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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이 더 강한가, 또는 현실을 구성하는 측면이 더 강한가 하는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와 같아서 딱 부러지게 규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특히 드라마 메시지의 경우, 사안별로 그 구체적인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전체적인 드라마에 대해 일괄적인 단정을 짓는 것이 더욱 어려울지도 모른다.
기자는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과 현실을 구성하는 측면,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가정하고, 양 측면을 모두 고찰해보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본다.
우선 한 드라마의 예를 들어, 그 양쪽 측면에 대해 들여다보기로 하자.
얼마 전 종영된 MBC 미니시리즈 <비밀>은 상류층 남자를 둘러싼 선녀와 악녀의 대결을 다룬 전형적인 트랜디 드라마다. 선녀와 악녀, 돈과 명예 사랑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권선징악적 스토리는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다룬 바 있는 진부한 주제고, 왜곡된 성 역할관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평가들의 주장이 너무나도 자명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자들은 이런 내용들이 뻔히 욕먹을 수밖에 없는 진부한 주제임을 알면서도 왜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안방극장에 승부수를 던졌을까. 여기에 연출자 김사현 PD의 대답은 단호하다. 시청자가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 방송은 제작자가 만들긴 하지만 전적으로 시청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한 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담당PD의 대답을 듣고 보면, 드라마가 현실을 구성하는 측면보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이 더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제작자들의 주장에 대한 비평가 집단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밀이 ‘시청자의 의견과 취향’을 반영해 만든 드라마라면, 그 시청자들의 의견이나 취향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나 하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한 시청자들의 취향은 그 동안의 방송매체가 신데렐라, 진실, 토마토, 이브의 모든 것 등을 통해 꾸준히 가꾸어 나간 결과라는 주장이다. 비평가들에 의하면 드라마가 현실을 구성하는 측면도 만만치 않은 듯 싶다.
제작자들과 비평가들의 논란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궁극적으로 따지면, 황금만능주의의 자본주의 현실이 여러 드라마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고, 드라마들은 그런 자본주의의 폐해를 확대 재생산하여 현실 사회에 돌려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가장 처음 원인을 제공한 황금만능주의 자본주의 현실이 매스미디어의 구성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나올 법 하지만 이젠 그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소비적인 논쟁은 가치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다.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드라마가 확대 재생산하고, 그 영향을 받은 현실 대중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현실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이 주고받기식 책임전가는 이제 둘 중에 어느 한 주체에 의해 멈추어져야 한다는 점을 두 주체가 깨달아야 한다.
현실 대중의 힘으로 그 확대 재생산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매스미디어 엘리트들에 의해 이 확대 재생산이 멈추어 질 것인가는 우리가 앞으로 목도해야할 흥미로운 주제다.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드라마의 현실 구성이 더 강한지, 아니면 드라마의 현실 반영이 더 강한지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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