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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
연극에 둔감한 나로선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10년 전인 1990년 12월부터 98년 11월까지 2300여 회나 무대를 올랐던 이 여인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김지숙.
로젤이란 이름으로 9년간 80만명의 관객들 앞에 섰던 한 연극배우. 그 역시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적어도 지난해 11월 말, 잡지에 원고 청탁을 하기 전까지는.

여고강당에서 흘릴 뻔한 눈물
"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 하나 이루기가 이다지도 힘이 든단 말인가? 정말? 정말로…."

지난 해 12월 14일. 그날에서야 김지숙이란 한 영혼과 가부장의 힘에 갇힌 모든 여성의 영혼인 로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첫 만남의 느낌은 예감처럼 좋았다.

1천여 명의 여고생들이 들어선 숭의여고 강당, 뒤쪽에 앉은 나는 누구보다도 연극에 몰입돼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던 꿈이 아버지로 인해 좌절된 후, 로젤의 삶은 '착하고 자상한' 남성들에 의해 짓밟혀진다.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몸까지 팔던 로젤은 그 남자에게마저 버림받으며, 온갖 수난을 당하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짓밟아온 그 남성들은 결국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무대 위에서 절규하는 로젤, 아니 흐느끼는 김지숙은 곧장 내 맘속에 긴 감성의 바늘을 꽂았다.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러다 눈물 흘리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무렵, 연극은 끝났고 다행히 눈물은 눈가에서만 맴돌았고 볼에는 그 어설픈 자국을 내지 않았다.

하긴 지난해 가졌던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기금마련 공연이 열렸던 동작구민회관에서도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았단다. 객석에서 흐느낌들이 들렸다니. 어디 그뿐이었을까. 오늘 저녁도 그랬다. 연극 중간, 학교선생님과 학생이 나와 춤을 출 때 넓은 강당 안에 가득 웃음을 채우던 여고생들이, 마지막 대목에서는 흐느끼고 있었다. 아직 사회에 발을 딛지도 않은 이 어린 소녀들의 마음까지 묵직하게 채워 버린 그, 김지숙.

그의 연기가 돋보였던 점은 관객을 관객으로 두지 않는다는 거였다. 올 초 학교 문제를 다룬 연극을 취재간 적이 있었다. 관객은 중학생들.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서슴없이 장난 말을 내뱉어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러나 로젤은 관객들을 끌고 나갔다.

'기집애'라는 표현을 적절히 써 가면서 웃음바다로 만들던 그. 음악을 듣기 위해 동전을 달라고 했을 때, 2∼3분 동안 손을 벌린 채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결국 어느 학생이 동전을 손에 올려주자 연극은 지속되었는데… 그때부터 5분은 다른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숭의여고판 연극이었다. 학교 선생님과 학생이 차례로 나와 춤을 추는.

"현장성이 중요하니까 상황에 따라 연기는 달라지죠. 그럴 때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들이 따로가 아닌 친구처럼 하나로 느껴져요"

그랬다. 모노드라마인 극중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다름아닌 관객이었다. 그러니 관객이 그의 말 상대인 배우이면서 또한 그의 연기를 지켜보는 관객이기도 한 것이다.

마라토너와 연극 배우

우연과 필연이란 말이 가진 가벼움과 무거움의 중간에서 조금 자유롭고 싶다면 인연이란 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1월 말. 원고청탁을 하려 필자를 찾아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우연히 연극계를 들어갔고 그곳에서 김지숙씨 사이트를 보았다. 한 10여분 김지숙이란 이가 누군가 싶어 약력이며 프로필, 수상내역 등을 둘러보았다.

1984. 연극백상대상 신인상 / 1984. 영화대종상 신인연기상 / 1986. 관객이 뽑은 최고의 연극배우상(스테이지뉴스) / 1987. 관객이 뽑은 최고의 연극배우상(관객투표) / 1992. ITI(국제극예술협회) 영화연극상 …

대략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잡지팀 기자들에게 물었다.
"김지숙이라는 연극배우 알아요?"
"그럼요 '아가씨와 건달들' 했잖아요."

다들 안다고 한다. 나만 몰랐나 보다. 김지숙씨에게 청탁하기로 하고 다시 홈페이지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연극공연 일정을 훑어보는 순간, 불안감이 일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순회 공연이 하루 이틀에 한 번 꼴로 잡혀 있었다. 원고 쓸 시간이 있을까. 걱정 반 근심 반, 그러니 순전히 불안함으로 서핑을 하고 있다가 연락처를 찾았다. 그와 비슷한 시간에 게시판에 올라온 한 편을 글을 보았다.

1968년 제 19회 멕시코 올림픽에 참가한 탄자니아의 어느 마라톤 선수의 이야기였다. 마라토너 아쿠아가이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넘어지고 말았는데,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달려 골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뼈대만 보자면 진부한데, 김지숙씨가 써 놓은 글은 맛갈스러웠다. 마치 그곳 현장에 있던 것처럼 당시 상황 묘사가 뛰어났다. 그리고 그 마라토너로부터 얻은 교훈을 짧게 마무리해 두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렵고 힘들고 장애에 부딪히고 방황할 때마다 그 마라토너는 내게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인생에 있어 일찌감치 지표를 찾아준 사람이며,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실천방법을 아름다운 미소로써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김지숙씨가 대표로 있는 극단 '전설'의 담당 팀장에서 전화를 걸어 청탁 사연을 얘기하고 김지숙씨에게는 따로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김지숙씨와 통화 할 수 있었고…. 11월 31일 전날 공연이 있었는데 원고가 이메일로 들어왔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좀더 내용을 첨가하고 주제를 명확하게 정리했다.

윤금이를 위한 몸짓

김지숙씨 홈페이지에서 적힌 그의 활동사항을 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1992년 윤금이 공대위 자문위원. 공대위 모금 공연.'
'윤금이'라는 이름 석자 덕분에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눈에 오래 남았을 법한 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 참여연대 기금 모금 공연, 환경운동연합 명예회원, 천주교 성폭력 상담소 설립멤버 등의 활동은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자문의원이니 명예회원은 대개 이름만 걸어놓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92년 당시 주한미군에 의해 살해된 윤금이 사건에 '인기관리' 차원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무척 '무모한 투자'인 셈이다. 그래서 그가 단지 인기만은 아닌 나름의 '생각'있는 활동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이력이 낯선 한 연극배우인 김지숙을 다시 보게 됐다. 알고 보니 그 예상은 그리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로젤 역시 성폭력상담소, 윤금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과 기금마련, 순천시립극단 기금마련 공연, 청주 여자교도소 및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공연에도 꾸준히 올려졌다. 그래서 로젤 같은 어려운 이웃들이 늘 로젤 옆에 있었다. 로젤은 또 다른 로젤을 위해 그렇게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또 한편의 글이 그런 삶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어제 많이 생각했어요. 오늘 하루 독감과 씨름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열린 의사회 무료진료 봉사활동에 갈 것인가. 독감에 걸린 상태로 남을 도와주러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어찌 보면 정신력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열치열!!! 택했어요. 봉사활동을 가기로. (중략)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픈 분들 증세를 물어서 각 과로 배정하고 기다리는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일인데… (중략) 치료도 중요하지만 외부 사람들과 대화하시는 것을 참 좋아 하시더라구."

이런 그이의 성격 탓일까. 그에겐 잘 나가는 연극배우에게는 왠지 어색할 것 같은 감사패가 여러 개 있다.

1992. 2. 성폭력상담소 감사패(성폭력예방기금마련 공연) / 1993. 주한미군범죄근절을위한운동본부 감사패 / 1994. 4. 명동성당 성우회 감사패('생명의 터' 이전기금마련 공연) / 1996. 12. 참여연대 감사패(기금마련 공연) / 1999. 6. 원진녹색병원 감사패(산재직업병 노동자를 위한 공연) / 1999. 11. 청주여자교도소 감사패(재소자 위문공연)

"아직도 로젤같은 인생은 많죠."
'밀리오레 디자인 벨리'

남산 자락에 몸을 기댄 숭의여고 강당을 나선 순간 눈에 처음 들어오는 문구였다. 명동 밀리오레 건물에 붙은 네온사인. 문득 로젤이 너무 멀리 있다고 느껴졌다. 불과 30여분 전까지도 눈물을 글썽이던 것도 역시 연극이었나? 짧게 아주 짧게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현안이 되는 주제의 종류를 나열하자면 그리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어떻게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알릴 것인가. 작가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도 말하고 싶었던 그 가부장성, 그 가부장성이 한 남성의 의식을 혼돈(?)시켰다면,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로젤의 소박한 꿈을 좌절시킨 그 거대한 힘인 가부장성은 한 여인의 삶을 극심한 좌절과 파괴로 몰아넣어 버렸다. 결국 어떤 작품이든 말하고 싶은 그 가부장성의 본질은 같은 것일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를 정리하는 스텝들 옆에 서서 김지숙씨를 기다렸다. 원고가 실린 잡지를 든 채로.

잠깐 한 방송사와 짧은 인터뷰가 있었다. 서너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언론에서도 이미 나왔던 말들이다.

"연극계에 관객이 없다고 하는데 불만한 터뜨릴 순 없잖아요. 연극의 주요 관객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인데 예비 관객들에게 연극의 진면목을 보여 주자는 것이죠. 모든 예술의 모체인 연극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문화가 발전할 수 없죠.."

연극인으로서 갖는 사명감에 이어지는 얘기는 로젤을 장기 공연하는 이유다.

"아직도 로젤같은 삶이 많이 있죠. 로젤을 보며 남학생들은 덜 폭력적인 성인이 되고, 여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인사를 하고 잡지를 전달했다. 급작스럽게 청탁을 한 점도 죄송하다고 밝히고. 잠시 후 그는 그이 팬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서 있는 무대 앞쪽으로 가, 무대에 걸터앉아 그들과 얘기를 나눴다. 학교 연극을 발전시켜 10년쯤 뒤에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연극축제를 만든다는 게 꿈은 그렇게도 꾸고 있는 듯 했다.

"여자가 잘돼야 나라가 잘 된데요. 사람 사랑은 나라 사랑이에요.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김지숙 언니와 로젤을 잊지 마세요"

연극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외치던 그의 말이다.
오랜만의 내 외출은 좋은 한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 채 끝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일종의 취재일기 같은 글입니다. 혹시 저처럼 연극인에 대해 문외한인 분은 잠시 김지숙이란 분에 대해 알고 사시라고 글 올립니다. (사진은 김지숙님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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