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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곤히 잠들어 있는 꼬맹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일요일은 놔두면 10시 정도까지 늦잠을 자는 녀석인데 오늘은 코엑스몰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10시 15분부터 상영하는 영화를 보아야 하니 8시 전후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8시 20분 경에 안산을 출발하였고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주차장에 50분만에 도착을 했습니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면 삼성역입니다. 주차비는 시간제한 받지 않고 2000원인데 경차를 이용하면 1000원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프리퀀시는 "주파수"라고 해석하는 건가요? 영화 이름이 왜 주파수인지는 영화를 보게 되면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됩니다. 주인공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무선교신기로 교신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쓰는 그 무선교신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영화는 화면 가득히 태양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래픽으로 시작합니다. 태양 흑점이 크게 활동을 하면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뉴욕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TV 뉴스를 통해 합리화하면서 뉴욕에 오로라가 발생할 때는 다른 시간차원이 공존한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오로라를 보지 못한 사람은 오로라가 어떻게 보이는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로라가 무지개처럼 정적인 것이 아니고 빛이 커튼같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귀신처럼 막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를 장르로 치면 어디에 분류해 넣어야 할지 모호합니다. 화재 관련 영화인지, 범죄 수사 영화인지, 공상과학 영화인지, 환타지아 영화인지 구분이 잘 안됩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등장을 한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딥 임팩트"나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를 공상과학 영화라고 할 수 있다면 "프리퀀시"는 공상과학 영화에 넣기는 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으로 공상과학적인 면을 다소 가미한 정도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범죄 수사를 기본 스토리로 한 환타지아 영화이고 화재 진압 장면을 볼거리로 가미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은 현재를 사는 젊은 형사지만 영화 전반을 통하여 그의 아버지인 소방관의 활약도 대단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뉴욕 하늘에 오로라가 보이는 날, 아버지의 유품인 무선교신기로부터 아마추어 무선 동호인을 찾는 과거의 아버지로부터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형사가 되어 있는 아들은 아마추어 무선 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의 아버지와 교신을 하게 됩니다. 과거의 아버지의 아들은 아직 자전거 타는 것도 마스터 하지 못한 꼬맹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교신을 하면서 둘이 서로 과거와 미래에 살고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믿지 못할 사실을 믿게 해준 매개체가 된 것은 미국의 프로야구입니다. 참으로 미국인다운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됩니다. 상상력을 조금만 가동시키면 굳이 영화를 보지 않고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꼭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소방관인 아버지가 바닷가에 있는 창고 화재 진압 때 사망하여 현재는 아버지가 살아 있지 않은데 뉴욕의 밤하늘에 오로라가 생기는 저녁이면 과거의 아버지와 미래의 아들이 교신을 하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 창고 화재 때 아버지가 다른 통로를 선택했다면 살았을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가 다른 소방관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과거의 아버지는 다음 날 실제로 창고 화재 진압에 출동을 하게 되었고, 사람을 구해 들쳐 업고 나오면서 연기에 휩싸인 쪽으로 나가려다가 미래의 아들이 해준 말을 기억하고는 불꽃이 튀고 있는 다른 쪽 문을 선택하여 뛰어듭니다. 그 통로는 물건을 미끌어뜨려 바닷가에 정박한 배로 바로 싣는 컨베이어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길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순식간에 바다로 안전하게 떨어지는 순간 조금 전에 소방관이 있던 방이 폭발합니다.

소방관 아버지가 30년 전에 죽은 날이라 하루종일 우울하게 지내고 있는데 친구들이 "네 아버지는 10년 전에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폐암으로 죽지 않았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주인공인 젊은 형사의 표정에 웃음이 돌아옵니다. 그날 밤 다시 뉴욕의 밤하늘에 오로라가 펼쳐지고 아버지와 아들은 교신을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들려준 이야기 때문에 아버지가 과거에 죽을 날 죽지 않고 살아남아 미래의 아들과 다시 교신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거실에 있는 가족 사진에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아버지 없이 찍었던 사진에 아버지가 보이는 배려까지 감독은 하고 있습니다. 원래 시나리오에 그렇게 쓰여 있겠지만.

다음 날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유로 인해 더 살고 있다는 것과 미래의 아들과 나누고 있는 애틋한 정 때문에 들뜬 마음으로 아내가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병원엘 찾아갑니다. 소방관이 찾아 가지 않았다면 의료사고로 죽을 뻔한 사람이 살아나는 흐트러짐이 일어납니다. 응급실에서 소방관 아내 덕에 살아난 사람은 "나이팅게일 살인사건"을 저지른 즉 간호사만을 골라 엽기적인 살인을 한 바로 그 살인마입니다. 미래 속에서 당시의 신문과 수사자료를 찾아보던 주인공은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한 간호사 중에 자신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는 기겁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 살인마와 소방관과 경찰관이 과거와 미래 속에서 동시에 살인마의 살인을 저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전개되고 영화는 크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게 됩니다.

미래와 과거 속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살인마와 동시에 격투를 벌이는 기상천외한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누구나 살인마가 과거 속에서 죽는 모습을 연상하게 될 것인데 역시 영화를 찍는 사람이 상상력은 한 수 위인 듯 살인마는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게 뭐 한 수 위냐 하겠지만 과거 속의 아버지가 쏜 총이 아니라 미래 속의 아들이 격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에 아버지가 나타나 살인마를 한 방에 요절을 낸 것입니다. 미래 속의 형사 아들이 살인마가 쏜 총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살인마가 누군가의 총을 맞고 나뒹군 것입니다. 아들이 어리둥절하면서 믿기지 않는 눈으로 둘러보니 뒤에서 지금까지 무선교신기로만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서 있는 것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한 늙은 아버지가 말입니다. 둘이 아마추어 무선기로 교신을 하지 않았으면 10년 전 폐암으로 죽었을 아버지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에 담배를 끊어 다시 바뀐 현재까지 살아 아들을 구한 것입니다. 아들은 일어나 아버지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껴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속에서 살인마와 아버지가 싸운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가 쏜 총에 살인마는 오른손을 잃고 도주를 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지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매트릭스"보다는 덜 헷갈리지만. 미래 속의 형사 아들이 어떻게 해서 살인마의 공격을 받게 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됩니다.

영화에는 과거 소방관 아버지가 나무 책상 위에 인두로 새기는 글씨가 미래의 아들 책상 위에도 동시에 새겨지는 장면, 현재 살인마의 손이 달라진 과거 속에서 총에 맞아 없어지는 순간 미래 속에서도 없어지는 장면 등이 그래픽으로 멋지게(?) 처리되어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인공인 미래의 형사가 무선교신기를 통하여 과거의 자신인 꼬맹이와 교신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관 안에 조그만 웃음의 소용돌이가 이는데 야유의 소리가 아니라 긍정적 재미의 소리입니다. 과거의 자신과 교신을 하며 어이없어 하는 주인공의 연기모습에 젊은 여성들은 매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뭐 저런 정도로 생긴 놈을 주인공으로 썼을까 하는 생각을 비로소 완전히 불식시키게 되는 장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장면을 영화의 초반에 넣었다면 작품의 수준에 먹칠을 할 뻔 한 것인데 관객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교신을 현실로(?) 납득을 하게 되고 클라이막스로 치닫기 바로 전의 시점에서 그런 장면이 연출됩니다. 감독과 제작자가 섬세한 곳에까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 나타난 환상적인 가설 때문에 엉성한 부분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바꿔지는 과거 일을 바꾸기 전과 바꾼 후를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형사 아들과 소방관 아버지뿐이라는 것, 미래의 아들이 애인과 불화로 인해 헤어졌다가 과거가 바뀌면서 어떻게 다시 맺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누락이 되어있는 점, 과거의 스토리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아들만 미래에 해당되는 현재를 살았고 아버지는 바뀐 과거를 고스란히 경험하며 살아온 것으로 표현되는 등 뭐 그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영화를 보는 묘미가 반감되는 일은 없습니다. 보여줄 것만 압축하여 숨돌릴 틈없이 이야길 전개하면서 사람의 애간장을 졸이다가 깔끔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원없이 절묘하게 표현을 했으니 애나 어른이나 보고나면 찝찝한 것 없이 감동을 느끼며 보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전날 메가박스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영화를 예매하면서 일본 영화와 "프리퀀시"를 놓고 어떤 걸 볼까 재다가 꼬맹이가 "프리퀀시"로 강력 주장하여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발상 자체가 "고스트"같이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가지고 무리없이 스토리 전개를 했으며,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인간 사이의 정과 스릴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킨 점을 놓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한 낮이고 점심 때라 아셈 먹거리 광장으로 가 점심을 먹고 서울 문고에서 2시간 정도 책을 본 다음 책을 서너권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분당에 감자탕을 기가막히게 잘 하는 곳을 개발해둔 곳이 있어 그곳에 들려 저녁을 감자탕으로 포식을 한 다음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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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캐나다에서 GM 그랜드 마스터 테크니션으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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