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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제주 시골집 담벼락에는 봉숭아꽃이 초가지붕 씻은 빗물 먹고 피었다. 우리에게도 봉숭아 꽃물 들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른한 기억 속 마음의 향수가 남아 있는 '제주민속촌'한 귀퉁이 물허벅지고 물을 떠다 초가옆 항아리에 부어놓던 예전 제주인의 생활이 그대로 문지방 지문처럼 남은 곳.

선인들이 살던 집, 쓰던 도구를 그래로 옮겨놓은 향수어린 전통을 감상한다. 잊고 지워버리기 보다는 할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하고 우리 것을 사랑하는 마음, 탐라의 옛 모습을 확인해 보자.

옷벗은 파도가 부끄럼도 없이 실루엣처럼 밀려드는 표선해수욕장 오른쪽으로 가로수를 따라가면 방패연을 모자이크 해 넣은 널찍한 보도블럭 뒤로 민속촌이 있다.

제주의 생활풍속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제주민속촌. 백여 채에 달하는 가옥들은 비슷한 모양으로 재현해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 제주도민이 오랜 기간 살던 집을 돌 하나 기둥 하나까지 고스란히 옮겨와 복원해 놓은 것이다. 생활용구, 어구, 농기구, 석물 등 8천여점의 민속자료를 전시하고 또 전통민속공예의 장인들의 솜씨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성읍민속촌이 민속주와 민요가 생활 속에 배인 곳이라면 이곳 제주민속촌은 상업적 틀을 밖으로 만들어 오히려 안에선 상업적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성읍민속촌이 훌륭하고 꾸밈없던 제자리를 조금 벗어난 지금 제주민속촌은 교과서처럼 제주민속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민속촌 정문은 국보 건축물인 고려시대의 강릉 객사문(출장온 관리가 묵던 곳)을 본떠 지은 것이다. 곳곳에 각양각색의 돌과 나무와 공예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시공간에는 산촌·중산간촌·어촌·무속신앙촌·관아·장터·무형문화재의 집이 잔디 공원 주위로 고증과정을 거쳐 보존돼 있다.

해발 3백미터 이상에 위치해 반농반목을 하는 '산촌', 소나 말의 침범을 막기위해 설치했던 정낭이 이제는 집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린다고. '올래'라고 하는 꼬불꼬불한 길에는 오리들이 떼를 지어 뒤뚱거리며 산책하고 있다. 우리에겐 좀 생소한 '올래'라는 말은 부여시대나 몽골등지에서도 쓰였던 고어라고 한다.

이곳 전시 공간에는 제주특유의 '환경친화'적 화장실 '통시'가 있다. 검은 똥(?)돼지가 살며 인분을 먹어치우는데 자칫 설사라도 할라치면 돼지가 머리를 자꾸 털어 거꾸로 인분이 위로 튀는 웃지 못할 광경도 벌어지곤 하던 추억이 어린 자리.

70년대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던 통시지만 지금은 이렇게 민속촌에 들러서야 볼 수 있다. '통시'는 인분과 음식찌꺼기를 처리하고 거름을 생산하는 일석삼조의 슬기를 보여주는 예다.

'중산간촌'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말총공예, 죽공예, 석공예 작업이 재현되고 종가집의 모습, 숯굴, 멍석짜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어촌'은 해안가 물통, 낚시 도구들, 해녀의 작업도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무속신앙촌'에서는 섬 전체에 남아있는 점집, 신방집, 처녀상, 포제당, 미륵당, 해신당, 본향당 등의 민간신앙의 자취를 새겨 놓았다. 액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이나 해안가에 세운 방사탑, 바다신을 모시는 해신당, 한 마을의 토지와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을 위한 본향당 등.

양쪽으로 엄숙하게 시립한 돌하르방 뒤 '제주관아', 말그대로 제주목의 전경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형틀에 묶인 채 곤장을 맞아보기도 하는데 마냥 즐거운 모습들.

민속촌의 막바지에는 '무형문화의 집'에서 제주민요, 전설, 방언, 굿놀이 등 무형문화의 음성 및 영상자료를 볼 수 있고 제주 토속음식들도 마련되어 있다. 의미있는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 '제주민속촌'에서 제주의 독특한 분위기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눈이 총총히 쌓일적 민속촌을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후후 불며 돌아보는 것을 상상만해도 뭔가 그려지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제주민속촌(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 문의: 787-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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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학신문기자, 전 제주언론기자, 전 공무원, 현 공공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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