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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총선연대 사무실 앞.
갑자기 남녀 대학생 40여 명이 나타나 약 한시간 동안 총선연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나라를 걱정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하 나대모)이 공개적으로 세상에 보인 순간이었다.

나대모 학생들은 그후 몇 차례 더 시위를 벌였고, 홈페이지(www.korealover.com)를 만들어 총선연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홈페이지에는「오만한 총선연대 국민 위에 군림한다」「투명성 보장 안된 총선연대 못믿겠다」「총선연대는 시민단체인가 정치단체인가」「전문성 결여되고 획일성만 존재한다」는 글귀가 화면 왼쪽 하단부에 번쩍거리고 있다.

그러나 나대모의 의도와는 달리 홈페이지 개설 후 자유게시판과 방명록에는 네티즌들의 항의가 거세게 몰려왔고, 결국 나대모는 자유게시판과 방명록을 폐쇄했다.

처음 나대모의 시위가 있고 난 후 나대모의 존재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자민련의 사주가 있었다', '대학생이 아닐 것이다'는 등의 말이 오갔다. 그러나 기자의 확인해 본 결과 모두 근거없는 소문이었다. 특정 정치권과의 유착이 확인된 것도 없었으며 모두 대학생들이었다.

나대모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한 이후부터 조선일보와 총선연대 낙선명단에 오른 정치인들은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리정치인에 이용당하는 나대모 학생들

『월간조선』3월호는 나대모 대표 3인(최성희 : 연세대 법학과 4학년, 조희연 : 이화여대 법학과 2학년, 주재형 : 연세대 교육학과 4학년)의 인터뷰를 11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부터 서울 강동구 지역에는 이상한 전단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월간조선』3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와 1월 26일자 『조선일보』 '朝鮮漫評'을 조잡하게 짜깁기하여 한 페이지짜리 전단을 만든 것이었다. 또한 4월 10일에는 경기도 부천지역에도 비슷한 전단이 뿌려졌다.

이 전단의 목적은 명확했다. 총선연대의 흠집내기.
전단이 뿌려진 지역은 서울 강동을 지역구와 부천 원미을 지역구로서 총선연대가 선정한 집중낙선대상자인 김중위 후보(한나라당)와 이사철 후보(한나라당)가 출마한 곳이다.

강동을 지역에 전단이 뿌려지기 시작한 4일은 총선연대 박원순 상임공동대표가 낙선집중지역으로 이 지역을 전담하기로 하고 처음 방문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4월 10일은 부천 원미을에서 이사철 후보에 대한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중이었다. 강동송파총선연대 관계자는 4일 새벽부터 김중위 후보 선거원들이 이 전단을 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월간조선이 전하지 못한 것

나대모의 2월 1일 시위는 시민단체가 벌이는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첫번째 반응'이었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즘, 그것은 하나의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하고, '무혈시민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운동에 대해 대학생들이 정면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주 작은 시위여서 다음날 어떤 신문에도 보도가 나가지는 않았지만, 시위사실을 목격하거나 들은 사람들은 나대모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월간조선 3월호 인터뷰에 의하면 월간조선의 기자는 나대모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고 학생증도 확인했다. 그러나 그 기자가 밝히지 못한 것이 있다. 나대모 대표 3인은 인터뷰에서 나대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름 자체가 그런 느낌을 주듯이 솔직히 급조된 것이다. 우리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만 갖고 있다가 한번 모여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해서 모인 것이다."(월간조선 p.263)

그러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 급조해서 모였다'는 말과는 달리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40여 명의 대부분은 한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두레교회.
담임목사는 박홍 신부와 함께 『레드바이러스』를 엮은 남용우 목사이다. 나대모 대표 3인은 오랫동안 그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 목사는 총선연대가 출범하고 국민의 큰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총선연대와 시민단체를 비판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고 한다. 나대모가 첫 시위를 한 2월 1일. 두레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신촌에서 남 목사가 운영하는 '작은 풀씨의 꿈' 카페에 모여, 총선연대 사무실이 있는 안국동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대모 학생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 대표 중 한 명인 조희연 씨는 기자와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두레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가, 교회에서 마주쳤을 때야 대표 3인이 모두 두레교회에 다닌다고 밝혔다. 조씨는 "(대표 3인이) 『레드바이러스』를 만들 때(1997년) 처음 만났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두레교회와 총선연대 사이에서 힘들어하던 기독교 대학생

2월 1일 두레교회 대학생 40여 명이 안국빌딩 앞에서 총선연대 반대 시위를 벌일 때 총선연대 사무실 안에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박○○양. 전북대 00학번. 그는 아직 입학식도 하지 않은 예비 새내기였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을 퇴출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1월 15일경부터 총선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길래 호기심으로 보다가 너무 놀랐어요.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이 다 교회사람들이었어요."

그가 총선연대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교회의 한 친한 언니의 반응은 "총선연대? 그게 뭔데?"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그 언니의 모습도 보였다. 1월 15일과 2월 1일 사이에 어떻게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날부터 박양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 시작했다. 교회의 언니들은 시위 후에 "절대 아는 교회사람이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 부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총선연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 할 수는 없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던 그는 혼란스러웠다. 무척 존경하고 신뢰하는 목사님. 항상 잘 대해주던 교회 선배들. 힘들지만 좋은 일,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총선연대 사람들…. 박양은 한동안 교회에 나갈 수도 없었다.

며칠 뒤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번 만나자는 말에 찾아갔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내가 시민단체 일 하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나, 총선연대의 일은 틀렸으니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우선이고, 시민운동도 기독교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시민운동은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서…."

목사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목사 앞에서 "예…"라고밖에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음날(2월 20일) 총선연대 자원봉사활동을 그만두었다.

박양은 지금 학교가 있는 전주에 내려가 있다. 총선연대를 그만두고 두레교회가 있는 서울을 떠나 있는 그이지만 고민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가도 두레교회에 다시 갈 것 같지는 않아요. 남용우 목사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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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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