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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부담과 실망, 비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민중은 결코 절망하지 않고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티모르 민중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태초로부터 미래는 희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변화를 약속해 왔습니다. 미래는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범죄를 물리치는 승리의 순간을 가져올 것입니다."
- 동티모르 독립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가 독립된 나라라는 것을 공항에서 실감했다. 발리 데파사르 공항에서 국내선 청사로 갔다가 동티모르 딜리행 비행기 없어 순간 당황했다. 공항경찰은 국제선 청사로 가보라고 한다. 이제는 인도네시아와 딴 나라가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항공료는 2배로 올랐다. 비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가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같은 딜리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해 보인다. 동티모르사람, 서양 사업가들, 유엔직원들, 중국인들 등등. 그곳에서 엄청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어떤 느낌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설렌다. 91년 발생한 딜리 산타크루즈 묘지의 대학살을 알게된 후 동티모르는 우리 상황과 비교 돼 언제나 나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독립을 쟁취한 때는 나도 그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

비행기는 출발 시간이 되도 떠날 줄 모른다. 머파티 항공의 이 낡은 비행은 족히 30년은 되어 보인다. 함께 타고 있는 푸른 베레모의 파키스탄 군 출신 유엔 평화유지군이 승객들의 관심을 끈다. 포르투갈 여자가 "언제부터 근무했나"라고 물었다. 조지 크루니 닮은 이 잘생긴 군인은 "10개월 근무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인사말이 오간다. 동티모르의 평화유지군은 나름대로 호감을 얻고 있는 듯 했다. 딜리행 비행기는 30분을 넘겨 새 손님을 태우더니 1시간 반의 여정을 시작했다. 내 옆자리의 중년 사내는 태국 경찰이다. 동티모르에서 학살이 극심했던 리퀴샤에서 유엔 소속으로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국에서 약 50여명의 경찰이 파견 돼 유엔의 치안 업무를 돕고 있는데 자신도 약 1년 정도를 머물게 될 것 같다고 한다. 혼자 근무하는 것이라 외롭기는 하겠지만 월급이 많아서 위안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뒤 좌석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이런!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처음 본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나. 나 역시 담배 한 대를 뽑아들었다.

ⓒ 이상엽

드디어 동티모르 딜리에 도착했다. 허름한 공항. 입국절차를 받는 데스크는 임시로 가져다 놓은 낡은 책상이다. 한 50평 정도 되는 청사 내부의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탄생한 국가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입국절차는 유엔이 맡아 처리하고 있다. 비자는 필요 없었다. 민간인과 군인은 분리해 수속을 밟고 있다. 청사를 나오자 강한 열풍이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딜리로 가는 길 풍경은 참혹했다. 길가의 건물 70%는 불에 탄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나마 불에 탄 물건을 정리해 지금은 깨끗한 편이라고 한다. 딜리에 대한 첫인상은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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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극도의 혼란기를 맞은 인도네시아의 정국에서 동티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인도네시아군과 그의 사주를 받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의 만행은 가공할 것이었다. 수많은 민가와 건물들이 불에 타 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원한다고 살해당했다. 그 와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집과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 몰렸다.

우리가 방문한 살레지오 수녀원의 어린이 행사장에는 그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불타버린 관공서 건물 마당에는 약 20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있다. 허름한 옷차림과 나이 보다 작은 키. 가끔 한국에서 구호물품으로 보낸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도 눈에 띤다. 수녀원에서 준비한 4인조 밴드의 반주에 맞춰 한 아이가 보니M의 '바빌론 강가에서'를 구슬프게 부른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많은 외국 노래를 즐겨 듣고 불러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자유의 상징인 밥말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종일 거리에서 지낼 뿐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냥 방치되고 있었다.

수녀원은 이런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벗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아직 외국인들이 낮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결코 아이들은 구걸을 하지 않았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곳에서는 구걸하기 보다 작은 노동이더라도 해서 밥벌이를 했던 것이다. 살레지오 수녀원의 한 수녀는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오후 6시. 해는 벌써 지고 있다. 적도 부근이라 하루는 정확히 12시간으로 밤과 낮이 갈린다. 아이들은 수녀들이 나누어준 빵 2개씩을 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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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진가들이 동남아시아의 문제를 다룰 때면 흔히 그 나라의 쓰레기장을 꼭 보여준다. 더욱 비참해 보이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형태만 다를 뿐 쓰레기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있다.

사진가들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 어쩌면 그 사회의 진실의 단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렌트카 기사인 존과 가이드 마테우스와 함께 최근 딜리 외곽에 생긴 띠바르 쓰레기하치장으로 갔다. 산으로 둘러 쌓인 5천여평의 부지에 조성된 쓰레기장은 입구에서부터 부패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입구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그 아이들과 걷기 시작했다. 부서진 자동차들과 건물 잔해가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내전 당시의 쓰레기들이 상당 부분 이곳으로 옮겨온 듯 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약 100여명의 아이들과 마주했다. 온통 썩는 냄새와 파리들. 아이들은 모습은 끔찍할 정도다. 다리에는 대부분 피부병을 앓고 있다.

쓰레기장에서 아이들이 하는 일은 오전 일찍부터 나와서 유엔의 쓰레기차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 차가 올 때마다 쓸만한 것을 줍거나 음식물을 찾는다. 생수병에서 남은 물을 모아 그 것을 식수로 사용한다. 어떤 아이들은 전 가족과 함께 나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쓰레기차를 기다린다. 쓰레기차가 오지 않는 동안 아이들은 불타버린 폐차에서 지낸다. 이들의 놀이터이다. 이들은 주변 마을의 아이들로 부모의 보살핌이나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하루종일 쓰레기장에서 시간으로 보내고 쓸만한 것을 모아 자루에 넣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유엔의 쓰레기차가 오는 한 아이들의 숫자는 더욱 늘 것이다.

아이들을 취재하고 있는 곳으로 유엔 지프차량과 쓰레기차가 왔다. 순식간에 여기저기 모여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쓰레기를 쏟아내자 치열하게 자리다툼이 벌어진다. 조금이라고 성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다. 미군들이 버린 성인잡지도 굴러다닌다. 아이들은 어 잡지를 통해 어떤 미국의 모습을 그릴까? 유엔 지프 차량에 타고 있던 미군들은 내리지도 않은 채 쓰레기를 파헤치는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는 여군 하나가 사탕을 나누어주자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기분이 씁쓸하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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