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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간의 오키나와 취재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그곳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비록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고 가끔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보여준 따뜻한 인간애는 언어장벽과 사고의 차이를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오키나와 운동은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직업운동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대부분의 단체가 사무실이 없다는 점, 팜플렛 하나를 만들더라도 만화를 넣고 글씨를 큼직하게 씀으로써 어린이와 노인까지도 배려한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주민이 운동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등.
이러한 의미에서 '미군없는 오키나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따로 있을 수 없다. 옆집 아주머니 같이 평범한 주부가 집회 때 연설을 하고, 공무원이 휴가를 내어 며칠 동안 진행되는 집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데모 현장 곳곳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나와 "기지와 이라나이(기지는 필요없다}"를 외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듯 운동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오키나와 사람들 대부분이 '미군없는 오키나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기지반환운동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또 하나의 일본, 오키나와』의 저자이자 오키나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아라사키 모리테루 오키나와 대학 교수는 미군의 야만적인 오키나와 점령사, 0.6%의 땅에 75%의 미군을 집중시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정부가 오키나와를 미일동맹의 희생양으로 삼는 태도, 한국전쟁-베트남전-걸프전 등에서 오키나와가 미국 군사력의 전진배치 기지 역할을 함에 따라 세계인에게 갖고 있는 원죄의식, 그리고 95년 소녀강간사건 등이 오늘날 오키나와 미군기지반환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미군이 주둔하는 이유를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군사적인 힘을 가지고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미국이 외국에 주둔시킨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군사력도 축소해야된다는 과제도 동시에 나오겠지만 우선 긴급한 문제로서 미군기지 철수문제가 있다는 것,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라사키 교수의 설명이다.
자신의 빼앗긴 땅을 돌려 받고 군대가 없어질 때까지 운동을 하겠다는 치바나 쇼이치씨. 올해로 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째가 된다는 치바나씨는 자신이 기지반환운동에 뛰어든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저희 아버지가 어렸을 때 미군기지에서 일하다가 해고됐었고, 오키나와 전쟁 때 집단자살로 사망한 자기 스스로 죽은 73명이 죽었는데 그 조사를 제가 맡았습니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이기까지 했지요. 오키나와 전쟁에 대해 조사했을 때 전쟁이라는 것을 저는 반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요즘 가데나 기지 안에 있는 코끼리 우리라는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 재판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미군에 땅을 빌려준 일본정부를 기소한 것이다.
오키나와에는 치바나씨처럼 미군에게 기지를 임대하지 않겠다는 반전(反戰)지주들이 있다. 처음에는 약 3천명에 달했으나 일본정부의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현재는 3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인원은 많이 줄었으나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기지임대를 반대한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치바나씨는 확신하고 있다.
이처럼 오키나와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기지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들은 단순히 기지를 반환 받는 것에 운동의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비록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그리고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전진기지로 사용되면서 아시안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는 죄의식 속에서 이들은 아시아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기여하고 싶어한다. '폭력의 진원지'에서 '평화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것이 오키나와 사람들의 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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