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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비가 개인 유월의 여름 아침. 머얼리 무등산이 뿌옇다. 요 며칠 장마로 거리의 가로수들은 말갛게 목욕을 해서인지 더더욱 푸르름이 짙다.

흠흠. 눈을 감고 서서 단장하고 선 은행나무들의 아침 인사를 듣노라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차들과 서둘러 일터로 가는 사람들의 발자욱에 깨어 한 발 두 발 걷게 된다.

햇살이 터져오는 나무 사이로 아침은 더욱 눈부시고 싱싱하다. 장마에 지루함이 더해 고작 영화 몇 편이나 골라보고 동안 미뤄뒀던 책들을 내어 읽어보지만 자연의 향내를 맡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나 보다.

운동을 빼먹은 대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산책이라 해봐야 고작해야 15분 정도 걸어 도착하는 동산이 있는 동네 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을 향해 가는 길은 어떤 날씨든 기분이 좋다. 그 길에서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날 것인지.

얼마 전에 정신없이 내 옆을 달리다 마치 내가 떠민 것처럼 내 앞으로 벌떡 넘어진 어떤 아줌마를 기억하면 푸푸 웃음소리까지 날 정도다. 다행히 이마와 입술이 좀 터져 서둘러 창피하다며 집으로 가는 그 아줌마. "내가 넋이 나간나벼~"하던 그 길을 또 걷고 있다.

지난 그림을 기억하며 걷는데 한 50m 앞에 웬 할아버지가 사람도 없는 보도에서 어떤 표시물에 오래도록 눌러 앉아있다. 이제 겨우 10시 정도인데 이르게 왜 저길 앉아있을까.

종종 이르게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가게 앞 계단에 앉아 "지금이 몇 시여?"하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시계를 들여다보면 9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 깨끗하게 차려입고 손에 꾸기작꾸기작 손아귀에 면 수건 한 장 움켜쥐고 입을 가리고 있었다. "어디 가시게요?" 여쭈면 빙긋이 웃으시며 "아니여~!"하고 서둘러 발을 떼시던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어쩌면 저 할아버지도. 마치 내가 이르게 어인 일로 나와 계시냐고 묻기라도 할까봐 등을 보이고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그 표시물 가까이에 이르자 서둘러 지팡이를 들어 발을 뗀다.

얼마간의 사이를 두고 뒤따르는 나는 앞질러 갈 수가 없었다. 위아래 새하얀 한복저고리에 단정한 머리모양새를 한 할아버지는 그 흔한 담배 한 대 꼬나물지 않고서 생각에 절인 사람처럼 땅을 보며 마냥 걷는다.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이렇게 일찍. 도서관 옆 건물에 노인당이 있는 데 거기라도 가는 것일까. 졸졸 그냥 따라가면서 고목껍질같은 할아버지의 뒷덜미가 슬쩍슬쩍 보였다. 세월의 흔적들이 온 몸에 나타나 죽음의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었다. 꾸부정하게 길을 걸으면서 지팡이를 동무삼아 걷는 아침길에 바지가랑이만 헐렁할 뿐 무거운 잿빛 하늘이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서있는 보도를 앞서 가더니 할아버지가 안보인다. 내 눈이 똑바로 할아버지 등을 놓치지 않았는 데.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우루루 차를 타고 가버렸다. 그제서야 버스정류장에 있는 하늘색 의자에 앉아 묵묵히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를 보았다. 가까이 가서 표정을 보았지만 그 자세 그대로 할아버지는 떨구고 있었다. 지팡이를 가운데 세우고서 말이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가야하나"

덧붙이는 글 | - 죽어지는 것도 
   살아지는 것도

   어디 내 맘대로 해보는 것이더냐.

   어디로든 가봐야지
   어디로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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