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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한 노경진 기자
사진 / 노순택 기자


(30일간의 집중연재 둘째주 세째날---오마이뉴스는 11월 21일부터 4주간 삼성의 편법 세습의 진상과 그 책임을 묻는 기사 <이재용은 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가>를 집중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참여연대와 함께 합니다.

'삼성 이재용은 우리와 다르다'. 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왜 우리와 달라야할까요. 그는 왜 이미 우리와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걸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단서를 찾기 위해 삼성 3세 '이재용'이 아닌 평범한 '이재용'을 찾아나섰습니다. ---편집자)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이재용(32) 씨는 11월 27일 월요일 여느 때와 같이 오전 7시에 눈을 떴다. 후다닥 준비를 하고 교통정체시간을 피해 7시30분에 집을 나선 재용 씨는 8시15분 경 직장인 국민은행 종암동 지점 5층 시스템팀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이상했다. 상사인 과장이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무슨 일일까. 아직 출근시간인 9시까지는 40분 이상 남았는데.

아차! 이번주는 재용씨가 남들보다 2시간 전인 7시에 출근해서 시스템을 점검하는 주였다. 그것을 깜박하고 평소대로 출근했던 것이다. 덕분에 재용씨는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시까지 눈치를 봐야 했다.

편법상속 시비에 올라 있는 삼성 3세 이재용(32) 씨는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 씨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지난 7월1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것이 거의 전부다.

사회 유명 인물의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연합뉴스와 중앙일보 인물DB에도 삼성 3세 이재용 씨에 관한 정보는 없다. 오직 조선일보 인물DB에만 다음과 같이 나와있을 뿐이다.

'이재용. 1968년 6월 23일생. 기업인. 재산-해당하는 자료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재용'이라는 이름은 흔하다. 인터넷 전화번호부로 검색을 하면 1257명이나 나온다. 이들은 모두 이재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우리 주위의 이 평범한 이재용을 찾아나섰다.

이들의 삶과 생활을 통해 삼성 3세 이재용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그 사회적인 출발선은 얼마 만큼 공정하고 어느 만큼 불공평한지, 삼성 3세 이재용에 담긴 이 시대의 함축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6월23일과 24일, 딱 하루 차이

"실례합니다만, 주민등록증 좀 볼 수 없을까요?"

이 시대의 평범남 이재용 씨. 어딜 가도 만날 법한 착실한 직장인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국민은행 종암동 지점에서 만난 이재용 씨에게 대뜸 꺼낸 말이다. 재용씨는 별 꺼리낌 없이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68년 6월 24일생. 삼성 3세 이재용과 같은 나이일 뿐 아니라 생일도 딱 하루 차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름이 '똑 같지'는 않았다. 삼성 3세 이재용은 '在'자인데, 6월 24일 생 이재용은 '載'자였다. 이 하루 차이와 한글자 차이가 두 사람의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놨을까.

이재용 씨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청주대학교 전산과를 졸업한 그는 92년 국민은행 시스템팀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9년째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직책은 계장이 되었고, 1200만원 정도였던 연봉은 이제 3000만원이 됐다.

11월27일 사무실에 만난 이재용 씨는 근무시간 내내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시스템을 점검했다. 오후 2시30분. 이재용 씨 자리에 상사인 정상일 팀장과 안병준 과장이 다가오며 업무에 대해 말을 건넸다. "지금 난리 났어. 두 달동안 어떻게 할 거냐고 말이야. 전환하는 데 두 달 걸린다는데." "그런데 그 테이프가 외부 백업 받은 거로 써야 하는데요." "지금 수신과에서는 이것 때문에 일을 못하겠대."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재용 씨는 갑자기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잠시 이재용 씨의 급여명세서를 들여다 보자. 1월 소득합계-1백71만5천400원, 공제합계-79만2천800원(갑근세 24만3천800원, 사원연금 22만3천500원 등 포함), 차감지급액-92만2천600원. 다른 달도 비슷했다. 이씨는 이렇게 세금이 꼬박꼬박 원천징수되는 '유리지갑'을 가지고서 결혼 8년만에 내집을 장만했다. 내년(2001년)에 1억7천만원짜리 석계역 부근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두 차례 이사를 해야 했고, 지금은 5천만원짜리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내 집을 얻기 위해 은행에서 많은 부분 융자를 받았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 달력에는 매달 30일에 '주택은행에 중도금 이자 갚는 날'이 표시돼 있다.


두 이재용의 결혼

조선일보 98년 6월 9일자는 삼성 3세 이재용의 결혼식을 이렇게 전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30)씨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21)양이 8일 낮 12시 경기도 용인호암미술관 정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강영훈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주례로 40분간 진행된 이날 결혼식은 양가 가족과 친인척, 신랑-신부의 친구, 양 그룹 회장-사장단 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중략) 커플은 홍콩과 일본으로 5박6일간 신혼 여행을 다녀오며, 6월말까지 서울 한남동 이회장 집에 머물다 7월초 미국으로 간다. 세령씨는 재학중인 연세대 경영학과(3학년)를 그만두고, 미국 보스턴대 심리학과 3학년에 편입할 예정이다."

6월 24일생 은행원 이재용 씨는 지난 93년 같은 대학 1년 후배인 이모 씨와 고향인 천안에서 결혼해 올해 5살된 딸과 3살된 아들을 낳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씨와 부인은 동성동본이다. 동성동본 결혼 금지에 묶여 결혼신고를 할 수 없었던 재용 씨는 주택임차융자를 받을 수 없어 반지하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96년 큰 애를 낳은 후, 부양가족으로 신고한 후에야 융자를 받아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재용 씨는 현재 국민은행 주식이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번 회사에서 우리사주를 조금 받았기 때문이다. 재용 씨가 받은 우리사주는 모두 500주. 한주당 1만1천원에 받았다. 재용 씨는 "지금은 아마 만4천원 정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내년에 팔 수 있을 때는 얼마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 삼성 이재용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겠죠?"

ⓒ 오마이뉴스 노순택
취재팀은 11월 27일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재용 씨와 같이 있었다. 사무실에서부터 점심 구내식당, 퇴근 후 실내 포장마차까지 동행했다.

182cm의 키에 몸무게 80kg이 넘는 건장한 이재용 씨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같은 사무실 상사인 안병준(44) 과장은 이재용 씨에 대해 "조용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동료인 신태섭(31) 씨는 "순한 성격인 재용 씨는 때로는 자기주장을 펴야 하는 데도 그러지 못한다"라고 평했다.

사회생활 8년차, 30대 초반인 이재용 씨의 현재 꿈은 안정된 생활이다. 하루 근무가 끝나고 월계동 집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재용씨는 "안정적인 수입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고 싶은 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라고 말했다.

- 은행이면 충분히 안정적인 곳 아닌가요?
"이제까지는 그랬지만 요즘은 좀 불안합니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나에게도 곧 다가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30대 초반은 한창 능력을 발휘할 때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은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 자신이 삼성 3세 이재용 씨와 나이도 같을 뿐 아니라 생일이 하루 차이라는 사실을 알았나요?
"아뇨. 그 사람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나와 같은 나이인지는 몰랐습니다. 나이가 많을 줄 알았어요. 사실 제 이름이 '이재용'이어서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도 아니고…. 아마도 전 삼성 이재용의 그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겠죠? … 이 인터뷰가 나가면 삼성의 이재용도 볼까요?"
- 볼 수 있겠죠. 인터넷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삼성 이재용 씨가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사람을 잘은 모르지만 자기도 소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의 세습과 자신의 주변환경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재용 씨도 알거라고 여겨요.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죠. 그런 것들을 다 떨쳐버리고 자기 의지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삼성 3세 이재용의 너무나도 다른 출발선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68년 6월생 '이재용'은 모두 15명이다. 그 중에는 삼성 3세 6월23일생 이재용도 있고, 취재팀이 만난 6월24일생 이재용도 있다. 또한 대구에서는 6월22일생 이재용이 인쇄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재용'이다.

하지만 44억원을 가지고 3년만에 4조원의 재산을 만들 수 있는 이재용은 오직 한 명이다. 삼성의 비상장사가 언제 상장할지를 귀신같이 알아서 그 직전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이재용은 오직 한 명이다.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입으로 "주당 70만원"이라는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천원에 사들일 수 있는 이재용은 오직 한 명이다. 장외에서 주당 5만8천원에 거래되던 삼성SDS 주식을 주당 7150원에 사들일 수 있는 이재용은 오직 한 명이다. 실질적인 상속을 받고도 국세청을 꼼짝 못하게 하고 명백한 증여세 사안 앞에서도 국세청을 우물쭈물하게 만드는 이재용은 오직 한 명이다. 이것이 과연 그 사람의 능력 때문일까?

모든 사람들의 출발선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자신의 능력, 부모의 능력에 따라 출발선은 각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삼성 3세 이재용의 출발선은 다른 14명의 68년 6월생 이재용과, 다른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나이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과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민 대부분은 그 '차이'가 능력 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제는 누군가 너무나도 다른 이 출발선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슬 한 방울'이 거나하게 취기를 불러온다. 4명이서 일곱 방울을 마셨으니 마실만큼 마신 셈이다. 우리시대의 '또 다른' 이재용은 따뜻해진 얼굴로 이렇게 또 하루를 마감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마이뉴스 집중연재-윤회계사의 공개편지
<11월22일>"국세청장님, 150만명 허기 해결할 930억원을 버릴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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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마지막 편지 "더 이상 편지만 쓰지 않으렵니다"

오마이뉴스 집중연재 '이재용은 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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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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