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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손에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아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울 이번 명절에 공영방송 KBS의 박권상 사장은 공사 환경직 조합원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노고를 기리고 귀향버스를 대절해 사장이 직접 선물꾸러미를 안겨주며 한사람 한사람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할 때 우리의 박사장은 그들의 야윈 가슴에 해고통지라는 비수를 꽂아넣었다.

그 비수를 맞은 사람들 중에는 가난의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신장투석을 받아야만 생명이 연장되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를 남편으로 둔 조합원이 있고, 벌써 10년째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남편 회사의 수장인 박사장에게 나날이 고마움을 표시하며 살아가는 착한 부인을 둔 조합원이 있다. 누가 이들의 가슴에 감당할 수 없는 비수를 꽂아 넣었는가?

어제(6일) KBS 노동조합 집행위원 전원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경영진의 정리해고가 그동안 박사장이 재임한 기간동안 벌어진 일 중에서도 가장 부도덕하고 탈법적인 행위로 규정했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비단 환경직 조합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5천 조합원 모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며 그동안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해온 KBS 전체 구성원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폭거'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박사장이 환경직 조합원들을 포함한 전조합원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할 때까지 전국의 언론노동자, 그리고 양심있는 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밝혔다.


이런데도 나가야 하는가?
-한홍자 조합원의 딱한 사정-

어디서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해야할까? 착잡한 마음에 눈물만 앞을 가린다.

16년 전만 해도 아무 걱정 없이 남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아왔다. 건강하고 성실한 남편에 착하고 사랑스런 아이들 셋,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는데…. 그러나 남편이 만성신부전증으로 쓰러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일주일에 세번의 혈액 투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남편과 한창 공부해야 할 세 아이들은 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는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 하늘이 도운 듯 KBS에 청소 일자리가 생겨 본봉 6만원에 입사했다. 비록 겨우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월급이었지만 KBS는 우리가족 전체의 큰 희망이자 구원이었다. 그렇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행히 노조가 생기면서 월급도 오르고, 자녀들의 학자금 지원을 받아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하지만 남편이 요독증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갈 때면 병원비와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는 체면도, 자존심도 중요치 않았다.

남편이 병상에 누운 지 16년째, 남편은 그날그날 목숨을 부지해갈 뿐 수술을 포기한지 오래다. 신장기증자가 나타난다 해도 2천만원이 넘는 수술비는 우리 형편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돈이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을 때 일찌감치 제짝 찾아 앞가림이라도 하게 해야 된다는 주위 권유에 서둘러 자식 셋을 결혼시키고 나니 남는 것은 적지 않은 빚, 그리고 십수년 힘든 노동으로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는 늙은 몸둥아리 뿐…

두 달 뒤면 정리해고라니, 이젠 뭘로 병든 남편 뒷바라지를 해야 할까? 퇴근 후 남편을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걱정할 남편을 생각하니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조합 회의실에서 만난 한홍자 조합원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얼굴이었으나, 남편 이야기에 흐르는 눈물을 추스르지 못했다. 한홍자 조합원은 박권상 사장에게 꼭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사장님께서는 저희와 달리 많이 배우시고, 많은 것을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가깝게 계신 분들 이야기만 듣지 말고 맨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그렇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먹고 살게만 해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회사가 너무 어렵다면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줄여서 같이 사는 방법을 꼭 고려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부디 저희들 거리에 내보내지 말고, 저희들 여자지만 모두들 한 가정의 가장이고, 남편이 있어도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나와서 이렇게 하겠습니까, 부디 저희들 내버리지 마시고, 같이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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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장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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