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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예뻐지는 오삼숙(원미경분)을 보면서, 아울러 갈수록 더 조야해지는 장진구(강석우분)를 보면서 이 땅의 아줌마들은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이 땅에서 이혼 한번 하기가 그렇게 힘들고, 또 이혼하고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녹하지 않음에 울화를 삭이며 참고 사는 아줌마들로서는 오삼숙의 해방이 내 일처럼 기쁜 것이다(혹시 당신은 아는가, 한 설문조사에서 경제력만 뒷받침되면 이혼하고 싶다는 아줌마들이 무려 85%인가 되었다는 것을).

그런 열화와도 같은 성원에 드라마 <아줌마>는 떴다. 몇 년 전의 <애인>처럼 열 아가씨 부럽지 않은 모습으로 뜬 게 아니라, 오리지널 '아줌마' 모습 그대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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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아줌마>

그런데 우습게도 아저씨 '장진구'가 더 대접을 받는다. 일간지고, 주간지고, 방송이고, 인터뷰를 하려면 주인공 아줌마 '오삼숙'을 인터뷰해야지, 왜 장진구를 인터뷰하는가.

'어쩜 그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하느냐?' '실지 자신(강석우분)의 모습은?' '아줌마를 연기하면서 느끼는 아줌마에 대한 소감은?' '스스로는 장진구를 어떻게 생각하나?' 등등 드라마 <아줌마>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질문으로 매체들은 장진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다.

정말이지 사소한 일 같지만, 이것이 바로 아줌마들을 무시하고 뭐를 해도 남자가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물어 볼 것이 있으면 오삼숙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왜 장진구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는가? 어디 연기 잘하는 사람이 장진구역 하나뿐인가. 거기 나오는 사람들 다 제 역할을 똑 부러지게 하고 있다(장진구역을 맡은 강석우 씨의 인터뷰를 여러 번 보면서 일상에 뿌리 박힌 가부장적 권위를 다시 한번 느꼈다).

암튼, 나는 아줌마이면서도 처음에는 <아줌마>라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녀처럼 부림을 받고도 순박하기만 한 그녀를 보자니 울화가 치밀어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호주제' 가 어떻고 하는 말이 오삼숙의 입에서 나왔을 때, '옳거니!' 이 드라마는 대충 끝나고 마는 드라마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 기대에 벗어나지 않게 오삼숙은 잘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아줌마들의 기대(?)가 실려 있기에 오삼숙은 끝까지 그 기대를 저버리진 않으리라.

그러나 이 통쾌함도 잠시, 아무리 장진구를 두들겨 패고 오삼숙이 일취월장해도 언젠가 드라마는 끝나기 마련이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은 고스란히 남는다, 참혹하게...


현실 속 <아줌마>

현실의 아줌마들은 어떤가? 현실의 아줌마들은 변함이 없다. '옆의 옆에' 채널 <좋은 걸 어떡해>의 박수경(정선경분)이 전국의 어르신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왜 TV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실재하는 듯이 그려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가).

멀리도 가지 말고 가까이에서 한번 보자. 다음에 열거하고자 하는 두 예는 심각한 수준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아줌마 본인에겐 대단히 심각하지만, 그리고 모든 아줌마들은 백 번 공감하지만, 그 외 사람들은 거의 모르거나, 아니면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상들이다.

내 고교동창 'ㄷ'. 그녀는 딸 넷에 아들 하나인 5대독자 집에 시집을 가서 다행히(?)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래서 그녀는 주말마다 손주를 보여주러 시댁엘 가야 하고, 일년에 아홉 번 있는 제사 혹은 차례상을 봐야 한다. 그리고 시부모님께 작게는 일 년에 두어 번 1박 2일로 호텔을 잡아서 온천 구경, 바다 구경 혹은, 산 구경을 시켜드린다.

또, 크게는 일 년에 두 번(추석 명절 전과 설 명절 전) 삼사일 여정으로 시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한다. 한 번은 국내로, 한 번은 해외로. 젖먹이 어린 것을 데리고 3박4일 밖으로 나가 돌아다닐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시부모님 모시고(멀미는 나지 않으세요? 식사 좀 더하세요. 물 드릴까요? 좀 쉬었다 갈까요. 아버님 허리 아프시죠? 어머님은 어디 아픈데 없으세요? 그러면 안녕히 주무세요). 그 여행에서 그녀는 시부모님 시중 드는 것 외에는 달리 존재의의가 없다.

3박4일 여행으로만 명절이 끝나면 그런 대로 참을만 하다. 하지만 게다가 여행에서 돌아온 피곤한 몸으로 나물 일곱 가지를 데치고, 무치고, 생선에, 고기에, 밥, 국, 전...으로 젯상 차릴 것을 상상해 보라. 남자들은 명절 한 이틀 일하는 것 가지고 뭐 그러느냐 할 것이다.

육체적 피로는 대충 한 이틀 지나면 풀린다. 그러나 정신적 피로는, '지긋지긋'한 기분은 가슴에 '울화'로 남는다. 그런 울화를 삭이는 것도 모르고 주변사람들은, '아이고 이 집에는 며느리가 잘 들어와서 철마다 호강하네' 칭찬이 자자하다.

그리고 치과의사 'o' 씨. 그녀의 남편은 모 대학 교수이고, 딸 둘은 전교 1,2등을 다투며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돈 잘 버는 치과의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 멋있겠다, 애들 공부 잘하겠다, 한 재산 있겠다, 세상의 복은 온통 다 가지셨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 끝에, 내 부러움을 일축하는 그녀의 쓸쓸한 말 한마디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이래 뵈도 아들 낳으려고 세 번이나 유산했다. 시동생들 줄줄이 아들이 있지만, 남편은 자신이 그래도 장손이기 때문에 꼭 아들이 있어야 된다나. 그런 일이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상대방이 막무가내면 불가항력이야, 어쩔 수가 없어."

아들, 아들하며 멀쩡한 뱃속의 아이 지우는 일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혹은 힘 없는 여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았다.
'나, 살기는 사는데 솔직히 살맛 안 난다. 몇 번의 유산을 거친 후 밥을 맛으로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들 낳기 위해 성감별해서 여아, 하나 둘 유산시키는 일 주변에 흔한 일이다.

위의 두 경우 당사자들로서는 무척 힘든 일이지만, 이혼의 문턱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본인은 대단히 힘들지만) 그런 일로는 이혼하지 않는다.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구구하고 절절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세상에는 잘먹고 잘사는 여자도 많고, 남자 찜쪄 먹는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여자는 그런 남자들에 비하면 소수일 뿐이다. 다수의 많은 여자들이 시댁으로부터 고통받고 남편에게 얼마간은 무시당하며 기죽어 산다. '예예' 존대를 하면서. 똑같이 '예'를 하든가 똑같이 말을 놓든가 해야지. 지는 '응'하는데 나는 '예'하는 것은 어른들 보기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내 보기에는, 불평등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요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오삼숙 세대는 대부분 그러하다.)


나도 아줌마, 그러나...

'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책제목이 있듯이 정말이지 여자가 변해야 하고 아줌마는 특히 더 변해야 한다. 그 동안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살았다면, 아무도 그 권리를 대신 찾아줄 수 없다. 스스로 조금씩 찾아나가는 수밖에...

아줌마들이 스트레스를 깔깔거리며 수다로 풀거나, 광고가 대부분인 무슨무슨 여성지의 연예가를 산책할 때, 남자들은 기사가 전부인 시사 월간, 주간지 읽으며 세상을 바라본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향상 발전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업신여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문도 읽고, 책도 보고, 무슨무슨 강좌도 다녀보고, 혹은, 자원봉사도 하고 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자신의 현실도 바로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길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욕구에 만족하면 상대방(남편이나 자식 혹은 시부모)에겐 너그러워지지 않을래야 너그러워지지 않을 수 없고, 섭섭한 일도 줄어든다. 그리고 상대방이 턱없이 나를 침해하고자 할 때 분연(?)히 일어설 수가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가족을 돌보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질 않는가. 남자고, 여자고, 젊은이고, 늙은이고 인생은 매 순간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남 생각할 처지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자. 그리고 나서 여력이 있으면 주변도 돌아보면 어떨까?

이렇게 아줌마들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국가적 도움이 '절실(?)'하다. 국가는 더 이상 노인복지를 '효도'란 이름으로 며느리들에게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후가 확실히 보장이 된다면, 어른들도 더 이상 자식과의 연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노인복지만 제대로 해줘도 아줌마들의 울화는 반으로 줄 것이다.

그리고 명절마다 일렬종대로 남편쪽 집으로 달려가는 것 자제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해마다 수십만 여아들이 세상구경도 못하고 쇠갈쿠리에 부서지는 일은 지속될 것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조상님께 제사 지낸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죽고 나면 제사 같은 것 지내지 말라"고...

인심 쓰시는(?) 김에 조금 더 쓰셔서 당신 먼저 그것을 실천해 주고 가면 안 되실려나. 내 대에서 끝내지 않으면 자식 대에서도 끝나지 않는다(중국은 문화 대혁명 이후 제사와 차례가 완전히 없어졌다. 며느리도 시아버지에게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악수를 한다. 요리는 물론 남자들이 도맡아 한다고 한다). 끝내는 일이 무엄하면 적어도 공평하게는 하자. 설은 시가에서 추석은 친가에서. 음식은 간단하게.

맨입으로 조상님 숭배하면 안되는 것일까? 따끈한 차 한잔 술 한 모금으로, 한 자루의 촛불로 조상님을 추모하면 안되는 것일까? 상다리가 휘어지는 차례상이 있는 한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해방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아아, 공자님은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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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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