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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4월 21일) 오전에 눈을 떴을 때 '오랜만에 비가 오는구나'했다.
우산을 쓰고 출근하면서 '이 비가 가뭄 해갈에 큰 도움에 되겠구나'했다.
전철을 타고 중랑천을 건너면서 '비가 오니 물고기들도 좋겠구나'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서울 중랑천 주변에 물고기 수만마리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물위에서 뻐끔거리거나 물밖으로 뛰쳐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중랑하수종말처리장이 있는 서울 중랑구 장안철교 아래에서부터 성동구 성동교까지. 오전11시쯤 장안철교와 성동교 사이에 있는 살곶이 다리 주변은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성동소방소 소방장 김석철씨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리 내가 119라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에요. 팔뚝만한 고기들이 하얗게 떠올라 퍼덕거리고 있을 땐….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12시45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대는 12시52분 현장에 도착하여 '물고기 구출작전'을 펼쳤다. 동원규모만 소방헬기 2대, 소방차 32대, 소방관 150명, 경찰 170명, 기타 공무원 10여명.

대원들은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가 산소가 없어 기진맥진한 물고기를 '그냥' 퍼 올렸고, 소방차를 그 물고기를 깨끗한 물로 씻었다.

그 다음 소방헬기와 소방트럭은 그 물고기를 한강 본류까지 날랐다. 그러기를 약 4시간, 오후 5시쯤 소방대 추산 약 10만마리 정도를 한강으로 옮기고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손상호 자연정보연구원은 '오랜 가뭄 이후의 비'에 원인을 돌렸다. 물고기들이 바로 죽어서 둥둥 떠다닌 것이 아니라 입을 물 밖으로 내놓고 뻐끔거리고 있던 것으로 보아 오랜 가뭄 끝의 비로 바닥에 가라앉아 있거나 씻겨온 각종 영양분이 물속에 너무 많이 들어가 물속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낮아졌다는 추측이다.

손씨는 만약 공장 폐수의 무단 방류라면 바로 죽었어야 맞다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은 좀 다르다. 이철재(30) 서울환경연합 간사는 중랑하수종말처리장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이 씨는 "단순히 가뭄 뒤 비 때문이라면 왜 중랑천 전반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특정 지역(하수처리장부터 성동교까지)에서만 그런 일이 발생했겠는가"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중랑천 상류의 물과 사고지역의 물을 채취하여 상지대 자연과학연구지원센타에 수질분석을 의뢰했다.

나는 매일 중랑천을 건너며 출퇴근을 한다. 어렸을 적에는 중랑천 주변에서 잠자리와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다.

그러나 어느때부터인가 중랑천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똥물'로 바뀌었고, 당연히 그 물에는 전혀 '생물'이라는 것이 살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중랑천이 많이 맑아졌다는 소리도 별로 믿지 않았다. 적어도 매일 건너다니는 내눈에는 중랑천의 물은 여전히 흐렸고, 주변은 지저분했다.

나는 어제 중랑천에서 너무 놀랐다. 이 많은 고기들이 여기 있었구나. 팔뚝만한 고기들이. 이제 이것들이 돌아왔는데. 겨우겨우 돌아왔는데. 비 때문이든 하수처리장 때문이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 때문에 떼죽음을 당하고 한강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것이 아닌가.

일을 마치고 한 소방관이 말했다.

"중랑천 이 주변에 한 20만 마리정도의 고기가 있다고 추정합니다. 우리가 구출한 고기가 10만 마리 정도니까 나머지는 아직 이속에 있거나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거나 했겠죠. 우리가 한강으로 나른 고기는 대부분 알을 밴 큰 어미고기였어요. 아마 어린 고기나 작은 고기들은 아직 물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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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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