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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오후 5시경,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내 매점 옆, 일단의 학생들이 둘러서서 총여학생회가 작성한 '대자보'를 읽으며 삼삼오오 수군거리고 있다. 교내에 부착된 각종 대자보와 플래카드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관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내용을 유심히 읽으며 웅성거리고 있다. 유독 이 대자보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드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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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총여학생회 회장 인터뷰

<동일인에 의한 성희롱 재발생>이란 제목의 대자보엔 "9월 15일 신고된 도서관 열람실 성추행 가해자로, 9월 28일 다시 이 사람에 의한 성추행 사건 접수"란 머리말과 함께, 가해자로 지목된 대학원생의 사진(명확히 식별 가능한 흑백사진)과 실명이 첫부분에 공개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첫번째 사건' 당시 총여학생회가 게시한 이전 대자보를 읽은 바 있으며, 동일인(석사과정 98학번)이 불과 두 주만에 도서관 내에서의 성추행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는 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성희롱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는 별도로, 가해 학생의 사진이 공개된 데 대해선 학생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즉, '또 다른 재발을 막기 위해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며 적절한 조처라고 여기는 시각이 있는 반면, '당사자의 인권 침해 소지도 있어 지나치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그럼, 총여학생회 측은 왜 당사자의 강한 반발 및 학생들 사이의 논란을 예상하고서도, '사진 및 실명 공개'라는 강경한 방법을 택했을까? 부산대학교 총여학생회장 조헌임(영문과 4) 씨가 밝힌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자세한 인터뷰 내용 및 두 사건의 개요는, 이어지는 인터뷰 기사 "자신이 쓴 각서 내용을 어겼을 뿐 아니라..." 참조)

'지난 9월 15일 가해 학생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모여학생의 몸을 옆자리에 앉아 더듬었다. 피해자 및 전화 신고를 받고 간 여학생회 간부들 앞에서, 해당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시인하면서도, "피곤하고 산만해서 그랬다", "나이가 들면 그럴 수 있다", "미친 놈이 그랬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는 등 성희롱에 대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가 결여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총여학생회와 피해 여학생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문, 공개 자보, 성폭력 상담소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이수, 중앙 도서관 잠정적 사용 금지'를 요구했다. 그러자, "피해자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말했던 그는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은 못받겠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느냐", "남자로서 '공개자보'는 여자에게 처녀성을 잃는 것과 같다"며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피해 학생과 총여학생회 측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고, '성폭력 상담소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이수 및 도서관 사용 금지라는 두 가지 약속을 어길 시 사진과 실명을 공개한다'는 데 동의하고 각서를 썼다.(위 합의가 실린 각서 및 사과문 내용을 기자가 확인함)

그런데, 사건 발생 다음 날 피해 학생 및 피해 학생의 친구들과 성폭력 상담소에 간 그는, 5일간의 교육 프로그램 중 이틀만 참석한 뒤 연락을 끊어 버렸다. 또한, 성희롱이 행해진 중앙도서관 이용을 일시 중지한다는 합의 사항을 어기고 도서관에 출입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러던 차에 9월 25일, 그에 의해 동일한 일이 재발한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그리고 '여학생의 몸을 더듬는 정도'의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각서에 명시되었던 대로 그의 사진과 실명을 공개했다.'

기자는,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이모씨(석사과정 98학번)의 주장을 들어 보려 했으나, 총여학생회측 및 학과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첫번째 사건 이후 이틀간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씨의 태도를 알아 보려, 그를 담당했던 관계자를 취재해 보았다.

'부산 성폭력 상담소' 상담부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이 저지른 경미한 일 정도로 왜 이런 곳에 와야 하냐'며 피해자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었으며, 이틀간의 과정에도 성실히 임하지 않았고, 그 뒤 출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산대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및 총여학생회 사무실에는 현재 '사진 공개'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권익을 적절히 대변하고 있다"는 등의 반응이 있는 반면, "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긴 하나 실명 공개는 그렇다쳐도 사진 공개는 지나치다", "가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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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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