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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통선대 기간 중에 계속된 미군기지 진격투쟁. 그리고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매향리 사격장 폐쇄 투쟁. 통선대원들은 '전원연행'을 결의하며 매향리로 향하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통선대를 맞이한 것은 2차선 도로를 꽉 메우고 매향리 진입을 가로막은 전경들. 그러나 통선대원들은 당황해 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대열을 이루어 전진했고 논둑길을 따라, 산을 타고 마을을 통해 2시간 가량의 행군을 강행했다.

물을 뿌려주는 주민들, 박수쳐 주며 반겨주는 주민들에 힘입은 대원들은 드디어 대책위 사무실에 도착했고, 곧 이어 모두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주한미군 철거가'는 대원들의 결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몸짓을 함께 하며 입성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서총련의 한 새내기는 "왜 우리의 땅을 이렇게 힘들게 와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며 투쟁을 결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많은 대원들이 더욱 자신들의 결의를드높이고 있었다.

전경들은 대책위 사무실 주변에 대열을 이루어 대기하고 있었고, 학생 사수대들과전경이 마주하게 되었다.
"전경학생 한마당이나 할까요" "팔씨름해요" "에이, 더워요. 그늘 좀 비켜줘요"
전경들과 학생들은 시종일관 대화와 웃음으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서로가 적이 아님을, 서로가 싸우고 싶지 않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매향리로 달려온 통선대원들은 초코파이 하나로 허기를 달래며 결의대회를 진행했고, 신명나는 길놀이로 '매향리 사격장 완전폐쇄와 주한미군 철거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시작됐다.

집회 도중 전경들이 대열을 정비하며 전진, 한쪽에서 학생들과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전경들은 방패와 곤봉으로 학생들을 밀어내려 했고, "찍어버려" "더 밀어"라며 명령하는 등 폭력 진압으로 일관했다. 이에 지켜보던 노동자 및 어르신들이 대열에 끼여들어 전경의 곤봉을 뺏고 삿대질을 하는 등,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 가운데 집회는 계속 진행됐고, 결사대가 태극기를 들고 사격장 진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철조망 너머 농섬 앞의 사격판 주위에는 작은 그림자들이 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매향리 사격장에, 우리의 땅임을 선포하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가슴 섬뜩해할 미군들의 표정을 느끼는 듯했다. 승리의 감격에 벅찬 사람들은 더욱 투쟁의 결의를 드높였다. 그리고 사격장에 진입한 결사대가 전원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다시금 되새기기도 했다.

한켠에서는 철조망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통선대의 '비밀병기'라는 여학우들이 앞장섰다. 연장도 없이, 장갑만 낀 채 맨손으로 나섰다. 우리 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담아, 그들이 멋대로 설치했을 철조망을 뜯어내고, 철문을 뽑아냈다. 그 의지가 결연해 보였는지, 전경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런 저지도 하지 않았다.

철문을 뽑아내고 대오들이 사격장 주변으로 몰려있을 무렵, 전경들이 사방에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책위 사무실 주변을 전경들이 에워싼 채로 몸싸움이 계속됐다. 전경들은 계속 안으로 좁혀 들어왔고, 사수대는 물론 본대 학우들, 노동자, 청년들이 전부 몸싸움에 나서게 됐다. 마치 먹이감을 몰아가는 맹수처럼, 시커먼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오자 일순 대오가 흐트러지는 듯도 하였으나, 곧 대열이 가다듬어지고 학생들은 맨몸으로 방패를 밀기 시작했다.

많은 학우들이 다쳤다. 전경의 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고, 곤봉에 맞아 뼈가 부러지고, 전경들에 밟혀 쓰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대의 여학우들을 포함, 열 댓명의 학우가 끌려가기도 했다. 학생들은 "보다 보다 이렇게 무자비한 전경은 처음이다. 우리를 때리기 위해 진압하는 것 같다"며 흥분하기도 했으나, "우리의 적은 전경이 아니라 그들을 조종하는 미국놈들임을 잊지 말자"며 매향리 폭격장 폐쇄 투쟁의 승리를 다짐했다.

경찰측에서는 연신 앳된 여학생의 목소리로 "우리는 합법 평화시위는 보장합니다. 여러분은 불법시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중단하고 이성을 찾으십시오"라며 해산 권유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는데, 전경들이 학생들을 향해 전진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기막히고 우스운 방송일 뿐.

전경에 둘러싸인 채, 전체 대오는 매향리 사격장 폐쇄와 연행학우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집회를 시작했다.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폭격을 알리는 황색 깃발을 찢어서 더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같은 촌놈한테는 '매향리 청년'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히트시키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이어진 전만규 위원장의 노래는 소양강 처녀를 개사한 것.

"해 저문 매향리에 깃발이 서면, 폭격은 시작된다 매향리 주민들아.
50년 짓밟힌 괴로운 심정 누군가 몰라주면 우린 우린 어쩌나,
아아 괴로워서 분통터지는 매향리 청년"

열렬한 박수속에 전만규 위원장은 3절까지 내쳐 불렀고, 발언자들이 연신 폭격장 폐쇄와 연행학우 석방을 욕하는 가운데 어느덧 밤이 되었다.

"매향리의 밤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농섬에 짙게 깔린 노을에서 시작되는 어둠과 하늘에 별이 빛나는 이 풍경을 짓밟는 자들은 누구입니까"라는 사회자의 말과 함께 매향리의 하루는 저물어 갔다.

그리고 대원들은 밤생 농성을 결의했다. 동지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떠날 수 없다며, 사격장에 태극기를 꽂고 당당히 끌려갔을 동지, 폭력 전경에 맨몸으로 부딪히며 끌려갔을 동지들을 되찾을 때까지, 매향리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이 날, 매향리에는 황색깃발이 오르지 않았다. 통선대원들은 앞으로도 그 깃발이 결코 오르게 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사격장에서 태극기가 휘날렸을 광경을 다시금 떠올리며, 사격장 폐쇄의 그날을, 주한미군 완전 철거의 그날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모두 풀려난 통선대원들은 승리에의 확신을 더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일의 범청학련 통일선봉대 매향리 투쟁 스케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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