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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에 데뷔했으니 문단 경력이 35년이다. 그런데 아직도 '판'이 살아있는 내 책이라곤 『관촌수필』이 유일하다. 1년에 2000권쯤 팔린단다. 그 알량한 인세로는 한달 치 아파트 관리비와 아이들 용돈도 안 된다. 나머지 열 한달은 어떻게 사느냐고? 나도 모른다. '문화정책'이란 거창한 개념이 문제가 아니다. 문인도 사람인 바에야 굶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 천대받지 않는다".

내년이면 회갑을 맞는 소설가 이문구. 그가 맛깔스런 풍자로 정곡을 찌르는 발언을 하자 참가 문인 50여명 모두가 '파안대소'한다.

지난 9월 23일과 24일 양일 간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열린 <2000년 문화정책 대토론회>는 문인들의 강팍한 경제적 현실을 개탄하는 '성토장'이었다.

최근 민족예술인총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전업작가의 한달 평균 수입은 이십 만원. 시인의 숫자가 3000여명에 이른다는 한국. 그러나 "시내 대형서점에서 판매되는 그들 모두의 시집 판매량을 합쳐봐야 류시화 한 명 시집 판매량에 못 미친다"며 문인들은 자조 섞인 푸념을 한다.

이 엇나간 현실과 척박한 문화 토양 속에서 대체 '문인들은 무얼 먹고 사는가?'

23일 오후 5시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박경리가 인사말을 전하러 회의실에 등장했다. 시인 박영근이 "벽초의 『임꺽정』과 더불어 한국 근대 대하소설의 효시를 이루며, 개화기를 전후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소설이다"라 극찬한 바 있는 『토지』의 박경리.

일흔 다섯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소녀같은 목소리로 이 노대가(老大家)가 입을 열었다.
"문인들의 현실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실망스럽지요. 하지만 어차피 문학이란 소수가 가난을 무릅쓰고 걸어온 길 아니겠어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진 못했지만 목적한 성과를 이루는 토론회가 되기를 바래요. 열심히 논의하시고 편히 쉬어 가세요".

이어진 토론회는 평론가 황광수, 김화임의 발제와 문인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으로 진행됐다.

황광수는 발제를 통해 프랑스 정부의 문인지원책들을 소개하고, 문화 마인드를 가진 기업들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덧붙여 '돈이 되는' 책만 만들려는 출판사의 상업주의도 비판했다.

시인 이가림이 문예진흥원의 문인창작지원금 제도를 비판하고 나선다.
"프랑스의 예술인 지원은 주택 무상임대 등의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일시적으로 천만 원, 이천만 원 '툭' 던져주는 건 우는 애들에게 사탕 하나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황광수가 첨언한다.
"나 자신도 창작지원금 제도에는 회의를 느끼고 있다. 지금의 지원 방식으론 '승자에게 다시 월계관을 씌워주는 형국'밖에 안 된다. 게다가 문화관련 재원이 영화 등의 '문화산업'에만 편중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며 민간 위주의 창작지원금 심의기구 설립을 제안한다.

도종환 시인이 정부 문화담당 부서의 문화마인드 부족을 지적한다.
"문화부면 문화부지, 문화체육부는 뭐고, 문화공보부는 뭔가? 요새는 또 문화관광부라지. 문화에다 무슨무슨 사족을 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문화부'를 만들고 문화 정책의 틀거리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한다".

젊은 문인 하나가 농담처럼 덧붙인다.
"우리도 의사들처럼 파업을 해서 작가도 이 땅에서 필요한 존재란 걸 문화정책 입안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참여 작가들이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쓰다.

베를린 자유대학 출신의 평론가 김화임은 "민주주의 헌법을 가진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치적 자유의 형태가 문화"라고 규정한 독일의 문화정책을 위주로 발제를 했다.

'민족의 창조적 힘은 정치적 활동보다 예술, 즉 문학, 음악, 건축, 영화 등의 창조적 과정 속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고 믿는 독일 문화정책 관료들의 마인드와 올해 9월 초에는 문화 후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법을 개혁하기까지한 독일의 문화정책 사례를 듣던 문인들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다.

"거참, 저렇게 해주면 정말 글 쓸 맛이 절로 나겠군"
"그러면 뭐 하나 이 사람아. 다 먼 남의 나라 이야긴 걸".

밤 11시가 넘도록 진행된 문인들의 의견개진은 다시 새벽까지 술자리 토론으로 이어졌다.

소설가 최인석, 구효서, 정화진, 김한수와 시인 고형렬, 박영근, 이승철,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지회 소속 작가 등 20여명의 문인이 '토지문화관' 2층 식당에서 자욱한 물안개 끼는 강원도의 아침을 맞았다.

새벽녘. 몇 잔의 소주에 취기가 오른 듯, 이경림 시인(여. 53세)이 뼈있는 우스개를 한다.
"나눠준 설문지에서 '생계비와 수입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질문 다들 봤지요? '얻어먹고 뺏어먹고 빌어먹는다!'라고 쓸 순 없고... 한심한 일이에요".

최인석과 정화진이 손뼉을 치며 웃는다. 그 웃음 속에 배어 나오는 아픔을 본 건 기자만이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소설가 김한수가 흉금을 털어놓는다.

"지금의 원고료로는 전업작가들은 굶어 죽기 딱 좋다. 최소 매 당 이만 원 정도로 원고료가 현실화 돼야 한다. 석 달에 100매 짜리 단편 하나 쓰면 이백 만원. 이걸 다시 셋으로 나누면... 최소 한 달에 칠십 만원은 돼야 마누라와 딸하고 버텨볼 것 아니냐".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한국 유수의 문학잡지인 『창작과비평』『문학과사회』의 소설 매당 원고료는 7000원선, 『실천문학』은 4000원이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최소 매당 10000원은 주는 사보(社報)에 꽁트 등의 잡문을 쓰는 문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물론 문인들 모두가 가난한 건 아니다. 지극히 적은 수의 문인에 한정되는 이야기지만 글을 통해서 수십 억원의 원고료를 벌어들인 이들도 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업을 하는 문인들은 막말로 '먹고 살만 하다'. 그러나 문인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비율은 말 그대로 지극히 소수.

소설가 이남희는 "선생님, 저는 문학이 좋아서 문학만 할래요"라고 말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그랬다.
"글을 쓰고 살아가면서 네가 받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의 총량'을 감내할 자신이 있다면 써라".

토론회에 참가한 '구로노동자문학회'의 조기조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작가란 문학을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다"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이 정의에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누가 함부로 반박할 수 있을까?

최근 소설가 출신 김한길이 문화관광부 장관이 됐다. 작가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이문구가 말한다 "문인 출신들은 왜 정치만 하면 문인 시절을 쉬이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김 장관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문학'은 한 나라 문화척도를 재는 바로미터다.

일찍이 시인 백석은 그의 시 <그리하여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문인을 "이 땅에서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하게, 그러나 높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2000년 지금. 이 땅을 사는 문인들은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하'기만 할 뿐 정신적으로 존경받지도,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못하다. 35년 소설을 써온 소설가의 1년치 인세가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한 달치 월급에도 못 미치는 현실. 이게 단지 '돈'만의 문제일까?

"우리 땅에서 글쟁이가 아프면 앓거나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노시인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서 윙윙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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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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