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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암석을 붙잡고 있는 흑송. 제법 깊은 바다에 겁도 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의 자맥질 소리를 들으며 돌계단을 내려가니 벌써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툭 튀어나온 암석을 바라보면 흑송의 머리부분만 보인다 하여 '소낭머리'라 붙여졌다.

서귀포 동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여름철이면 소문듣고 찾아온 이들이 물맞이 하느라 분주하다. 커다란 절벽 밑에서 콸콸거리며 맑은 물이 쏟아진다. 원래는 물줄기가 그렇게 드세지는 않았다. '35년 돈을 많이 번 일본인이 '소낭머리'근처에 와서 머물다가 그곳 암벽을 뚫어 큰 물줄기를 찾아내 물방앗간으로 이용했는데,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이 떠나가 그 물줄기가 지금에 이르렀다 한다.

또 전설에 의하면, 서귀포에 '진할망'이라는 신이 있었는데, 흉년들때 식량을 나누어주고 죄인이 앉았던 자리에 앉으면 죽는다 할 때 진할망이 정성으로 기도하니 흉사가 사라졌다. 그러다 세월이 흐를수록 신통함이 약해지고 미신타파 물결에 밀려 바다로 쫓겨나 좌정할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었는데... '소낭머리' 물줄기 근처에 촛농이 굳어 있는 건 '진할망'의 애절한 사연을 빌었던 거라 한다.

관광명소는 아니더라도 '소낭머리'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통에 들어가면 잇속까지 떨린다. 우물 안에 들어온 듯 한데, 남녀 따로 이용하게끔 시설이 되어 있다. 시민들이나 여행을 온 사람들이 늦은 오후 무렵 와서 시원한 물줄기에 몸에서 떨군 다음, 근처 식당을 찾아 시원한 바닷바람과 더불어 소주에 한치나 전복, 소라 한 점을 쏘옥 집어 삼키면 더 이상 무얼 생각할까.

양쪽벽을 보리밥나무가 엉겨붙어 바다바람에 살랑거리며 젖은 물을 떨구어낸다. 짙푸른 바다물결에 노는 섶섬, 흑송의 은은한 솔향과 노란 들국화, 개민들레가 어우러내는 풍경과 향기 그리고 남극의 냉기같은 바람이 아낌없이 '소낭머리'에서 쏟아져 나온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조금은 강하게 머리카락을 타는 바닷바람을 따라 소낭머리 절벽 오솔길을 지나 절벽의 한켠에서 바다 곁에 다가서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여름의 전사 "소낭머리"를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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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학신문기자, 전 제주언론기자, 전 공무원, 현 공공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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