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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저녁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쿤둔(고귀한 존재)' 시사회가 열렸다. '쿤둔'은 현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Tenzin Gyatso)의 생애 중 2세부터 24세까지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11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전국 7개 도시 순회 공연 중인데 먼저 광주에서 상영되었다.
영화는 6시부터 시작되었는데 홍보가 미흡했던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오지 않았다. 약 3백여명이 참석했는데 주로 불교신자로 보였고 라마를 주제로 한 영화이어서인지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였다.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주최측의 간단한 행사 의의와 달라이 라마 방한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오전 정부의 연내 방한 불가 방침이 전해져서인지 분위기는 조금 가라 앉아 있엇다. 그나마 영화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상영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 했다.
6시 30분 불이 켜지고 드디어 말로만 듣던 '쿤둔'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 덮인 웅장한 히말라야 산맥이 화면에 나타나면서 시작한 영화는 2살난 라모 된둡(쿤둔 어릴 때 이름)이 라마승에게서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된 후 라사(티벳의 수도)의 포탈라 궁에서 달라이 라마로서의 교육을 받는 모습을 차분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특이한 점은 연기자들이 전원 일반인이었는데 미국과 인도를 샅샅이 뒤지는 장기간의 캐스팅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달라이 라마의 조카(달라이 라마 생모역)와 티벳 마지막 수상의 아들(아버지역)를 만날 수 있었다. 전원 일반인이었지만 그들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어린 쿤둔의 역을 맡은 꼬마의 모습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이 외에도 린포체와 승려 그리고 티벳 국민에게 이르기까지 모두들 쿤둔에 대한 경외와 존경심을 잘 표현해 주었다. 어찌보면 우상화가 아니냐 할 정도로 쿤둔에 대한 이들의 숭배를 절대적이었는데 이는 쿤둔이 바로 티벳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들에게 고귀한 존재이고 바로 그에 대한 존경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신적 성숙을 도모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2시간 정도 상영되었는데 조금은 지루한 면이 있다. 이는 영화가 너무나 차분하게 진행되고 철저하게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해 나가기에 전체 상영의 4분의 3정도는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촬영 덕분에 영화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쿤둔을 신격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고 애쓴 모습이 역력하게 보여 주었다. 여느 어린이처럼 장난꾸러기 모습을 보여준 어린 시절, 중국의 무자비한 침공에 흔들리고 동족의 처참한 죽음에 절규하는 모습 그리고 쿤둔으로서의 자비와 대범함을 모두 담아내었다.
또한 영화에서 쿤둔이 악몽을 꾸는 장면도 몇 번 나오는데 이는 그의 심리를 묘사해 주는데 더없이 적합한 방법이었다. 이는 꼼꼼히 시나리오를 감수한 달라이 라마와 일정한 거리를 둔 카메라의 적절한 촬영 덕분이기도 했다.
쿤둔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대사 한 마디.
중국의 침입이 계속 되는 와중에 쿤둔은 린포체에 이렇게 말을 한다.
"링 린포체(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은 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모습에서 쿤둔의 약한 모습이 느껴지기 보다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엿보였다.
영화는 비록 헐리우드식 잔재미는 없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제공해준다. 바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 묘사한 티벳인들의 생활상과 여러 의식 및 예술이었다. 여러 장면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말로만 듣던 장례의식 - 죽은 자의 육신을 독수리들에게 줌 - 과 달라이 라마 즉위식 - 화려한 의상과 경건한 의식 - 장면이 눈에 띄였다. 특히 영화 전개와 더불어 나오는 만다라(깨달음의 세계)는 아마도 쿤둔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생각해가면서 보는 것도 영화의 맛을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카메라는 <파고>, <바톤핑크>의 로저 디킨스, 음악은 민속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이 맡았고 <순수의 시대>로 19세기 귀족사회를 재현했던 필 마로코가 의상과 미술을 맡았다. 음악은 몇 군데에서 음질이 조금 안 좋아서 귀에 거슬렸지만 영화 분위기에 맞게 잘 표현되었고 특히 라마교의 의식에 나온 복장들은 놀라우리만치 잘 제작되었다.
종반을 치닫으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전개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북경까지 가서 모택동을 만나 티벳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쿤둔의 노력과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티벳인들의 모습이 나오면서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일정한 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쿤둔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거리감이 오히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 큰 감동을 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티벳으로의 귀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쿤둔은 인도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용했던 망원경을 가지고 온 쿤둔이 그 망원경을 통해서 세상을, 어쩌면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과 동포가 있는 티벳을 바라보면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나오면서 보니 몇 몇 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이 영화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기에 더욱 더 그들의 감정을 자극했으리라.
영화는 비록 가슴 아픈 사실만 보여주었고 여전히 달라이 라마는 인도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다. 허나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바로 그를 걱정해주고 축복해주고 기도해 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이전에도 외롭지 않았다. 언제나 자비와 지혜가 충만하기에...
인상적이었던 대사 한마디.
쿤둔이 인도 국경을 넘을 때 인도 군인이 쿤둔에게 물었다.
(군인) 실례지만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쿤둔) 난 그저 평범한 승려일 뿐입니다.
(군인) 당신은 부처이십니까?
(쿤둔) 나는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물에 비친 달처럼. 단지 당신이 나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의 사진은 쿤둔 공식 홈페이지(www.kundun.co.kr)와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 위원회 홈페이지(www.dalailama.or.kr)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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