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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이 맞이하는 이번 겨울은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특별히 올 겨울이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쳐서도 아니고, 화려한 송년회 일정이 약속돼 있지도 않다.

"'춥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마음마저 춥고... 지금까지도 애들을 따뜻하게 해주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더 아껴야 한다니...다가오는 겨울이 걱정되죠."

박은정 선생님(한국청년연합회대구본부 간사. 30)의 고민은 대구시로부터 다음해부터 '공부방'에 대한 지원비를 삭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박선생님의 근무하고 있는 '평리4동 청소년공부방'(이하 공부방)은 아이들의 쉼터로 자리를 잡은 지 이제 3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93년부터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던 공부방을 박선생님이 몸담고 있는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에서 맡아서 운영하기로 한 것이 이곳과 박선생님의 인연이 시작이 되었다.

당시 저소득층 자녀들이 공부하고 쉴 곳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평리4동 주민과 인근 지역주민과 학생들의 쉼터를 마련하는 일로 발전했다. "단순히 저소득층 애들을 위한 공부방 형태에서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죠. 함께 놀 수도 있고, 문화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죠."

이를 위해 공부방 선생님들은 학교공부를 보충해 주는 학습프로그램을 짜는 것에서부터 '놀거리'를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농구,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자원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공부방을 찾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준다.

또 주민들에 문화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매월 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해 보기도 한다. 박 선생님은 공부방 건물 안에 마련된 탁구대는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며 자랑했다.

올 여름엔 8월 12, 13일 이틀동안 공부방 학생들이 함께 청소년 캠프를 떠나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오십대를 넘나드는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이곳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는 주민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하루 평균 30여 명의 청소년과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나름대로 지역민들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공부방에 항시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말썽을 빚고 있는 대구시의 예산삭감 문제 거론은 박선생님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아이들의 고민마저 깊게 하고 있다.

재수생활이었지만 공부방이 있어 수월했다는 김영준(19) 군은 "단순히 공부만을 하기보다는 이곳에서 다양한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들과 함께 컴퓨터도 배우면서 이로움이 많았다"고 말하고 "공부방이 없어진다면 생활의 재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문화관광부와 지방자체단체는 전국 325개소에 달하는 각종 공부방에 대한 지원을 해오고 있었다. 대구 지역의 경우 연간 문화관광부 지원 730만원, 시가 지원하는 예산 730만원 등 총 1460만원이 각 지역 공부방으로 지원됐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 꼴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난 중앙부처의 감사 결과, 지역 공부방 중 일부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례가 드러나고, 또 타 지역에 비해 예산지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지원금 삭감이 결정되게 됐다.

박 선생님은 "물론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한 공부방이 있는 것도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잘 운영되고 있는 다른 공부방에 대한 지원마저 삭감하면 공부방 전체를 죽이는 꼴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요"라며 무차별한 삭감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한달 운영비 지원 40만원선. 그나마 예산이 삭감되면...

평리4동 공부방은 한해 한달 평균 122만원의 지원금을 받아왔다. 이 중 상근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선생님이 가질 수 있는 돈은 50만원선. 거기에 보조 상근으로 있는 선생님들에게 25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원하면 실제 운영비로 쓰일 수 있는 돈은 40만원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이제 지원비가 월 90만원 선으로 줄어든다면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지원금이 삭감되면)운영을 못하죠. 운영비가 월 20만원으로 뚝 떨어지게 되고 인건비를 줄인다 하더라도 활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어요. 그 동안 부족한 재정을 단체 후원금으로 충당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깐요."

현재 대구시는 줄어드는 예산지원을 각종 운영 프로그램을 공모해 지원금을 선별해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박 선생님은 이러한 관청의 노력(?)에 회의적이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곳만 살리겠다'는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러한 발상은 시의 공부방 운영에 대한 관여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게 되는 문제점도 있다.

"솔직히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은 각종 프로그램을 생산해서 공모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공부방끼리의 경쟁만을 낳게 되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 닫게 되는 공부방도 나오고. 결국 공부방을 이용하던 주민들과 아이들만이 피해를 보겠죠."

무엇보다 박선생님은 예산삭감 부분을 거론하면서도 안이하고 전시적인 행정만을 노리는 관청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혜택을 받은 것도 없어요. 공부방 컴퓨터도 구청에서 하나 주던데 사용하지도 못하는 286컴퓨터인 거 있죠... 그걸 하나 주시더군요. 솔직히 지원이니 뭐니 말은 많이 하지만 내실 있는 지원은 거의 없었던 거죠."

지금까지 공부방 사업에 대한 예산지원과 각종 지원도 민선단체장과 의회의원들 선거에 이용된 측면도 없지 않다. 박선생님이 맡기 전에 이곳 공부방도 결국 이러한 형식적인 지원으로 인한 피해로 문을 닫았다.

이제 예산지원 삭감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박선생님과 아이들은 내년 3월에나 있을 추경예산 지원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민들과 청소년들의 쉼터로 정착하고 있는 공부방에 대한 진심어린 지원과 관심이야말로 겨울을 나야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뜻 깊은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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