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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매향리 제 4 차 국민대회가 있는 날. 오후 1시 30분, 이미 일주일여전인 7월 1일부터 평택시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던 대학생들은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매향리로 가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단식 농성 8일째 되는 날이었다.

약간은 어지러웠지만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있는 역사의 현장, 매향리에 드디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흥분과 멋모르는 후배들을 매향리의 격렬한 시위 현장으로 데리고 가는 긴장감때문인지 몸과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서해안 고속도로 쪽으로 매향리로 가는 길은 벌써 전경으로 통제되어 있어, 우리 봉고차 일행은 논 사이길로 돌아 돌아 한시간 반만에 마을앞에 도착했다.

봉고차에서 내려 마을 회관으로 가는 약 30초 동안 그 짧은 순간에 난 매향리의 30년을 생각해 보았다.

매향리 주민들의 몇 십년간의 고통이 어찌 며칠의 단식에 비할까마는 웬지 서글퍼졌다. 에바다에도 정말 서럽고 화나는 미군범죄가 미제국주의의 역사가 있었건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것에 분노하는 사람은 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한국의 자주권이나 주민들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체계 역시 왜곡시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6.25전쟁으로 미국의 구호물자와 구호단체가 들어와 시혜적이고 서비스 위주의 정책을 시행했고 70년대에 들어와 박정희 정권이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자 외국의 특히 미국의 구호단체들이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명분을 잃게 되었다.

정권의 정당성 획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 회피라는 일거 양득의 목적을 달하길 원했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군사 정권은 '책임은 민간에게 지원은 국가가'라는 시설 중심의 사회 복지체계를 만들어 냈다.

에바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역사적 시설 설립 과정에 기인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아직도 구 재단측은 단지 최씨 일가가 설립 당시 등록이 되어있다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설립자로 등기 되어 있는 최성창이 스스로 출원한 기금은 단 한푼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농성 121일만에 퇴진한 최성창 전이사장의 이사복귀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측의 농성이 우리가 에바다 복지회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서 그 역사적 모순 구조를 읽어 낼 수는 없을까?

법적으로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엄연한 국가의 공공의 재산인 복지회를 어떻게 우리가 그것도 농성 주동자인 권오일 교사가 장악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러한 논리야 말로 최씨 일가가 재단을 독점하겠다는 반증이 아닐까?

아직도 최성창을 비롯한 최씨 일가는 외국 선교사에서 불하받은 그 옛날의 보육원(에바다 복지회 전신)의 기득권을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미국인 더그라스 크레이머가 1964년 고아들을 수용하는 '사회복지법인 어린이보육원'을 평택군 팽성면에 설립했다. 1974년에 이사장이 맥신스트로 브릿치로 바뀌고 최성창 목사는 이때 이사로 참여했다.

1982년, 최성창 목사는 맥신스트로 브릿치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기증한 약 6,000평의 땅과 전국 에바다교회에서 출연한 2천만원, 기타 기부금 4천만원으로 법인을 재설립, 이사장이 되면서 명칭을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로 바꾸고,

그 목적을 장애인 재활시설 설치운영사업, 장애인 요양시설 설치운영사업, 장애인 이용시설 설치운영사업,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설치운영사업, 특수학교 설치운영사업, 기타 장애인 복지에 관한 사업으로 정하였다.

그래서 복지회에 미군들을 불러들여 보여주기 행사 하길 즐겼고 그 불러들인 미군이 농아인을 성추행하도록 방조하지는 않았는지?

96년 11월 27일 새벽, 강제노동과 학대에 견디다 못한 농아원 학생들은 최성창 이사장의 퇴진과 시설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하였다. 농성 과정에서 집회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미군의 농아원생 성폭행사건은 세상에 폭로됐다.

96년 6월 미성년자인 이수철(가명, 당시 15세)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윌리엄스 약 에스 일병(33세, 미 제7공군 소속)을 따라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로 들어갔다. 이 군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인이었다. 그는 평소 햄버거를 사주며 부대 구경시켜 주었던 윌리엄스를 따라나섰다. 윌리엄스는 수화를 할 줄 아는데다 마술쇼를 보여주기도 하여 원생들에게 인기있는 미군이었다.

그 날, 이 군은 부대 내 윌리엄스의 숙소에서 자게 되었다. 이 군이 침대에 눕자 잠시 후 윌리엄스는 이 군의 속옷을 벗기고 그의 아랫도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 군은 싫다고 저항했으나 덩치가 큰 윌리엄스의 힘을 뿌리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어 윌리엄스는 이 군을 강제추행하였다. 20여분 남짓한 시간은 농아인인 이 군에게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주었다.

이 군의 끔찍한 모욕은 다른 원생에게도 이어졌다. 햄버거를 사주며 자선을 가장한 윌리엄스의 추악함은 지난해 9월 28일 또다시 나타났다. 김민호 군(가명, 당시12세)과 고철시 군(가명, 당시 12세)을 같은 방법으로 꾀어내어 자기 숙소로 데려갔다.

윌리엄스는 어린 농아학생들에게 목욕을 하라고 시켰다. 윌리엄스는 목욕을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가 김 군에게 바닥에 엎드리라고 시키고 나서 성폭행하였다. 이어 윌리엄스는 오 군을 똑같은 방법으로 짓밟았다. 10월 27일 김 군을 다시 불러내어 또다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97년 3월 12일 2시, 수원지방법원 208호에서 준강제추행 및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윌리엄스 일병의 1차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미군 범죄사상 이례적으로 미군 측으로부터 재판권을 넘겨받아 한국 사법부가 재판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미군 범죄는 5000여건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불평등한 한미협정으로 한국정부가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윌리엄스는 변호인 신문에서, "김 군이 나에게 함께 샤워할 것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다. 그러자 김 군이 오 군과 함께 샤워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손님을 소홀히 대접하는 것 같아 그들과 함께 샤워를 했다.

그러자 김 군이 계간을 하자고 하였다. 나는 어린아이들의 말(수화)에 충격을 받았으나 김 군의 제의를 허락했다. 그러나 김 군이 나의 항문에 성기를 삽입한 것이지 내가 그들의 항문에 성기를 삽입한 것은 아니다." 라고 천연스레 증언하였다.

지난해 11월 원생들을 검진했던 송탄의 한 병원 의사는 "당시 경찰이 원생 2명을 데려와 그들의 항문을 치료해 달라고 하였다. 경찰이 말하기를 이들 원생들이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군의 농아원생 성폭행 사건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과 농아원의 관리소홀 문책에 대한 부담이 한통속이 되어 사건은 은폐되었다. 경찰은 초기부터 사건이 기사화되는 것에 심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 땅의 안보를 위해 주둔하는 미군이 농아학생들을 성폭행한 엄청난 사건은 거의 신문에 게재되지 않는 조직적인 치밀함(?)을 보였다.

사실 에바다 사건은 사회복지시설비리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지, 미군 범죄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피해 학생들에 대한 대책은 미미했다.

하지만 평택지역주민들은 좀 달랐다. 미군에 대해 뿌리 깊은 피해의식을 지닌 평택은 달랐다. 에바다에 대한 미국의 현실은 지역 주민에게 에바다 문제가 지역 문제임을 인식시켰고 지역의 책임임을 자각시켰다. 그래서 에바다는 지역의 조그마한 민원이 아니라 지역운동의 잣대이고 표본이고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매향리에 비하면 에바다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대회 시작 잠깐 동안 에바다에 관해 발언할 기회를 얻긴 했지만 그 역시 에바다의 미군범죄를 충분히 알려 내진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전경들에 깔려서 병원에 실려하는 것을 보면서 마을 어른들과 전경들이 섞여서 물을 먹는 것을 보면서 어지러웠던 몸과 마음이 청명해진 것은 왜일까?

덧붙이는 글 | 오는 7월 13일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오후 6시 평택시청 앞에서 열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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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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