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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나타난 뱀신앙
조선시대 제주에 머물렀던 유학자들과 일제시대 일본학자들에게서도 제주 뱀신앙은 많은 연구대상으로 남아있었다.
충암 김정은 제주풍토록(1521년)을 통해 "이곳 풍속은 뱀을 두려워하여 신이라 받들며 주문을 외워 술을 뿌리며 감히 뱀을 죽이지 않고 사람이 병들면 귀신이 노한다고 약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유학자로서 도민의 무속신앙을 사신신앙으로 싸잡아 보려했고 그런 신앙을 미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짙었던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차귀(遮歸) 사신당을 언급하는데 '귀돋은 회색뱀을 서귀신이라 하여 죽이지 않으며 호종단 설화의 차귀지명이 사귀(蛇鬼)를 잘못 적은 것'이라 씌여있다.
그러나 차귀당이 사신을 섬긴 것은 사실이지만 차귀지명은 원래 '자구내'라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해 '차귀'라 불리는 게 맞다.
김상헌의 남사록에는 충암 등의 기록에 덧붙여 "제주는 뱀을 몹시 숭상한다고 했는데, 사실 내가 보아도 그러하다"면서 또 제주에 남무(男巫)가 많은 것은 신라화랑의 유풍이 남아있어서 그렇다고 부기되어 있다.
이건의 제주풍토기에도 뱀신앙과 칠성에 걸린 병을 설명하며 제주민이 뱀에 대한 앙화(殃禍)를 피하기위해 칠성제나 칠성새남굿을 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외 이원진의 '탐라지'나 제주의 당오백절오백을 없앴던 이형상 목사의 '남환박물'에는 뱀신앙이 혹세무민의 미신이라고 표현됐다.
秋葉이나 鳥越 등 일본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제주 사신신앙이 나주 금성산신인 뱀신을 모시는 미신이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제주 여드렛당 신앙은 조선 중기 천미포 왜침(1552년)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사신신앙은 왜군의 침탈로 황폐해진 삶을 극복하기 위해 굿을 하고 또 그들에 의해 겁탈당하고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죽어가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신앙원리에 따라 이어져온 공동체 신앙인 것이다.
현용준(제주대 국어교육) 교수는 제주 무속사회에서 뱀신에 대한 숭배를 "혐오하면서도 제사지내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가 닥칠 것이니 모셔달라는 격"이라고 표현한다.
또 "사신은 딸에서 딸로 여성혈연을 따라 쫓아온다 하여 그 신을 신앙하는 집안의 처녀와 혼인을 꺼려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면서 이 씨족적 혈연관계를 맺는 사신신앙은 토테미즘이라 말할 만하다고 했다.
민속학자인 진성기씨는 "아시아에서 인도의 코브라 신앙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처럼 뱀 자체를 인격을 가진 신앙대상화하여 민간신앙의 체계를 갖춘 지방은 그 예를 찾기 힘들다"고 피력했다.
다른 지방의 뱀신앙
여기서 잠깐 타지역에도 뱀 신앙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른 곳에는 '집 지키는 뱀'이라는 '업'에 대한 잔영이 곡(穀)류를 신체로 단지에 담겨져 집안이나 뒤꼍에 모신다고 전해진다.
전라남도 신안군 삽화에 보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큰 구렁이가 집 뒤꼍에 살았는데 할머니 눈에만 보이고 1년에 한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날 할머니의 꿈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구렁이에게 왕제산으로 가자며 데리고 가 꿈을 깬 할머니가 나가보니 뇌성벽력을 동반한 비속에 구렁이가 왕제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구렁이가 나간 뒤로 집에 항상 곡식이 안되고 집안에 좋은 일이 없었다. 그 구렁이 구멍이 지금도 있다"고 한다.
그밖에 전남 승주군, 전북 진안군, 경남 양양군, 대구시, 강원도 영월군 등 전승신화도 비슷하다. '업'은 재물과 복을 관장하는 업위신, 사창신(司倉神)인 뱀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뱀이 집에서 발견되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팥이나 쌀을 담은 옹기나 짚으로 엮어 모시기도 하는데 사신에 대한 특별한 의례를 지낸다기보다는 고사를 지낼 때 제물을 바쳐 모신다.
'업' 외에 '터줏가리', '조상단지'같은 형태로도 모셔지는 사신신앙은 제주도의 뱀 신앙이 고대로 올라가면 제주만의 특수신앙이 아니라 타지역에서는 민간신앙으로 전승되다 거의 사라진데 비해 제주도에서는 '관'의 신앙에까지 널리 전승되어 그 분화된 기능이 현재까지 민간생활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신신앙은 고대에서 현재까지 제주와 맥을 함께해온 제주도의 문화를 특징지어 주는 신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문화로서의 사신(蛇神)신앙
지금까지 칠성사신과 토산리 여드렛당을 비롯 사신당, 신화, 의례, 문헌상의 기록, 타지방의 뱀신앙 형태 등을 살펴보았다. 제주도의 사신신앙이 맹목적으로 혐오의 대상이나 공포의 대상이라 할 만한 근거는 없다. 사신신앙을 믿는 입장에서 보면 잘 모시고 선행을 하는데 해꼬지를 할 리는 없는 것이다.
문무병 전통문화연구소 소장은 "사신신앙이 외경의 대상이 되고 결혼을 꺼릴 만큼 결혼풍습이나 통홍권에 영향을 주는 것은 토산당의 사신이 순결과 정조의 신, 미의 신이면서 신앙이 약화되었을 때 당신(堂神)의 보복으로 병을 얻어 신의 재앙을 받는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제주도 당신앙은 재앙신적 성격을 지니면서 치병신(治病神)이다. 굿을 통해 환자의 몸 속에 맺혀 있는 한의 응어리인 방울을 풀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드렛당으로 대표되는 사신신앙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병을 다스리는 무속으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제주도 사람들도 토산 여드렛당신이 딸에게 유전하여 기피해야할 신이고 여자라 일반이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여드렛당만 특히 두드러지게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성읍리 관청할망당신처럼 사신이라는 관념이 없어지고 마을을 수호하는 칠성신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모계 혹은 부계로 계승되는 사신신앙이 도내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단지 여드렛당의 경우 재앙신적 성격을 특히 강조해 신앙을 키운 데 따른 것이다.
90년대 중반 사신신앙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보듯 뱀을 모신다는 마을의 여자와 혼인을 꺼려하고(75%) 그들에게 방을 빌려주는걸 기피하는(73.4%) 등 혐오적 의식이 제주에 많이 배어있다.
전도적으로 뱀신앙이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선입견은 남아 있다. 토테미즘적 신앙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배척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과거 이형상 목사가 미신이라하여 당오백절오백을 불태워버리거나 기독교·천주교 등 외래종교 개종, 교육·홍보를 통해 뱀신앙에 대한 맹신적 태도에서 막무가내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쉽게 본다면 뱀신앙을 미신이라고 보는 측면에서도 자신의 띠를 말하고 처녀자리, 황소자리 등 별자리를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신적 요소는 함께하고 있다. 뱀신앙도 당시 조상들에게는 단순한 미신적 요소를 떠나 생산양식, 삶의 모습에 진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1년은 뱀띠해이다. 신화에 뱀은 불사(不死)와 영생의 존재이면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지금처럼 답답하게 저물어가는 한해를 보며 내년 신사년에는 우리나라와 제주도에 더할나위 없는 풍요가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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