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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밑에 서니 얼굴까지 붉게 물들이고 금강사 앞 계곡에는 염불에 길들여진 산천어가 유유히 노닌다.

지난 주말 토요일 오후 10시에 부산 동래 지하철역을 출발한 관광버스는 일요일 아침 5시 40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진고개 휴게소에 예정보다 40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도착을 알리는 방송에 기다렸다는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등산화 끈을 매고 겉옷을 챙겨 입는다. 차에서 내려보니 겨울을 연상케 하는 싸늘한 새벽바람이 옷 안을 파고 든다.

인원 점검을 마치고 손전등을 들고 선두 그룹에 섞여 가이드를 따랐다. 몇 년 전 눈 덮인 비로봉을 오른 적이 있었지만 오대산 가을 산행은 처음이다. '단풍진 가을산은 얼마나 좋을까' 잔뜩 기대를 하며 비탈 밭 소로를 지나 들머리로 접어들었다.

10여분을 오르니 멀리 산등성이에는 싸릿대를 세워 놓은 것처럼 낙엽 진 나무들이 하늘에 맞닿아 있었다. 벌써 낙엽이 지고 겨울이 왔나? 단풍 구경은 틀렸고 땀이나 빼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앞사람의 발길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았다.

어둠 속에 가로막아 섰던 산 속으로 30분 가량을 올라가니 손전등이가 없어도 될 만큼 멀리 동쪽 하늘이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었다. 입가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속옷은 땀으로 젖은 지 오래다. 찬바람 때문에 얼굴과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2개의 산등성이를 더 넘어 섰을 때 동해에서 붉은 빛이 일어나고 주변이 사물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산 밑 쪽에서 느낀 대로 낙엽은 다 떨어졌다. 일행 중 누군가가 "예이, 단풍이 다 졌네"고 하자 "문학하고 담쌓나? 단풍이 아이라 낙엽 졌다 캐야지"면서 되받는다.

낙엽이 맞는지 단풍이 맞는지 헷갈리는 속에 벌써 목표지점이 저만치 있다. 멀리 해무(海霧)를 비집고 아침해가 솟아나고 노인봉 방향에서 부지런한 등산객들의 야호 소리가 새벽 정적을 깨고 있다. 오전 7시 10분경 능선을 걷다가 몇 번의 오름을 거듭한 끝에 해발 1338미터의 노인봉(老人峰) 정상에 섰다.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 평균 1시간 40분으로 잡고 있으나 쉬지 않고 오른 탓에 30분 가량 빨리 오른 셈이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사방을 둘러 보니 서쪽으로 동대산(1433)이 반대편에는 황병산(1407)이 솟아 능선을 어깨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차가운 바람으로 금방 한기가 덮쳐 왔다. 얼마를 기다린 끝에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여 한사람의 낙오 없이 상봉식과 기념 촬영을 하고 소금강 방면 하산 길을 택했다.

조금 내려가니 노인봉 산장이 나타났다. 정상의 9부 능선에 위치한 산장에는 10여 평 규모의 대피소 1동이 있고 그 옆 오두막에서 구렛나루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 지킴이 산 약초 차를 팔고 있다.

인상적인 모습에 끌려 따끈한 작설차 한잔으로 식은 가슴을 데우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비탈길로 내려섰다. 올라온 반대편 방향의 내림 길에는 띄엄띄엄 단풍나무가 실망감을 기대감으로 바꾸게 한다.

오전 8시가 넘어서야 낙양 폭포 주변 널따란 바위에 자리를 잡고 낙엽을 쓸어내고 둘러앉았다. 각자 준비해온 먹거리를 풀어놓고 "산행 묘미는 이 맛이야"를 연발하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소금강(小金剛)도 식후경이다 며 쾌청한 날씨를 반기며 계곡을 내려선다. 이른 아침이지만 단풍의 절정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소금강 금강사-구룡폭포-만물상-노인봉-진고개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는 약15㎞로 6시간 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진고개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이제 남은 코스는 소금강의 절경과 어우러진 단풍을 구경이다. 여유를 갖고 발길을 옮기니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를 정도로 절경이 펼쳐진다.

소금강은 원래 청학산이라 불렀는데 율곡 선생이 금강산을 축소한 듯 아름답다고 하여 작은 금강산이란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낙양 폭포에서 우측에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길 좌우엔 하늘을 가린 단풍나무들이 즐비하고 그 밑에 서니 얼굴까지 붉게 물들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니 스치는 바람에 건너편 나무에서 노란 잎이 스르르 떨어진다. '아까워라! 아까워라!'를 속으로 외치며 백운대에 도착했다. 수천 년 세월로 물길에 닳아진 화강암 반석은 햇살에 눈부시고 그 위로 투명한 옥수가 퍼져서 소리 없이 흐르다가 갑자기 휘감겨 쏟아지며 물보라 일으킨다.

괴면암은 억년을 두고 소금강을 지키고 가파른 절벽의 바위틈을 비집고 선 홍송(紅松) 대여섯 그루가 힘을 다투듯 하늘을 받치고 섰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만물상 앞에는 돌부리에 차이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치켜든 등산객과 행락객들이 뒤섞여 탄성을 자아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빨강 노랑의 색깔이 반석 위로 흐르는 옥수와 어우러지고 기암괴석에서 뻗어 나온 홍송의 붉은 가지 끝엔 솔잎의 푸르름이 더 짙어 보인다. 천지 만물의 조화! 이 아름다움을 자연 아닌 인간이 만들 수 있겠는가? 이래서 오대산 소금강의 단풍을 손꼽아 왔나 보다.

산 위에서 쏟아지는 흰 줄기 물기둥을 그림에서 보았는지? 화면으로 보았는지? 바로 눈 앞에 구룡폭포가 펼쳐지고 있다. 부서지는 물보라에 오색 무지개를 뒤로 하고 한참을 내려 오니 식당암이다. 마의태자가 군사를 조련시키며 밥을 지어먹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곳을 지나 목탁 소리 여운에 이끌려 10여분을 걸으니 고찰 금강사가 나온다. 금강사를 오르는 길목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바닥이 훤히 비치는 물 속에는 염불소리에 길들여진 듯 어린애 팔뚝만한 산천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금강사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4시간 여에 걸쳐 단풍과 어우러진 소금강 절경을 마치고 관리 사무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40분경. 흐르는 계곡물에 땀을 씻고 나니 뽀송한 느낌이 상쾌함을 더한다. 일행이 권하는 조 껍데기 술 한잔을 감자전 안주로 단숨에 들이키니 산행(山行)이란 두목(杜牧)의 한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오대산은 수량이 항상 풍부하고 산세가 장엄하면서도 부드럽다. 겨울에는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눈을 만끽할 수 있고 가을에는 진고개-노인봉-소금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타면 산행의 묘미와 함께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소금강은 이번 주말까지 단풍을 즐길 수 있고 휴게소에서 만물상까지 약 5㎞ 구간은 가족 산책코스로 적지이다.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이 곳에 얽힌 전설을 음미하면 속세를 떠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도심을 벗어나 멀리 한번 떠나 봄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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