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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 철조망과 주민 대책위원회 사무실 바로 경계에 위치한 매향교회(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315-4). 이 교회 역사는 거의 50년. 1952년 매향리 사격장이 설치될 무렵에 매향교회도 태동하기 시작했다.
매향교회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십자가 종탑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미 공군기 진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매향교회가 십자가를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매향리 주민들이 6.25전쟁이 끝난지 50년 동안 계속 전쟁의 포성에 신음하는 이유와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매향리 주민들이 사격장 철폐를 외치며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향교회는 '시위참여'와 조용히 침묵만 지키는 '방관'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왔다. 사실 매향교회는 폭탄을 쏟아붇는 가해자와 떠나라고 외치는 피해자 사이에 놓여 있는 위치적 특성만큼이나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교단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잖아요" 매향교회 담임 정관영 목사(52)의 말이다. 매향교회가 소속한 교단은 한국 교단 내에서도 손꼽히는 보수 장로교단. 한국교회보수교단은 사회문제에 나서는 것을 터부시하며, 대개 개인구원 만을 강조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한국교회는 '사회참여'와 '개인구원'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놓고 십수년 동안 해묵은 논쟁을 벌여 왔다. 결국 매향교회의 고민은 바로 이런 것들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향교회의 이런 고민과는 상관없이 주민과 시민단체 혹은 학생들로 구성된 시위대와 전경들의 충돌이 벌어지면 교회와 정 목사는 어김없이 그 중간에 끼고 말았다. 시위를 막느라 지친 전경들은 물을 얻거나 그늘이 필요해 교회를 찾고, 이런 모습을 보는 주민들은 왜 전경들을 도와주냐며 교회에 비난을 쏟아 부었다.
또 두 달 넘게 전경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교회의 수도꼭지가 부서지고 지하수 모터가 과열로 망가지자 전경측은 "물을 주지 않기 위해 고의로 고장을 냈다"는 소문을 내 교회를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정 목사가 '목사로서 나서야 할 일인가'를 놓고 고민하며 교단의 눈치(?)를 보는 사이에도 매향교회는 남북분단과 한미행정협정(SOFA)이라는 우리 민족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낳은 불행의 한복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와 수녀들이 바로 교회 옆에서 사격장 철폐를 위한 미사와 기도회를 개최하고, 사격장 설치 후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사격장 정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하며 '종교의 힘'을 과시하는 동안 매향교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정 목사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천주교가 그들 나름대로 활약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교회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일부 기독교 언론에 '매향리에는 교회가 없다'는 비난의 글이 실린 것도 봤어요. 하지만 매향교회가 단지 방관만 한 것은 아닙니다. 교인들이 모두 마을 주민들이고, 그들이 이일에 나서고 있는 이상 교회도 뭔가 일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또 정 목사는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그 현장에 나가 봤어요. 한번은 거칠어지는 전경들의 진압을 진정시키기 위해 앞에 나섰다가 손과 배에 상처를 입기도 했죠"라며 자신이 '이방인'으로 남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매향교회가 어정쩡한 태도에서 조금 이 일에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지난 6월 중순. 삼괴지역(우정면과 장안면을 합한 지명) 교회들이 연합, 기독교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마을 어귀와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 사격장 철폐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플래카드 설치는 매향교회와 이 지역 교회들이 매향리 사격장 철폐 운동에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사건이다. 그후 매향교회와 이 지역 목회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정식으로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으며, 교회 입장을 정리한 성명서 발표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매향교회의 현재까지 움직임은 비록 '방관'의 경지는 넘어섰지만 아직 '참여'라고 해석하기엔 부족하다. 현재의 매향교회는 거친 시대의 물살을 거스르지 못하고 억지로 '미공군 사격장 존폐'라는 역사적 사건의 한 복판에 떠밀려졌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기독교적인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매향리사격장 철폐성명서 발표와 관련, 아직 주민과 정부 양측 입장을 살피는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전체의 태도 역시 매향교회와 비슷하다. 어느 교단이나 기관에서도 매향리 사격장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지 않다. 또 그 많고 많은 교계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매향리를 찾아보지 않았다.
매향교회가 십자가 종탑을 세울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일개 교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 교회 전체가 매향리 미공군사격장 존폐문제 앞에 분명한 입장을 개진할 때, 매향리 앞바다를 굽어보는 위치에 예수의 십자가 정신이 또렷하게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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