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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모든 전쟁에서 사용된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희생자보다 더 많은 이라크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후세인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 때문이다.
이러한 명분은 후세인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무기 개발과 이웃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후세인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사흘 후면 '걸프전 영웅'으로 칭송 받아온 콜린 파월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넘겨줄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작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0주년을 맞아 "경제제재가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다"며, 경제제재 해제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녀는 "후세인은 여전히 군사력 증강에 혈안이 되어 있고,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 여론을 얻기 위해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을 이용하면서 유엔에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후세인은 핵무기, 생화학무기, 탄도 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계속 시도하고 있을까? 후세인의 '속마음'은 그 자신밖에 알 길이 없는 만큼 현재로서는 이라크의 무기 개발을 감시해 온 유엔 사찰단의 현지 조사 결과를 가장 신뢰할 수밖에 없다.
또한 후세인이 '아라비안 램프'를 갖고 있지 않는 바에야, 이라크의 객관적인 능력이나 환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무기 개발 능력을 평가할 도리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스코트 리터 전 유엔 특별 무기 사찰단의 수석 감사관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는 "적어도 양의 관점에서는 이라크는 사실상 무장해제 됐다. 이라크는 오늘날 어떠한 대량살상무기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후세인이 이러한 무기를 개발할 의사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들 무기를 개발, 배치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독립적인 전문가들과 현지 사찰단의 결론이다.
미국이 지목한 이른바 '깡패국가들'(rogue states)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을 평가한 1999년 CIA 보고서에서도 이라크는 북한이나 이란보다도 무기 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구나 이 보고서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구축을 비롯한 군비증강을 합리화하기 위해 반미 성향의 국가들의 무기 개발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미국 내에서도 비판받은 바 있다.
미국의 이라크 무기 생산 지원 : '원죄는 미국에게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라크의 무기 개발 및 보유 능력은 사실상 미국의 후원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이라크 편을 들고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기술을 이라크에 제공해 왔다. 걸프전을 감행한 조지 부시 역시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이 살상 무기 및 민군 겸용 기술을 이라크에 판매하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1992년 미 하원 금융위원회 소속 헨리 곤잘레스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무기 생산을 하고 있다는 광범위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이라크 공장들에 미국 및 외국 기업의 기술 이전을 허가해 왔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후세인의 악마화'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것이 1988년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기 역시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생산된 것이다. 또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하루 전에 부시 대통령이 중요한 무기 생산 정보의 이라크 수출을 승인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이중성은 최근 경찰들의 야만적인 진압과 재판을 거치지 않고 처형을 남발함으로써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아이티 정권에 최루탄과 소구경 탄환의 수출을 허가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범죄자보다 못한 이라크의 법적 권리
| ▲1999년 1월 25일 미국의 폭격으로 처참히 숨진 6살난 이라크 어린이. ⓒ voices in the wilderness | 경제제재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의식한 탓인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제재위원회는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Oil for Food program)'을 이라크 정부에 제안하여 석유 수출 수입금으로 이라크 국민들을 구제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 및 걸프전 배상 비용으로 충당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전쟁 배상금으로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총수입의 약 3분의 1일 지불해 왔다. 2000년 한해 쿠웨이트의 정유회사들에게 지불한 배상금은 지난 5년동안 1천 7백만 이라크 국민들의 구제에 들어간 비용보다 2배가 많은 159억달러에 달한다.
전쟁 배상금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그 절차 역시 '초법적인' 내용이 수두룩하다. 이라크는 매년 5천만달러를 유엔배상위원회(UNCC)에 지불해야 하는데, 이 비용은 유엔 전문가들의 여행비, 숙박비, 조사비, 소송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범죄자조차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주어지고 조사 및 재판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이라크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법적 절차에서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부국이었던 이라크를 단숨에 알거지로 전락시킨 경제제재는 엉뚱하게도 후세인 정권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후세인은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부당한 처사를 강조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극대화'함으로써 국민적인 단결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유엔의 경제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 정부는 후세인의 악마성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경제제재의 정당성을 유포하고 있다. 이러한 양진영의 정치적 선전의 아래에서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 역시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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