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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에 타살된 의정부 기지촌의 마지막 '히빠리' 서정만 할머니는 미군에 의해 숨졌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19일 주한 미군 매카시 상병에 의해 이태원 여종업원이 살해된지 한달이 채 안돼 또다시 미군에 의한 살해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서정만(68세, 여)씨의 부검결과 갈비뼈 24개가 모두 부러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4일(화) 1차 사체 부검결과를 발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정액 및 혈액 검사 등 정밀검사 결과는 약 2주 후에 나온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맡은 의정부 경찰서 강력2반장 이영길 부장은 "서씨가 10일 밤 11시50분경 키180m 가량의 미군 흑인 남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간 뒤 집안에서 물건이 깨지고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주민의 진술에 따라 그 미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수사팀이 의정부경찰서에서 의정부 숭산파출소로 파견 나온 상태이며 미군범죄수사대(CID)공조를 통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단체 새움터는 경찰의 수사의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새움터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시간을 알 수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는 미국범죄에서 상투적으로 나오는 말"이라며 "이번 사건도 다른 미군범죄처럼 미제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미군에 의한 범죄가 아닐수도 있지 않나는 질문에 "서씨는 최근까지 히빠리(기지촌에서 몇십년간 매춘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클럽에도 나가지 못하고 생계가 막막해지자 거리에서 미군 등을 상대로 직접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생활을 하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왕래가 거의 없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경찰은 수사의 초동단계에서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해놓지 않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서 셋방상이를 하던 서씨는 지난 11일 오후 2시 50분께 자신의 방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있는 것이 집주인에게 발견됐다. 집주인은 '서씨 방에서 석유냄새가 나 문을 열어보니 서씨가 팬티차림으로 숨진 채 침대 밑에 모로 누워있었고, 석유난로가 방안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서씨는 눈주위에 심하게 멍이 들어 있었으며, 입술이 터진 채 앞니 2개가 빠져 있었다.

최근까지 서씨와 상담과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해오던 '두레방'에 의하면 서씨는 의정부에 남아있던 마지막 히빠리로 주민등록증이 1984년 말소되어 지난주에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었고, 이번주에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하려던 참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새움터,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연대, 평화인권연대 등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지촌 여성에 대한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과 기지촌 여성의 인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또한, "이 사건은 '미군'에 의해 '한국인'이 살해된 사건인 동시에, '여성'이 '군인'·'남성'에게 살해된 사건이기도 하다"며 "살아서는 '양공주'로 멸시받던 기지촌 여성이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는 '민족의 딸'로 이야기됨으로써, 한 여성의 인권이 오직 민족 문제를 제기하는 도구로서만 이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1992년 윤금이씨 살인 사건 이후, 기지촌 여성의 죽음이 일부 민족운동 진영내에서 '반미'와 '미군기지철거'라는 논리를 정당화시키는데만 이용됐던 것을 꼬집고, 이제는 기지촌 문제를 인권과 여성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한편 '불평등한 SOFA(한미행정협정) 개정 국민행동'에서는 14일 오후 2시 광화문 시민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미국 규탄집회를 열고 미 대통령 클린턴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을 미대사에게 전달했다.

문정현 신부, 이규재 민주노총부 위원장, 변연식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 3인이 전달한 항의서한에는 △의정부 서정만 할머니에 살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사과와 SOFA개정없는 미국방장관 코언의 방한 절대 반대 등의 요구가 적혀있다. 현재 베트남을 방문중인 코언 미국방장관은 일본을 거쳐 17일 우리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 대사관 바로 옆에서 열린 이번 집회는 경찰에서 '불법집회'로 규정, 3개 중대 병력이 50여명의 집회자를 에워싸 시종 약간의 미찰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집회를 시작하려하자 경찰 책임자는 "이 집회는 불법이므로 빨리 해산하라"는 마이크 방송을 했고, 집회 주최측은 "외국귀빈이 주로 다니는 주요도로가 여기여서 집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강력히 반발, 집회를 강행했다.


<의정부시 고산동 서경만씨 살인사건 관련 성명서>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50분경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서 서경만씨(66세)가 피를 흘린채 숨져있는 것이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서씨는 눈 주위에 멍이 들어 있었고 앞니 2개가 빠진 채 입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서씨는 전날 밤 11시 50분경 미군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으며, 곧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서씨는 한국 전쟁 당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살아왔으며, 어릴 때 병을 앓은 뒤 말을 할 수 없는 청각 장애인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해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발생한 신차금씨, 이정숙씨 사건과 지난 달 1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김모씨 살인사건에 이어 불과 1년 사이에 네 번째로 발생한 미군에 의한 기지촌 여성 살해 사건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전투력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기지촌의 성산업을 통해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범죄의 피해에 아무런 대책없이 노출되어 있다. 또한 매춘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과 사회적 단절로 인해서, 기지촌의 여성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범죄 피해에 대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강요당하고 있다. 미군의 성폭력으로부터 '일반' 여성들을 보호하고, 미군들의 성적 욕구 해소와 사기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묵인되어온 기지촌의 매매춘은, 매춘여성 개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성적 서비스 제공자로서만 규정지을 뿐이다.

또한, 한국과 미국 정부간에 체결된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SOFA)으로 인해서, 사건이 발생한 곳이 한국이며 피해자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찰에서는 미군 가해자에 대한 수사는 물론 신병 확보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범죄 예방의 선결 조건인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미군에 의한 기지촌 여성의 범죄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미국' 군인에 의한 '한국' 여성의 살인 사건인 동시에, '여성'이 '군인', '남성'에게 살해된 사건이기도 하다. 약소국의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외세에 기생하는 식민 권력, 성녀와 창녀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성적 기준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성적 상품화를 조장하는 기형적인 자본주의 모두에게 이 사건의 책임이 있다.

따라서, 희생자를 '고귀하고 순결한 민족의 딸'로 규정지음으로써 모든 책임을 미군에게만 전가시키고, 평생동안 기지촌에서 살아오면서 겪었을 한 '여성'으로서의 고통과 억압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살아서는 '양공주'로 멸시되던 기지촌 여성이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는 '민족의 딸'로 이야기됨으로써, 한 여성의 인권이 오직 민족 문제를 제기하는 도구로서만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 여성으로서의 인권과 생전에 겪었을 고통보다, 가해자가 '미국'의 군인이라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남성주의적 민족운동 진영의 논리에 반대한다. 민족주의 담론이 기지촌 여성 개개인의 고통받는 삶과 인권을 외면해서는 안되며, 기지촌 여성의 죽음이 오직 '반미'라는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데에만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기지촌은 지난 50년 동안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미군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편견과 착취에 고통받아 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와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 다음 사항을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 우 리 의 요 구 -

1. 한국 경찰은 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용의자를 조속히 검거하라.
2. 신차금씨, 이정숙씨 사건 등 기지촌 여성의 사망 사건에 대한 정확한 재조사를 실시하라
3.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범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4. 기지촌 여성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라.
5. 미군 범죄의 근절과 엄정한 사법 처리를 위하여 한미행정협정을 전면 개정하라

새움터,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 평화인권연대,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관악여성모임연대,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동덕여자대학교 행동위원회, 반성폭력학칙제정을위한연대회의, 살맛나는세상, 서울여자대학교 여성모임 '날개달기',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성균관대학교 율전 총여학생회, 수원대학교 여성행동위원회, 숭의여자전문대학 여성행동위원회, 세종대학교 여성위원회(준), 아주대학교 총여학생회, 여성노동권확보를위한여성노동모임,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연세대학교 여성주의모임 '13번째'·문과대학 여성모임 '모반'·여성학생활도서관·여성주의문화실험모임 'WOM'·Delta Feminists #2, 원광보건전문대학 여성행동위원회 '들꽃',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위원회, 전주대학교 여성위원회, 학내성폭력근절과여성권확보를위한여성연대회의, 한립대학교 여성위원회, 한양대학교 여성위원회, 호원대학교 여성행동위원회, 홍익대학교 여성주의모임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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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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