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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무경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후, 유족들은 부대 내에서 일부 선임병들에 의한 구타나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선 반면, 경찰쪽은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인 성격 탓으로 돌리고 있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낮 12시 15분쯤 대구 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이하 방순대)소속 의경인 함효열(21. 일경. 전남 순천시 연향동) 씨가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현장을 조사한 수성경찰서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체발견 당시 함씨는 자신의 군화 끈을 건물의 파이프에 연결해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한다. 또 발견된 지 이틀 후에 실시된 부검 결과 사망시간을 사체발견 시점에서 4, 5일전쯤으로 추정했다.

함씨는 지난달 23일 설 연휴를 맞아 소속 경찰서에서 실시한 특별외박으로 대구 동구에 사는 동료 부대원인 김아무개(21) 씨와 함께 김씨의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하지만 함씨는 당일 오전 11시 30분쯤 집을 나선 후 소식이 끊어졌고 행방이 묘연했다.

함씨가 사라진 후 방범순찰대로 귀대하지 않자, 소속 경찰서는 함씨를 전국에 수배하는 한편 동료 부대원들을 동원해 함씨의 행방을 찾았으나 실패. 결국 지난 29일에야 시신이 발견됨으로써 그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중부경찰서와 지방경찰청 관계자들은 평소 우울증세가 있었던 함씨가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함씨 어머니와 전화인터뷰

대구지방경찰청 한 관계자는 "평소 소심하고 심약했던 함씨가 규칙적이고 엄격한 부대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른 것 같다"며 이번 자살사건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일부에서 주장하듯 부대 내 구타나 강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달 28일 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로 부임한 이아무개 신임중대장은 '보고 받은 내용임'을 전제로 "(함씨가)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부대 근무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고, "후임병들에게 '넌 죽고 싶지 않나'는 말을 자주 해 자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신임중대장 역시 부대 내 구타나 강압행위에 대한 주장에 대해선 "과거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일축하며, "오히려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기 때문에 다른 부대원들에 비해 관심을 더 많이 가진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아직 경찰쪽의 자체 감사를 두고 봐야 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일부에서 제기되듯 구타나 강압행위 등에 따른 자살이 아닌 '개인적인 성격상의 장애'로 인한 자살이라는 것이 경찰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함씨의 유족들은 경찰쪽의 이러한 태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물론 유족들은 함씨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유족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은 함씨가 앓았던 우울증의 원인이 선임병들의 구타나 강압적인 행위, 혹은 일부 부대원들의 집단 따돌림에서 비롯됐으며 이러한 '부대 환경'에 의해 자살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지휘관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함씨의 이모 맹연숙 씨는 "효열이는 의경으로 입대하기 전까지 성실한 성격이었고, 지방 S대를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될 만한 성격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그러던 그 애가 입대 이후에는 말수도 줄어들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8일 입대한 함씨가 중부서로 전입한 것은 입대 두 달 후인 9월경. 당시 첫 휴가인 '백일휴가'를 나올 때만 해도 부대 생활이 어렵다거나 문제가 있는지 가족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고향을 찾은 함씨가 돌연 가족들에게 '부대로 돌아가기 싫다', '날 죽이려고 하는가'라며 귀대를 거부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설득으로 지난 12월 3일, 결국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고 그 다음날인 4일 중부경찰서 인근의 K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당시 담당의사의 소견서에는 함씨의 병명이 '주요우울장애'로 나타나 있다. 또 당시 진찰내용을 살펴보면 함일경이 수면장애, 우울감, 무의욕, 패배사고 등의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또 '동료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이용할까 궁리하는 것 같다... 군 생활 편하게 하려고 꾀병 부린다고 한다... 고참들이 놀리고 때리고, 장난스럽게 때린다. 그러다 당하면 어떡하나 겁난다' 등의 상담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소견서의 <향후 치료 의견란>에는 '1개월 정도의 통원 치료 중 주위의 면밀한 보호와 관찰이 필요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와 같은 K병원의 진단은 12월 6일, 청원 휴가를 낸 후 들른 고향 인근 Y신경정신과 의원의 진단과도 거의 일치한다.

현재 함씨의 부대 내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주변인물들의 증언과 지난해 12월에 써둔 <진술서>가 전부이다. 당시 <진술서>는 함씨가 부대 생활에서 겪는 고충을 '차마' 말로 하지 못해 궁금해 하는 가족들에게 직접 쓴 것이다.

"...보호수경(후임병들을 살펴주는 지정 선임병)이 저한테 너무 잘해 주셔서 옆 고참이 시기를 해서, 고참한테 미움 안 당하려면 처신을 잘 하라며 윽박 질렀습니다. 소대에서 말하지 말고, 웃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말 안 하면 괜찮겠지 하며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그런 습관이 생기다 보니까 말이 잘 안나오고 웃음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고참이 일을 가르쳐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뱉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책임감마저 없어졌습니다. 모든 일에 불안해집니다."

이러한 가운데 함씨의 자살 배경에 대한 유족들의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특히 유족들은 몇 가지 사례에서는 의혹을 사고 있는 구타, 집단 따돌림이 있었음에도 경찰쪽이 개인적인 사건으로 축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우선 각서 문제. 함씨의 삼촌인 맹동현 씨는 "K병원에서 효열이가 첫 진료를 받은 날 휴가를 요구하자 경찰쪽에서 '각서를 써'라고 해 효열이 어머니가 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각서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경찰서쪽에서도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한 인지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 함씨와 친분이 있었던 방범순찰대 동기인 김아무개(21) 씨가 현재 유족들과 일체 접촉이 차단되고 있다는 점도 경찰의 사건 축소 의혹을 사게 하고 있다. 소속 부대는 현재 김씨가 병가 중이라고 하고 있지만 유족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유족들은 "효열이의 부대생활을 생생히 지켜봤던 김씨가 입을 열면 사안이 확대될 것이 뻔하니 외부와의 접촉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검결과에서는 유족과 경찰의 주장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중부경찰서에서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올린 <종합답변서>에는 '하복부의 구타 의심흔적은 체내 부패한 내장 등이 내려 앉은 부패흔으로 판명되었고 신체 각 부위의 구타 흔적은 일체 없는 것으로 검시함(유족측 입회 확인)'으로 작성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유족들은 "부검시 함씨의 양쪽 무릎에 피하출현이 발견돼 있었는데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답변서>에는 이를 누락시켰다. 이는 경찰쪽이 사건을 축소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대구지방경찰청 감사실 한 관계자는 "아직 다각도로 조사중이지만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가혹행위나, 구타 등의 행위가 드러난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일선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므로 좀더 시간이 지나야 결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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