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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기술 장영승(37)사장의 요즘 화두는 '정보통신과 문화의 결합'이다. 서울 종로옆 다동에 위치한 장 사장의 집무실은 여느 벤처기업 CEO 방과는 사뭇 다르다.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늑한 한옥 안방같은 느낌을 준다.
나무로 만든 바닥과 차를 마실 수 있는 나즈막한 탁자, 그리고 가지런히 펼쳐진 방석은 영락없는 시골집 어르신 네 안방을 닮았다. 탁자옆 벽면의 한시(漢詩)를 담고있는 한지는 정갈스런 액자와 잘도 어울린다.
인터넷과 문화상품을 연결하려는 그의 뉴비즈니스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인테리어다. 장 사장은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만큼이나 원칙을 중요시하는 CEO다.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된 노련한 베테랑이지만 아직도 정직함과 원칙을 잃지 않고 있다. 장 사장의 첫인상은 매우 강인한 성격에 과묵할 것 같은 느낌. 두툼한 입술과 매서우리 만치 강렬한 눈빛은 어떤 도전에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90년 설립된 나눔기술은 그룹웨어전문업체. 인터넷방송,음악,엔터테인먼트 등 문화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눔기술은 올해 매출 100억원, 내년에 코스닥등록을 준비중일 만큼 잘나가는 벤처기업이다.
◆ 치열했던 대학시절
장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2학번출신. 그의 대학시절은 이념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장 사장은 반미운동을 주도하며 80년대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있었다.
85년 5월 23일 오전. 장 사장은 전국학생총연합소속 학생들과 함께 롯데호텔 건너편의 미 문화원에 진입, 그 유명한 미 문화원농성사건을 주도했다.
'광주사태의 무력진압을 지원한 미 행정부는 공개사과할 것'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가담했던 장 사장은 그 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내던졌던 장 사장이지만 '운동권출신'이란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386세대니, 운동권출신이니 하는 말이 무슨 훈장처럼 따라 다니는 게 부담스럽니다. 고생했으니, 도와야 한다는 동정론은 너무 진부합니다. 꼬리표가 너무 오래가요. 지금하는 일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그는 미국에 가질 못한다. 아직껏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운동권출신 기업
나눔 사무실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15년전 농성을 했던 미 문화원에서 불과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직원 100여명에 매출 100억원대의 중견 유망벤처기업으로 컸지만, 10년전 창업할 때의 시련은 눈물겹다.
운동권출신이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90년 10월,그는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동료,후배 4명과 창업,성북동에 사무실을 냈다.
그들이 처음 한 일은 시스템개발 용역사업. 당시 기업전산환경은 IBM일색에서 유닉스로 교체되는 시기였다. 나눔기술은 유닉스관련 시스템개발일을 주로했다.
과동기인 박석봉(현 엠파스사장)씨 등 4명의 멤버는 유닉스기술을 갖고 있어서 시스템개발로 초창기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기술이 있다보니 먹고살 정도는 되더라구요. 매일 밤을 새면서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나게 1년간 일한 덕에 사무실을 강남 역삼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늘어난 14명의 식구 또한 운동권경력의 대학후배들이었다. 사업초기 경찰,안기부등 특수기관에서 수시로 들이 닥쳤다. 학생운동 주동자들에게 뒷돈을 되준다는 혐의로 장 사장은 시도때도 없이 불려 다녔다.
나눔은 93년 '씨앗'이란 프로그램언어를 내놓았다. 씨앗은 국내 최초로 선보인 시스템SW.한글문법에 맞게 SW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SW개발 툴이었다.
94년 내놓은 '전자문서관리시스템'은 사내 문서의 전자결재를 가능케하는 것으로,그룹웨어의 전신에 해당하는 SW. 이 때부터 나눔은 그룹웨어전문업체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문서를 선호하는 기업들의 업무스타일탓에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상에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워크플로우’를 내놓았다.
95년부터 국내 그룹웨어시장은 ‘워크플로우’와 핸디소프트의 ‘아리랑’제품간의 한판승부로 점철됐다. 당시 기업들의 전산환경은 매우 뒤쳐져 주로 은행들이 주고객이었다.
영업은 힘들었다. 하지만 충청은행이 첫 테이프를 끊자 한빛은행,통계청,농림부 등 기업,관공서에서 채택하기 시작했다. 97년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눔기술은 승승장구했다. 부산,대구 등 경북,경남지역 지자체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96년 윈도 3.1용 그룹웨어를 늦게 출시하는 바람에 시장에서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97년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트라넷제품을 내놓은 이후 국내 인트라넷 그룹웨어 시장점유율 50%로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매출도 94년 20억원에서 97년 50억원규모로 늘었다. 하지만 SI사업을 하는 대기업이 잇따라 그룹웨어시장에 진출하고, 98년 불어닥친 IMF한파로 나눔기술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대기업들이 덤핑을 시작했다. 98년 동서증권 부도로 납품한 10억원을 받지못할 때는 직원들 모두 서너달씩 월급없이 살아야 했다. 장 사장역시 6개월이상 월급을 가져가지 못했다.
1년여의 고통스런 기간은 나눔기술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쪼들린 생활 자체였다. 하지만 IMF는 전화위복이 됐다. 대기업들이 IMF이후 그룹웨어사업에서 모두 철수했기 때문.
99년은 풍성했다. 99년 매출은 무려 70억원. 그동안 70여명의 직원들 밀린 월급을 모두 줄 수있었다. 올해 또한 100억원의 매출에 순익 20%를 남길 만큼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 거칠것 없는 확장,"큰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장 사장은 요즘 주위에서 엉뚱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청바지, 티셔츠 사업에 나섰기 때문이다.“모두들 황당해 합니다. 하지만 돈을 벌고있으니 끄덕끄덕하지요”
나눔기술조직은 매우 독특하다. 사업부는 크게 'e워크'와 'e컬처'두 파트. e워크는 기존 그룹웨어, 솔루션 중심의 사업부고, e컬처는 문화사업쪽이다.
벤처기업의 문화사업? 장 사장은 지난해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370여억원규모의 자금으로 ‘정보통신과 문화의 결합’을 실현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e문화사업의 시작이다.
"저는 정말 큰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룹웨어 시장은 매우 성숙해 있죠. 나눔의 기술과 문화를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창출됩니다."
그의 ‘IT기술과 문화’의 결합론은 99년부터 엄청난 사업확장으로 이어진다. 99년 10월 문을 연 인터넷음악방송 '렛츠뮤직'사업이 첫 작품. 국내 처음으로 MP3 유료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법복제, 음원문제에 부딪히면서 장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음반제작자협회 등 음원을 소유한 단체들과 협의를 하다, 아예 도레미미디어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졸지에 레코사회사 대주주가 된 것. “제가 레코드사업을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향후 인터넷사업은 컨텐츠로 승부가 납니다.그 중 돈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이고 특히 음악이 유망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MP3 파일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트에 대해 강한 톤으로 비판한다. "인터넷 정보공유는 저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돈들여 음악을 제작한 제작자입장에서는 '공짜복사'는 가슴 찢어지는 일이죠. 공짜복사는 결국 음악컨텐츠 발전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는 최근 사업적인 외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시너지효과를 노린 확장입니다.시간이 걸리지만 해야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컨텐츠는 앞으로 상당한 가치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메이저닷컴이란 문화상품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칼슘디자인의 대주주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관련 브랜드 및 디자인광고회사와 같이 일을 하다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패션 B2B사업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서 아예 칼슘디자인를 설립,투자했다.
패션사업은 현재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이메이저닷컴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고,옷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형태다. 칼슘디자인을 통해 독자적인 브랜드로 판매하는 옷들은 ‘끼리끼리’문화를 겨냥한 다품종소량생산의 개념. 독특한 디자인 일색이다.
’왁스’란 브랜드의 청바지는 주머니가 겉에 달린 것부터 바지끝 모양새가 웨이브로 처리된 것 등 별난 제품만 모아놓은 것같다. 왁스청바지는 12만원가량하는 닉스청바지보다도 비싼 16만~18만원선. 유명 브랜드보다도 엄청나게 비싸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요즘 젊은이들은 남이 안입는, 나만의 디자인을 매우 선호합니다. 1000벌 정도만 생산해 판매하죠.”
그는 이런 류의 온,오프라인이 합쳐지는 개념의 사업은 대기업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고 장담한다. “유통만 해서는 메리트가 없죠.온라인유통도 마찬가지죠. 저희들은 직접 디자인하고,직접 생산합니다”강남 도산공원옆 청담동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
청바지,티셔츠는 물론,다이어리와 각종 소품들을 판매한다. 소매는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오프라인매장을 통해서는 도매와 프랜차이즈형태의 판매에 주력할 계획이다. 가정용품,조명,문구 등으로 다양화시킬 생각이다.
그는 온라인 쇼핑몰,전자상거래,인터넷 컨텐츠의 경우 수익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 수많은 쇼핑몰중에 돈버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오프라인과 연계,창의력있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만이 인터넷사업의 수익모델을 만드는 해결책입니다."
◆ 넘치는 장영승의 꿈
장 사장은 내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99년과 올해 벌여놓은 사업들이 내년에 성과가 나오기 때문. 가닥이 잡히면 문화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생각이다.
“문화사업에는 크로스오버되는 장르를 모두 다 넣을 생각입니다. 인터넷과 청바지가 만나듯,음악과 게임,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장르를 접목시키는 게 내년도 목표입니다.”
게임은 이미 개발하고 있고,애니메이션 사업도 준비중이다. 그는 회원만 남아있는 인터넷사업의 부실한 수익모델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최근에 일본사람이 사이트를 보고, 방문해 4000만원어치의 옷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디자인이 독특해 팔릴 것같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문화상품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무엇보다 인터넷인프라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그 한 축이 인터넷이 될 것입니다.이를 통한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결합은 2000년대 최대 화두가 될 것입니다”.
◆ 장영승의 제언
장 사장은 요즘 외부활동을 시작했다. 근 1년간 두문불출했지만 요즘 워낙 벤처경기가 좋지않아 동료 벤처기업인들을 자주 만난다. “벤처산업 침체는 2년전 너무 들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에 대한 확신을 잃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여전히 인터넷은 대세죠.”
그는 테헤란로의 경우 벤처기업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벤처는 돈없이 시작하는 곳입니다. 벤처가 어떻게 평당 300만원, 400만원하는 사무실에서 일할 수있습니까?”
99년 11월 역삼동에서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를 온 것도 턱없이 비싼 사무실임대료때문이었다. “인터넷산업은 스스로 들떠있다 지금 너무 주저앉은 꼴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여전히 기업경제의 중심이며,개개인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입니다.”
지금 아무리 인터넷과 벤처기업에 대한 회의론이 기세등등해도 벤처는 우리나라 경제회생의 핵심수단임을 누차 강조한다. 장 사장은 벤처기업 또한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운동권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누구보다도 도덕적으로 압력을 받고있다고 웃어 보인다.
“저희 멤버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훈련된 친구들이 많아서인 지,도적적으로 잘 무장된 편입니다. 회사 경영은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그 것이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첩경입니다.”
국내 벤처역사를 이끌어온 장영승. 벤처를 창업한 지 10년가까이 됐지만 그는 지금도 인터넷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찾아가며 기나긴 모험을 하고있는 진정한 벤처기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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