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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별일 없으셨죠?

며칠 전 구례와 하동 땅을 다녀왔습니다. 화사하고 포근한 가을 하늘아래에서인지 그곳은 더욱 평화롭고 따사롭더군요. 특히 섬진강을 끼고 도는 여정은 저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섬진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원신암 마을에서 소리없이 미약하게 그 발걸음을 시작한 섬진강은 3개도 12개 군에 이르는 5백 리 길(212.3km)을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처럼 흘러 광양만에서 잔잔하게 바다로 빠져들죠.
하지만 속세에 찌든 우리 같은 사람에게 섬진강의 등장은 조계산 쪽에서 흘러나오는 보성강과 합수머리를 이루는 압록부터랍니다.

섬진강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광주에서 출발한 저는 15, 29, 27번 국도를 거쳐 60번 지방도로를 잠깐 달리고 다시 국도의 연속인 17, 18번 국도를 지나 섬진강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19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섬진강을 보고픈 마음이 급하다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차분히 주변 경관을 즐기면서 달리는 국도 맛이 여행의 참 맛이지 않을까 싶네요.

잠깐 섬진강의 도로라고 할 수 있는 19번 국도에 대해서 말씀 드릴까요. 19번 국도는 원주 시내에서 시작해 충주, 남원, 구례, 하동을 거쳐 남해군 미조리에서 파랗디 파란 남해 바다를 앞에 두고 기나긴 여정을 마감합니다. 19번 국도는 산악 도로로 유명한데요 국도를 타고 있으면 백두대간의 힘을 느낄 수 있죠. 허나 이 녀석도 구례에서부터는 한없이 차분하게 바뀌죠. 아마도 구례의 포근함과 섬진강의 유연함 때문이지 않을까...

두꺼비와 달빛의 섬진강

참 당신의 이름에도 뜻이 있듯이 섬진강도 그 이름에 사연이 있습니다. 고려 우왕 때 섬진강 하구로 왜구들이 침입했었죠.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들은 광양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그 두꺼비의 이름을 따 두꺼비 섬(蟾)자와 나루 진(津)자를 써서 섬진강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그런데 말이죠 두꺼비 섬자의 또 다른 뜻이 달, 달빛이거든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섬진강에 비치는 달빛의 아름다움에 일찍이 취한 선인들이 달빛이 아름다운 나루터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 아닐까요?

그럼 이제부터 제가 보고 느낀 섬진강의 멋과 낭만에 대해 전해 드릴까합니다. 전날 밤 무리한 탓에 버스를 타자마자 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잠에 깬 저는 평소처럼 창 밖을 바라보았죠. 근데 여지껏 보았던 전경과는 전혀 다른 경치가 펼쳐지더군요. 그 모습은 제가 아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강들 -한강, 낙동강...-과는 그 격을 달리하더라고요.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은 멀리서 보더라도 포근함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끊임없는 변화와 그리 넓지 않는 강폭은 아기자기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네요. 다 저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입니다.

강 주변의 논, 밭, 그 푸르름을 마음껏 그러나 결코 거만하지 않게 뽐내는 숲 그리고 백사장과 자갈의 조화는 섬진강의 가치와 미를 한껏 드높여주더군요.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그저 묵묵히 흘러만 가는 강만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무미건조 그 자체겠죠?

참 그것 아세요. 차를 타고 바라보는 경치의 또 다른 맛을...
바로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가로수와 자연스레 자라있는 수목들 사이로 강의 자태를 엿보는 맛. 아마도 자신이 찾던 이상형의 사람 앞에서 고개는 숙였지만 곁눈질로 조금씩 훔쳐보는 이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요?

강변 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때론 손을 내밀면 닿을 것처럼 가깝다가 때론 너무나 멀리 떨어져 보일락 말락하는 구불구불한 길이 더욱 좋죠.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애하는 모습 같다고 할까요?

흔히 섬진강은 저무는 강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만큼 해질 무렵의 경치가 좋죠. 허나 오전에 비치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강물의 경치도 그에 못지 않죠. 음∼∼ 해질 무렵의 강물 빛이 금빛이라면 오전은 진주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제 탄생석이 진주입니다. 그래서 더욱 좋아하는 걸까요?

잠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서 여름 내내 태풍과 장마 그리고 병충해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어 이제는 그 황금빛을 발하는 평야를 보는 것도 여행의 기쁨을 배가 시켜줍니다.

마른 모래 & 물기 머금은 모래...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이쯤에서 그치고 이제는 차에서 내려 강에 다가갑니다. 제가 내린 곳은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라는 곳인데 휴식 공원이 있어서 주차하기도 편하더군요.

이제까지 계속 찬사와 감탄만 늘어놓았는데 막상 강을 직접 대하니 더욱 감탄하게 되네요.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제가 아는 모든 찬사를 다 해야겠습니다.

강둑에서 내려와 폭신하게 밟히는 모래 위를 걷고 있노라니 어머니께서 겨우내 덮을 솜이불의 호청을 꿰매실 때 그 위를 뛰어다니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 모래를 손으로 퍼봤습니다. 금새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버리지만 그 촉감은 참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 촉감을 색다르게 해주는 것은 바로 강물이죠. 강으로 다가갈수록 물기 하나 없이 햇볕에 바싹 마른 모래에서 조금씩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모래로 바뀌어갑니다. 물기가 묻으니까 보드라움은 덜하지만 참 시원하더군요.

드디어 섬진강에 다가섰습니다. 아니 이미 마음은 섬진강에 빠져들었겠죠. 다만 시공간에 매여 있는 이 몸뚱아리가 이제서야 온 것입니다. 차안에서 보던 섬진강의 모습은 이곳에서 또 다시 바뀝니다. 이제서야 그 참모습을 본 것입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산들 사이로 강은 유유자적하면서 흘러가고 있네요. 강이 흘러오는 곳은 산들에 묻혀 극한으로 수렴되는 것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물론 모래도 함께하죠. 그날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자욱하게 산에 걸쳐 있어서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혹시 저 곳이 우리가 꿈꾸는 청학동이 아닐까요?

몸을 돌려서 강물이 흘러가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저의 육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에는 5백리 여정의 종착지인 푸른 남해안 바다로 합일되는 섬진강의 마지막 선연한 모습이 보여줬습니다. 저의 상상력이 너무 심하다고요. 그렇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런 상상이 제 마음의 때를 조금이라도 씻어준다면 더한 상상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바다는 아름다운 강들이 모인 곳으로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는 경지를 넘어선 無美의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바다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추함, 더러움까지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여서 그들을 정화하죠. 모든 미추가 바다에서 새롭게 태어난답니다. 그러기에 바다는 모든 재창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죠.

기사 '삶의 애환을 안고 흐르는 강...'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 인터넷 신문 '모난돌(www.monandol.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my.dreamwiz.com/mailtojh 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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