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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내가 선택한 길.
"장수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낮에는 밭농사며 논농사로 불사에 눈코 뜰 새가 없었죠. 몸은 고단하죠. 너무 피곤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어째요. 내가 선택한 길인데."
스님의 고된 수행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조계사, 파계사, 월정사, 송광사, 운문사 등 전국 각지의 유명한 사찰에서 볼수 있는 불화와 단청을 그렸던 조정우 씨의 수행과정이다.
불화를 그리게된 계기
조정우 씨는 마냥 그림이 좋아서 주위 아는 분의 소개로 일섭 스님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불화라는 것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열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하루종일 힘든 불사에 시달리고 그림을 배우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그림, 밤에 호롱불을 밝혀 놓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한장한장 그린 습작들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며 쑥스러운 듯이 여러 권의 습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곡선에서부터 직선까지 자로 그린 듯한 정교함이 있었고 탱화 역시 숩작이라 하기에는 그림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절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가지 채색이나 문양이 아름다운 단청
단청은 흔히 사찰이나 궁에서 많이 볼수 있는데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채색을 써서 아름답게 문양을 그려 넣는 장식을 말한다. "법당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함과 궁전의 위풍당당함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고, 옛날에는 광물성인 안료를 썼는데 성분이 독하여 건물수명을 연장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며 사찰이나 궁에 단청을 그리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종교적 신심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려야
40여년동안 그린 불화와 단청은 현재는 전국 각지 큰 사찰에 조정우 씨의 손이 안간 작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특히 전남 구례에 있는 송광사 대웅전의 부처님 열반도와 청도 운문사의 오백나한도, 32응신관음도가 내가 그린 그림들 중 가장 애착이 가고 부끄럽지만 대표적이라 할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단청을 그리기 전에는 꼭 조석으로 예불을 드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작업을 한다고 한다. "조금이라고 딴생각을 하면 금방 그림에서 표가 나요"라며, "그림이 완성돼서 내 손을 떠나는 순간에는 단순히 내 개인의 작품이 아닌 종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무엇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답니다"라고 말했다.
절에서 주는 승복인 정의를 입고 몸을 정갈하게 씻은 다음 작업을 시작하는데 작업 도중에도 스님들이 주의를 돌며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염불을 할 정도로 엄숙하게 진행된다고 했다. "요즘은 너무나 상품화 되어 있고 스님들 또한 돈만 얼마주면 다 해결되는 줄 안다"라며, "사찰을 한번 돌아보면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지도 않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보면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겠어요"라며 안타까워 했다.
단청을 그릴 때 변해서는 안되는 원칙
단청의 기본색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흰색, 검정색이다. 요즘은 공업용 물감을 쓰는데 예전엔 광물성 안료를 이용했다. 당채라고도 하는 녹색은 구리 녹은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한술이라도 먹게 되면 그 즉시 죽을 정도로 아주 독하다고 했다. 단청을 그릴 때 기본원칙에 대해서는 "채색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석가모니의 자세나 10대 제자들의 모습은 바뀌어선 안되죠"라고 말했다.
깊이가 없는 단청은 단청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세계적이에요. 요즘은 옛날만 못하지만 불교가 융성하게 꽃을 피우던 시절에는 가히 독보적이었어요"라며,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요즘은 너무나 쉽게만 그릴려고 해요"라며, "빨간색에 검정색을 찍어 같다 붙으면 삼라만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조정우 씨는 불교미술전시가 있다거나 대회가 열리면 심사를 맡아왔다고 하는데 갈 때마다 너무나 실망이라고 했다. "종교미술이 가지는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쉽게들 대강대강 기교만 배우려고 해요"라며, "심사를 맡은 교수들이란 사람들도 이론이나 알지 잘 모르고, 더욱 심각한 것은 종단에서조차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 건수에만 혈안이 되어있죠"라고 가는 곳마다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악평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 무형문화재 지정에 있어서의 문제점
작년에서야 비로소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는데 이것도 조정우씨의 의지였다기보다는 제자들의 간곡한 권유로 수습을 밟아서 했다. 그 까닭은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 과연 얼마나 심사숙고하는지 의문입니다"라며, "중요무형문화재 단청 관련해서는 3명이 지정되어 있는데 진정한 깊이를 가지고 하는지, 진짜 실력이 있는지도 검증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죠"라고 꼬집어 말했다.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걸 알겠어요
열여덟에 멋모르고 시작한 그림, 쉰여덟이 된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모자란 것들을 채워내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보아도 공감하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불화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계속 일에 떠밀려서 하다보니 변변찮은 개인전 한번 못해봤어요. 틈틈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하며 쑥스러운 듯 웃으시는 조정우 씨의 얼굴은 그가 그린 부처님의 얼굴만큼이나 온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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