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태일

그의 죽음은
너의 시작이었다
나의 시작이었다
하나 둘 모여들어
희뿌옇게
아침바다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밤중에도 우리들의 시작이었다


이 시는 시인 고은 님이 열사 전태일을 기억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2000년 11월 7일 초판이 발행된 따끈 따끈한 전태일열사30주기기념시집-전국노동자문학회편 '너는 나의 나다'의 제4부에 실려 있다.

전태일 열사와 그의 소중했던 친구들에게 바치는 이 시집은 제1부 일터에서(김기수-그날이 오면, 조선미-동생의 작업복을 빨다가 등), 제2부 삶터에서(기은미-사랑니 이야기, 정지원-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때 등), 제3부 꿈과 투쟁(강세환-눈 내리는 밤, 오철수-소리없는 절규 등), 제4부 전태일(김준태-청계천에서, 故문익환님-전태일 등)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연극 '전태일'이 상영되었다. 노래극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이번 공연은 극단 한강(제16회 정기공연)이 제작하고 전태일열사30주기 추모사업위원회에서 주최했다. 꽃다지(박향미, 이태수,조성일, 정혜윤)와 황승미(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씨가 노래하고 전향미 씨가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전사를 떠올리는 붉은 색 의상으로 가수들은 공연내내 무대 한쪽 단상에서 코러스를 넣는 등 노래극의 여러 주요한 부분을 맡았다.

故문익환님의 전태일 시로 시작하는 팜플렛에 나온 추모사업위원회 위원장 김금수 씨는 "전태일이 살아 있다면 올해로 쉰 두살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전태일을 스물두살 젊은이로 언제나 기억한다"고 했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의 손동혁 씨는 기획의 글에서 "억압과 착취가 있는 그 자리에,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사랑이 있는 그 자리에 전태일이 있습니다. 이름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지만 바로 그 사람이 전태일입니다. 내가 전태일입니다!"라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인지 11명의 배우들이 돌아가며 전태일의 역을 맡았다.

작품 소개를 보면 "전태일은 영웅이나 성인이 아니다. 고뇌하고 욕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흑과 백이 공존하는 인간적 요소의 총화로서의 밑바닥 인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인물은 모두 전태일이자 모두가 주인공이다."라고 했다.

1965년 겨울 2월 어느 날, 거리에서 '어린 전태일'로 시작하는 이 공연은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20분, 평화시장 안 인간시장으로 모두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다섯번째 장, 1969년 5월 1일 저녁 9시, 은하수 다방에서 관객은 박장대소했다. 동료를 규합하려는 전태일(기만서 씨)은 열변을 토하나 피곤한 재단사들은 너무 피곤해서 졸고 있는 장면인데, 기만서 씨의 연기가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장인 1969년 9월 초순 점심시간, 평화시장 작업장에서는 전태일과 재단사들이 잠꼬대하는 시다를 깨워 설문조사를 한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 8년동안 일했어도 변한것이 없다고 자조하는 어느 여직공의 '난 안해요'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관객 중 천진난만한 목소리의 어느 아이가 크게 따라 하는 바람에 관객들은 크게 한번 웃을 수 있었다. 어린 시다들로 나오는 어린 천사들은 영림초등학교 연극반 도깨비(손은지, 이단비, 임지희, 이수희) 친구들이었는데 어찌나 연기를 잘 하던지 매우 앙증맞았다.

마지막 장에서 미싱사는 시다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이름을 묻는다. 식순이, 미싱 몇번 등으로 이름조차 없이 살았던 여직공들에게서 11명의 전태일이 분신하자 살에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터져 새싹이 돋는다. 시다가 미싱사의 몸에서 돋는 새싹으로 전태일을 덮고 '임종의 노래'와 '전태일'노래로 극은 마친다. '근로 기준법을 적용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마라!'라는 짧은 외마디로 스러져간 열사 전태일, 우리는 과연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있는가!

이번 공연은 처음부터 대본이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창작이라는 이름 하에 한 번 돌려볼 때마다 작품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곡자들이나 가수, 배우들이 무척 힘이들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노래극 전태일은 감동의 물결 그 자체였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정말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마치는 글에서는 "노동자라는 단어가 기계 부속품처럼 불리며 침묵과 체념 그리고 외면만이 노동자를 짓누르던 시대, 우리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어둠 깬 외침은 영원히 유효한 좌표이자 깨우침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며 부르짖었던 스물두살 청년의 정신은 꺼지지 않을 빛이자, 소외된 노동과 가혹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채찍이 된다."고 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전태일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전태일이 자신들의 처지를 바보라고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바보처럼 지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준태님의 '청계천에서'로 이글을 마친다.

청계천에서

그대를 꽃이라 부른다
불처럼 타는 가슴 여기저기 때리며 큰못을 박는
이 따위 더러운 돈, 진실로 하루 세끼 라면값도
안되는 몇 푼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정정당당하게 한번쯤 일해 보기 위하여 싸우고
소리높여 죽은
그대를 속삭이듯 꽃이라고 부른다
침묵 속에서 혹은 저 이름모를 무수한
봉제공장 바닥에서
살을 누비듯이 헝겊을 누비고 단추를 달고
눈물을 삼키는 친구들은
그대여
아직도 부르르 주먹만 살고
적수공권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피투성이 음침한 거리 먼지낀 하늘 아래
날마다 다시 살아 그 가슴에 잘 타는
기름을 붓고
또다시 온몸에 불을 붙이는
그대를 입을 모아
꽃이라고 부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