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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SOFA, 매향리, 독극물 방류 사건 등 잇따른 미군문제 발생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주한미군문제는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수 차례에 걸쳐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왔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정부가 반미를 방치하고 있다'고 김대중 정부를 공격하고 나섬에 따라 주한미군문제는 '반미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대다수 언론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최근 반미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정치권의 소모적인 반미 논쟁을 성토하고 있어 '반미'문제는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담론의 가장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반미 논쟁에 대해 언론은 주한미군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고 여론형성과 의제 설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시각차이가 뚜렷한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11일자 사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만한 조선일보

우선 조선일보는 최근 '반미'가 확산된 배경에는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책임이 있다고 보면서 "정부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정당한 「대미 비판」과 수용불가능한 「반미」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서 후자에 대해서는 「잘못된 것」임을 절대다수 국민의 합의된 의사로서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정당한 대미 비판'을 "무역마찰, SOFA, 「민간인 피해」 문제들과 관련해서 우리의 국민적 권익과 국가적 자존, 그리고 문화적 자긍을 훼손하는 사항이 발생할 때 그것을 철저하게 따지고 항의"하는 것으로, '잘못된 반미'를 "한·미 안보 동맹관계, 주한미군, 북한에 대한 한·미 공조 자체를 특정한 이념의 잣대에 따라 원천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으로 규정해서 적대"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정당한 대미 비판'이 아닌 '잘못된 반미'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배척의지를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대응책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날(11일) 사설이외에도 이미 여러 차례의 사설과 김대중, 류근일 등 자사의 대표적인 논객을 통해 '반미' 논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위축된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남북정상회담를 폄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미' 문제를 부풀림으로써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자극하기 위함으로 보여진다. 즉 대북정책에 매달려 안보문제를 돌보지 않는 위험한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오만스러운 모습은 우선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북한의 조선일보 입북 거부나 남한 일부 지식인의 안티조선일보 연대에 대해서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반민주적인 행태'라고 비난하면서, 주한미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반미'로 몰아붙이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것이 그들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또한 자신의 잣대에 따라 '정당한 것'과 '잘못된 것'을 나눈 것을 마치 "절대다수 국민의 합의된 의사"인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그 동안 주한미군문제를 비롯한 안보문제는 시민사회의 개입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억압되어온 상황에서 국가와 언론이 선과 악을 정의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강요해온 권위주의적 의사통제 방식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철수·역할변화 등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를 "특정한 이념의 잣대에 따라 원천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으로 규정해서 적대"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주한미군문제를 색깔론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만한 한겨레

보수일색인 한국의 언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온 한겨레는 주한미군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평가를 위해 주한미군문제는 크게 두 가지 범주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SOFA 개정문제를 중심으로 한미관계의 미시적 차원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SOFA 개정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배경, 즉 각종 미군범죄, 매향리 사격장, 독극물 방류 사건 등이 포함된다. 이 문제들을 '미시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 주둔을 비롯한 한미군사동맹이라는 거시적 차원의 문제다. 미시적인 미군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각종 미군범죄 및 미국의 고압적인 태도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거시적 차원의 문제가 공론화된 배경은 국민적 '희망'을 준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의 문제점은 두번째, 즉 거시적 차원의 주한미군문제에 대한 공론화에 태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시적 문제와 거시적 문제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논조는 'SOFA 개정을 비롯한 한미관계의 현안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주둔문제를 핵심으로 한 한미관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학계,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 SOFA 개정문제에 그토록 관심을 보인 이유 중에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한미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차단하려는 목적에 있다면, 한겨레는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는 주한미군문제와 대북정책에 있어서 사실 정부 방어적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부 정책이 이전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정권의 기반 자체가 허약하다는 정치적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11일자 사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듯이 야당을 비롯한 보수파를 비판하는 것이 김대중 정부를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한겨레의 비판 기능과 여론 형성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는 11일자 사설에서 "이 총재는 소파협정, 매향리·노근리 문제 등에 대한 우리사회의 문제 제기를 반미운동이라고 단정하는 것인가"라고 쓰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반미'로 몰아붙이는 이 총재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이 적실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한미군과 관련된 의제를 제한하게 되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즉, 앞에서 언급한 미시적인 주한미군문제는 반미운동이 아니지만, 거시적인 문제 제기는 반미운동이 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동의하는 모습으로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담론의 편협성

주한미군 담론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주한미군의 철수·감축·지위변경 등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안 된다'는 편협성과 폐쇄성에 있다. 대통령부터 대부분의 언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시각은 대세임이 틀림없다. 정책적 현실은 물론이고 우리의 담론구조와 상상력조차 미국중심주의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겨레 마저 이러한 왜곡되고 폐쇄적인 담론구조를 깨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적어도 주한미군과 관련된 우리의 준비 수준은 미국에 수십년 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년전부터 한반도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주한미군 주둔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미래의 한미관계도 지금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8월 11일자 조선일보 사설)

여·야 이제는 ‘반미’로 싸우나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전 「미국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반미로 연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엊그제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최근 무분별한 선정적 반미운동과 미군철수 주장이 한·미 간의 동맹관계를 위협하는데도 이 정권은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반미」 문제는 집권 측과 제1야당 최고지도자 수준에서 중요한 국가적 쟁점으로 부상한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 여당과 야당, 그리고 사회전반은 이 문제에 대해 서로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다수가 승복할 수 있는 정리된 결론을 도출해서 더이상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인식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정당한 「대미 비판」과 수용불가능한 「반미」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서 후자에 대해서는 「잘못된 것」 임을 절대다수 국민의 합의된 의사로서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적 합의를 집권 측이 행동과 시책면에서 강력하게 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대미 비판」과 「반미」가 분명한 경계없이 두루뭉수리로 한 데 어우러져 있는 상황이 무작정 방치된다면 그것이 장차 수습하기 어려운 사태로 악화될까 걱정이다. 

정당한 「대미 비판」은 예컨대 무역마찰, SOFA, 「민간인 피해」 문제들과 관련해서 우리의 국민적 권익과 국가적 자존, 그리고 문화적 자긍을 훼손하는 사항이 발생할 때 그것을 철저하게 따지고 항의해서 우리의 몫을 얻어내자는 것이다. 이것은 주권국가들 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정당한 비판행위이며, 한·미 간에도 어김없이 적용돼야 함은 물론이다. 

반면에 한·미 안보 동맹관계, 주한미군, 북한에 대한 한·미 공조 자체를 특정한 이념의 잣대에 따라 원천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으로 규정해서 적대한다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규정한 바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종류의 「반미」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배척의지를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대응책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야당이 해야 할 일은 덮어놓고 「반미방치」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런 경계를 구분해서 대처하도록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당한 「대미 비판」과 잘못된 「반미」가 뒤섞여 있다는 데 있으며, 「반미」가 「대미 비판」 속에 교묘하게 침투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정부가 대책없이 엉거주춤하고 있으면 『정부가 「반미」를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야당의 문제 제기를 또 받을지도 모른다. 


(8월 11일자 한겨레 신문 사설)

합리성 없는 이회창 총재의 비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9일 현 정권이 급진세력의 무분별한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 근거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노근리·매향리 문제 등 주한미군 관련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데, 정부가 유효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또 정부의 급진적 통일 정책이 계층간 이념적 갈등의 심화로 국가 분열의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만 매달려 (현대사태, 의약분쟁 등) 엄청난 국정혼란을 방치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우리는 이회창 총재의 이러한 현실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총재로서 정부 정책에 대해 정당하게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디까지나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이 총재의 비판과 주장이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균형감마저 상실했다고 본다. 

이 총재는 소파협정, 매향리·노근리 문제 등에 대한 우리사회의 문제 제기를 반미운동이라고 단정하는 것인가. 소파협정이 일본이나 독일 등에 비해 불평등하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고, 미국도 이를 시정할 뜻을 비추지 않았던가. 노근리·매향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양민학살이 있었음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 반미운동이며, 매향리에서의 미군 사격훈련으로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어떻게 반미운동인가. 주한미군과 관련한 문제 제기는 한·미 동맹관계를 해치므로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자주성을 잃은 친미사대주의가 아닌가. 

정부가 반미운동을 방치한 의혹이 있다는 대목은 그나마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지만 반미가 돼서는 안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어, 지나치게 미국을 의식한다는 우려와 비판을 받는 마당에, 반미운동 방치 의혹 주장은 정략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정부가 남북 문제에만 매달려 현대사태와 의약분업 등 국정혼란을 방치한다는 비판도 지극히 무책임한 감정적 주장이거니와 정부의 통일정책이 국론 분열을 일으킨다는 주장 역시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한반도 냉전구조를 깨고 남북 대결상황을 화해·협력 쪽으로 바꾸려는 것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여야를 떠나서 갈등을 줄이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가는데 기여해야 마땅할 것이다. 갈등을 야기하고 증폭시키는 듯한 발언은 정치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스스로 좁힐 뿐이라는 사실을 이 총재는 바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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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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