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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오전 11시 30분 남산 하이야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일왕의 67세 생일파티가 각국의 외교사절과 한국의 유명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파티시작 1시간 전부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성림대표, 대한항공 심이택대표의 대형 화환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 시작 30분전에 얼굴을 보인 민주당 유재건 의원은 "당 차원의 공식 참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라고 말했으며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한 미묘한 시점인데 유 의원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찬성하는가?"라고 질문을 했으나 "당에서도 소수 반대의견이 있다.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라고 말했다.

"당 공식입장은 찬성아닌가? 당 총재인 대통령이 명예위원장 아닌가? 유 의원의 입장은 기념관 건립에 찬성이지 않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짤막하게 말하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이어, 같은 당 의원 5명과 함께 참석한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기자의 질문에 일언 댓구도 없이 참석한 인사들과 악수만 주고 받고는 10여분 만에 파티장을 떠나고 말았다.

이양희 총무와 변웅전 대변인을 동행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도 참석자와 악수를 나누며 환담하다 20여분만에 자리를 떴다. 계속되는 기자의 질문에 말문을 열 것 같았던 김종필 명예총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양희 총무는 "김종필 명예총재는 자민련의 당 공식 대표로 참석했으며 한일의원연맹 회장자격으로 참석했다"라고 전했으며,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자, "기념관 건립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와의 합의 사항이다. 합의 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왕의 한국 방문을 찬성하며, 양국은 긴밀한 대화속에 건설적으로 21세기를 함께 맞이하고 답보상태인 양국관계가 한층 발전하여 아시아를 위해 함께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포참정권, 무역역조 문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필 명예총재는 지난 7월 "국제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말하여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주한 일본대사 데라다 대루스케(62)와 환하게 인사와 악수를 하고는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김점구 독도수호대 사무국장은 "양국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하다. 정치권, 예술계 인사들의 천장절 참석에 대해서 추후 논의를 거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89년 신동아 12월호에서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미화 세력에 대해 역사가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말해놓고는 이제와서 정치논리로 JP와 야합한 것은 국민과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적 합의가 없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분명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장절 기념파티는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서 끝이 났지만 참석한 정치인, 학자, 문화예술인, 언론인등의 모습은 모순되고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날 파티에는 반대시위가 있을 것을 우려한 용산경찰서가 전경 1개중대 병력을 호텔 외곽을 둘러싸 경비했고, 초청장을 받고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며 경비를 지원했다.


관련기사 - 일왕생일파티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논평

덧붙이는 글 | 천장절(天長節)하면 생각나는 것은 윤봉길 의사이다.

1932년 김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및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군 최고 사령관 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중장, 주중(駐中)일본공사 시게마쓰[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혀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오사카[大阪]로 이송,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이밖에 천장절은 우리민족 독립운동사의 주요 전환점마다 새로운 이슈를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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