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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왕’ 궁예! 요즘 그의 카리스마에 빠져든 사람들이 많다. 나의 아버지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를 볼 때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호탕한 웃음에 매료당하곤 한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다. KBS 연기대상을 궁예역을 맡은 김영철 씨가 거머쥐는가 하면 궁예가 차던 ‘검은 안대’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리고 항간에는 미륵관심법이라는 독심술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궁예와 김대중의 공통점
그렇다고 궁예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요즘 ‘황금 안대’로 변신한 궁예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팔자가 조금 폈다고 거들먹거리냐”는 식으로 매몰차게 쏘아대곤 한다.
더구나 최근 <안티 김대중 사이트>에서 ‘궁예와 김대중의 20가지 공통점’을 지적하면서 궁예를 정부비판의 촉진제로 이용하고 있어서 눈길을 더하고 있다. 주로 비꼼의 모양새는 ‘늘 거짓 미륵인 체로 국민들을 속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간혹 몇 가지 공통점은 허탈한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조금은 시니컬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미소를 자아내는 폭소! 그러나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궁예가 과연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독재의 칼날을 휘두른 전제적 폭군인지. 아니면 이상세계를 꿈꾸었으나 시대를 잘못 태어나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제왕인지.
아마도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제작팀은 궁예를 후자보다는 전자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애초에 호탕해 보이던 궁예의 웃음을 그토록 비열해 보이도록 둔갑시킨 것을 보면. 솔직히 지금은 다소 느끼하기까지 하니까.
그러나 최근 <슬픈 궁예>라는 책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재범 경기대 교수는 궁예를 다른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재범 교수는 궁예가 왕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궁예의 포악함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계 호족들의 조직적인 결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를 ‘정신분열자’ 혹은 ‘과대망상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궁예는 사실 고구려계 호족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지배질서를 변혁하려고 했던 ‘비운의 독재자’라는 주장인 셈이다. 또한, KBS 드라마 <태조 왕건> 대본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삼국사기>와 같은 정사가 승리자의 역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수긍이 가는 점이기도 하다.
과대망상자 또는 비운의 독재자
그러면, 무엇이 진실일까. 여기에서 승패는 바로 이 대목에 있는 듯하다. 법회에서 자신이 미륵임을 설파하려는 궁예와 거짓 미륵임을 고발하려는 석총이 대면하는 장면!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도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권력의 정당성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기점일 테니까.
이 대목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한 마디로 궁예와 석총의 게임은 편파적이다. 게임의 무대는 궁예의 홈그라운드지만 석총은 홈그라운드에 중무장을 하고 알몸인 궁예 앞에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석총은 미륵사상의 정통계승자로 사기꾼인 궁예 앞에 등장한 셈이다. 따라서 게임의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이러한 게임설정은 조금 웃긴 일이다. 사실 법상종(法相宗)은 크게 미륵과 지장을 모시는 계파와 미륵과 아미타를 모시는 계파로 나뉜다. 그리고 전자는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계파로 지방호족세력의 이데올로기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반면, 후자는 신라말의 혁명적 농민의 진출을 반영하고 있는 민중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전자는 개혁의지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반면, 후자는 현실세계를 개혁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철원의 궁예주의, 고집스런 개혁의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자의 정통계승자가 석총인 반면, 궁예는 후자를 좀 더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의 자술경 20권을 감히 정통미륵사상에 도전한 우매한 행각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궁예의 자술경 20권은 신라사회에서 주류를 형성해온 기존의 지배사상에 대한 도전장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은 궁예의 신라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가 꿈에서 아버지인 경문왕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현실세계에 대한 궁예의 고집스런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철원의 궁예주의’가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82년부터 지역문화축제로 태봉제를 해오고 있는 것은 물론, 궁예주의는 지역농민들의 정서적 자부심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물론 철원은 98년 지방선거에서 농민회장 출신이 군의원으로 당선되는 이례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종 개혁적인 조치와 진보적인 사상이 철원에 많이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목도할 때 궁예의 메아리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동방국’에 대한 꿈은 궁예의 (생물학적이 아닌 정치적인) 죽음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아직도 요원한 꿈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비운의 제왕이 다시금 기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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