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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척은 동서남북으로 헤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라 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 많은 현실이 싫어졌다. 개척이 아닌 여행이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어느 CF 광고처럼 사람이 그리워질 때까지 사람들로부터 떠나있고 싶었다. 그래서 난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녀는 나의 사람사귀기가 늘 그렇듯이, 그냥 활동으로 만나게 된 다른 학교 학생회 실무자였고 후배였다.

그녀는 사람을 무지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한 활동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난 그녀가 상처입을 때 그 상처를 전혀 보듬어주지 못했다. 나 때문에 입은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도 그녀만큼 지치고 상처입었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래서 이제야 그녀를 찾아 가는 걸까?

자정이 넘어서 서울역에서 탄 대구행 기차는 처음부터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입석으로 끊은 데다가 내가 늘 즐겨 앉은 통로에도 사람들로 빽빽했다.

탄 것이 무궁화인지라 혹시 장애인 좌석이 남아 있나 해서 사람들 잠을 다 깨우면서 갔으나 2호차로 웬 걸 그 자리는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장애우인 나는 '장애'를 팔아볼까 잠시 갈등과 고민을 하였으나 이는 동방예의지국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냥 통로에 퍼질러 앉아 버렸다. 짐칸에는 짐들도 왜 그리 많은지 내 목발조차 올려 놓지 못했다. 에이, 목발을 베개삼아 기대어 자려니 오히려 말똥말똥하다.

통로 차창 사이로 반디불 마냥 쉭쉭 지나가는 불빛을 보고 있으니 올해 초에 멋모르고 보았던 '박하사탕'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지금 시간을 거슬러 나의 '순수'를 찾으러 가는 것일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무슨 순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피식피식 웃다보니 어느새 대구, 새벽 4시.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5시 반까지 기다려 최고의 편의시설을 자랑한다는 대구 지하철을 타볼까도 하였으나 거기서 1.2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너무 멀다. 초장부터 겨드랑이 까질 일 있나?

그냥 여유 만만, 대구대로 가자고 호탕하게 택시를 불렀다.
대구대로 간다고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건만 무턱대고 대구대를 불렀다.
'근처에 자취하는 친구의 자취방 아무데나 들어가 자지 뭐.'

귀곡산장 같은 대구대 정문에서 대담하게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단한 짓이었다. 그것도 1년 만에. 하긴 이렇게 여행을 떠나 온 것 자체가 일찍 죽을 상이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2번 울렸다. 달깍 순간, 수화기를 내려놓고 싶은 강한 유혹을 억눌러야만 했다.

"여보세요...?"
잠결에 받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고 난 언제 그랬냐는 듯 자못 쾌활하게 대구에 왔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그녀의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어 버리고 잠시 멍해 있었다.

"잘 데는 있어요? 선배?"

정곡을 찌르는 경상도 사투리, 난 도망가고 싶었다.
다리도 떨리고 목발마저 떨리고 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데리러 오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녀와 걷는 대구대 뒤골목 경산 시장의 어둠컴컴한 길은 마치 둘의 마음을 헤집어 가는 길처럼 암울했다.

우리는 편의점이 보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샀다.
그녀의 자취방에서 우리는 술을 먹었다. 대화는 주로 그녀의 애인이야기가 주였고 그 외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술값으로 여행 경비의 절반이나 써 버렸으니 우린 모두 아침에 알콜에 절어 있었다. 옆 쪽방에서 자고 있는데 그녀가 날 깨웠다.

"계룡산 가요, 선배"
그렇게 또 다시 나는 그녀와 함께 침묵의 산행에 올랐다.
우리는 대구에서 대전으로 이동했고 계룡산 입구서 동학사까지 장장 2.7킬로. 그길을 우리는 하루만에 오르고 하산해야 했다.

그녀는 오르면서 나의 목발을 일일이 발로 괴어 주었고 우린 빠른 속도로 올랐다. 지나가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학생 참 장하네' 혹은 혀차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녀의 숨소리를 따라 신들린 듯 걸어 올라갈 뿐이다.

4시간을 올랐을까? 겨드랑이가 쓰라려 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불쑥 초콜렛을 내민다.
"겨드랑이 아프죠? 선배"

그녀는 전생에 무당임에 틀림없다. 선배는 무슨 놈에 선배, 이모와 조카 같다. 그녀는 다시 길을 나선다.
'아, 이것은 그녀의 복수극이야'
입에서 알콜 내음이 풀풀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7시간만에 동학사에 다다르고 나는 뻗어 버렸다. 사실 어떻게 내려왔는지 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빨리 걸으라는 그녀의 구박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목발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발자국과 그녀의 거친 숨결과 나의 홀쳐진 겨드랑이를.

데이트치고는 너무나도 혹독했다. 그리나 기억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동학사 입구가 보이자 말자 나는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그녀가 같이 울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날 새벽 계룡산 흙도 털지 못하고 서울 기차에 오르면서 그 후배는 나에게 오로지 한마디만 건넸다.
"미안해요. 형수 선배"
나는 대답했다.
네가 나와 함께 할 때까지 난 내 길을 가고 있겠다고.

그녀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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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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