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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6일 대구 남구 미군기지 '캠프 헨리' 정문 앞. 오후 6시경 '주한미군 철거를 위한 결의대회'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500여명의 집회 참가자가 결의대회를 마치고 다음 집회장소로 이동했다. 잠시 후 시위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미군기지 너머로 얼룩무늬 군복차림의 미군 병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한미군 철수'구호가 가득했던 그곳을 이제는 미군 병사들이 메워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숨어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을까. 병사들의 손에는 한국경찰이 가지고 있는 방패보다 묵직하고 세련된 미제 방패가 쥐여져 있었다. 철모까지 눌러쓴 병사의 모습에 기가 죽을 정도다.

한국전쟁 후 50여 년 동안 '실전' 한번 치르지 못하고, '열심히' 훈련만 하는 미군에게 한국 전투경찰과 시위대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는 톡톡한 '실전 체험'일지 모른다.

잠시 후 10여명 가량의 미군 헌병들이 사진기를 하나씩 들고 정문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위대가 던진 계란세례를 받아 자국이 선연한 건물 벽을 살폈다. 그리고 플라스틱 물병세례에 부서진 정문 위에 작은 등을 사진기로 찍기 시작했다. 정문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도 그들에겐 충분한 증거자료가 되는 모양이다. 하나라도 빼놓을 새라 꼼꼼히 흔적을 찍어댔다.

하지만 증거수집에 열중인 그들이 진지한 모습은 아니다. 멀리서는 알아듣기 힘든 자기네 말로 장난스럽게 큰 웃음을 내지르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몇 무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시위대가 페인트로 새겨놓은 '주한미군 철거' 글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그들의 속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 '한국사람들은 바닥에 이런 짓도 다 하고. 웃기지도 않네. 에라 기념이다. 기념사진이나 찍자'

주한미군 기지 앞에서 벌어졌던 한바탕 '소란'이 그들에겐 재미난 구경거리임에 분명했다. 무엇 때문에 그곳에서 왜 한국민 수백 명이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는지 그들에겐 관심 밖이다. 반복된 훈련과 지루한 일상에 한국인이 벌이는 '반미' 시위는 그들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에겐 단지 재미난 소동일 뿐이다.

주한미군 문제를 대하는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다'. 노근리 양민학살, 미군기지 독극물 방류 사건, 그리고 매향리... 시간과 공간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이 겪어온 '고통'은 '영원한 우방'의 군대, 주한미군의 이미지를 바꾸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군은 진지한가? 국민들의 눈에 비친 '주한미군'의 모습은 진지하지 못하다. 양민학살 조사는 자취를 감추고, 한번의 실수로만 치부하는 '속 빈' 사과, 그리고 아직도 쉴새 없이 퍼부어대는 총탄에 제 모습을 잃어 가는 농섬을 지켜볼 때도 미군이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네 땅을 넘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 '반미 시위대'와 이것을 철벽처럼 수비해 주는 한국경찰. 그 뒤에서 '영원한 제국'을 꿈꾸는 주한미군.

이런 그들에게 한국민에 대한 진지함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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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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