위기 파악 잘 못하는 중년 이상의 시청자들이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뭐가 저렇게 우습지?" 하는 반응을 종종 경험했다. (한때 X세대로 불렸던 필자조차 간혹 그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부의 냉랭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개그콘서트>는 '대박'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대박'의 원인을 참신한 신인개그맨의 등용, 라이브 특히 '앵콜개그'라는 파격적인 형식, 그 속에서 맘껏 발휘되는 개그맨들의 재치 등에서 찾았다. 과연 '앵콜개그'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놀라운 애드립은 "정말 대본없이 하는거 맞아?" 하는 의문이 들만하다. 그리고 무명의 신인 개그맨들은 '오빠부대'를 가진 대중스타로 떠올랐다.
<개그콘서트>는 정말 성공한 프로그램인가...

최근 <개그콘서트> 홈페이지 시청자 의견란에는 <개그콘서트>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재미없어요"
"심**, 김** 말고 다른 사람도 좀 띄워주세요"
"똑같은 내용 지겨워요"
"오버하지 마세요"
"썰렁해지려고 하면 무조건 성대모사로 때우는 것 같아요" 등등...

주로 10대로 추정되는 시청자들의 소박한 의견에는 놀라운 통찰력이 엿보인다. 어떤 시청자 단체는 '과거 코메디 프로그램의 악습이 살아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때문인지 얼마 전 개그콘서트는 몇몇 코너를 바꾸고 새로운 출연자들을 등용했다.)

사실 <개그콘서트>는 '형식파괴'에 따르는 위험과 함께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많은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초기부터 <개그콘서트>는 유행어를 만들고, 성대모사를 기막히게 하는 몇몇 개그맨에게 프로그램의 중심이 놓여 있었다. 이들은 분위기가 썰렁해질 위험에 빠지면, 유행어와 성대모사로 분위기를 살려내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험한 건 이 프로그램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받는 '앵콜개그'다. 개그맨들이 아무리 타고난 재치를 가졌다해도 즉흥적인 모든 상황에서 웃길 수는 없는 일. 이른바 '개인기'가 없거나 '애드립'에서 뒤떨어지는 개그맨은 동료들에게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자 물 1.8리터를 한번에 먹어치우는 등 과장된 행위가 등장했고 '개그맨이 못 웃기면 우리라도 웃긴다'는 각오로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텝이 무대로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무리수는 얼마가지 않아 날카로운 시청자들에게 '오버하지 말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연음법칙을 오용한 '덩달이' 혹은 '남희석'식의 말장난으로 버텨보지만 이 역시 언젠가는 '약발'이 떨어질 것이다.

'한 순간의 썰렁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즉흥적인 상황을 만들고, 모든 개인기를 쏟아부었던 개그맨들은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자극의 강도'에 구속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즉, 이제 웬만한 '개인기'와 '애드립'으로는 시청자의 높아진 '웃음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감히 충고 한마디하자면...
<개그콘서트>는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코메디의 어원은 '시골마을'이라고 한다. 평민, 천민들이 여러 가지 공연형식을 빌어 자신들의 시대와 지배계급을 풍자하고 비꼬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탈춤처럼 말이다.

코메디 혹은 개그는 즉흥적인 말장난이나 흉내내기에만 그 미덕이 있지 않다. 오히려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 지 모른다. 그것이 시대에 대한 풍자와 해학일 땐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연구까지 필요할 것이다.

<개그콘서트>는 '관객이 바로바로 던져주는 웃음'에 대한 강박증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상을 한번 크게 둘러보면 좋겠다. 한국처럼 비틀고 풍자할 것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건 개그맨으로서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너무 훌륭한 개그맨이 나오면 '호르헤' 같은 수구세력의 '준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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