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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새끼들, 저 새끼들 하루 밥값만 7천만원이래. 경찰이 민생은 안 돌보고 여기 와서 우리 잡아가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다 우리 세금이야.”
“사복조도 80명이나 깔려 있대. 여기서 50m만 지나면 방송 차량 할 것 없이 다 검문하잖아. 신계엄령이야. 계엄령.”

여기는 인천시 부평에 위치한 산곡 성당.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에 공권력이 투입된 후, 노조원들은 공장을 잃고 이곳 성당으로 쫓겨왔다. 산곡 성당에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다 지났다. 처음 아침 집회에는 겨우 40명의 조합원이 모이던 것이, 이제는 400명이 모여 집회를 갖고 거리 선전전을 펼친다.

그래 봐야 정리 해고된 1750명에는 채 미치지도 못할 숫자지만 하루하루 불어가는 집회 대오를 보면 그네들 스스로 뿌듯하기만 하다.

아침의 어수선함을 뒤로 하고 금속연맹 문성현 위원장의 4시간 연대 파업 기자회견이 열리자, 삼삼오오 몰려든 노동자들이 귀를 기울인다.

“좀 서운하죠? 금속연맹 17만 중에 3만 밖에 파업 안 하다니... 하지만 이게 처음 있는 일이예요. 자기 사업장 문제 아닌데 연대 파업 들어가는 것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동지 여러분, 힘내세요.”
문성현 위원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너도 나도 박수를 친다. 힘차게 손뼉이나 부딪혀 보자, 힘이나 나게.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노동자들의 볼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묻어 나기 시작한다.

“언론이 통제당한 거에요? MBC, KBS에는 왜 우리 얘기가 1분, 1초도 안 나와?”
발길을 돌리려던 기자들을 붙잡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노동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이내 말문을 트였는지, 한 노동자는 “우리가 왜 잘립니까? 회사 말아 먹은 놈은 김우중, 김대중이야. 회사는 그네들이 말아먹고 우리를 왜 자릅니까?”라며 하소연을 털어 놓기 시작한다.

“나요, 회사에서 일하다 차에 치여서 1년 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이제 잘리면 제가 뭘 합니까? 우리 네 식구 굶어 죽어야 해요. 가장인 내가 허리 다치고 무릎 다치고 아픈데, 2년 뒤에 실업수당 끊기면... 난 죽어도 여의도 가서 죽을 겁니다!”
이세연(43) 씨의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목젖에 핏대가 솟는다.

“어머니가 정리해고 통지서를 직접 받아 보셨대요. 차라리 내가 받았으면 좋았을 걸...” 어머니 걱정에 이마에 한 가득 주름을 지어 보이는 윤현경(32) 씨는 “노조 동의서 한 장에 부도 안 나면, 사업장들 왜 부도 났게요?”라며 대우자동차 최종 부도 처리가 노조의 동의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한 언론들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던진다.

천막 한 구석에 몇몇의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댄다. “다시 만들었네. 머리띠 있는 걸로. 허허“ 너털웃음에는 냉소가 그득하다. 천막 귀퉁이에 붙은 ‘대우자동차(주) 불법 파업 주동자 수배’ 전단에 나붙은 낯익은 얼굴 때문이다. “김우중이나 잡아라. 이 새끼들아!” 욕설이 난무하는 이 곳은 산곡 성당이다.

가족대책위의 천막은 저 안 쪽 구석에 있다. 지난 19일 1750명의 정리 해고자 명단이 발표됐을 때, 가족들은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만 없어 가족대책위(위원장 정순희)를 구성했다.

“여자들이 뭘 하겠냐 하는 생각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남편들이 얻어 맞는다는데 하는 생각에서 애들 들쳐업고 무작정 뛰쳐 나왔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우리는 몸으로 다 봤으니까, 집에 못 있겠어요. 다른 엄마들은 TV로만 보니까 상황을 모르니까...” 정성미(36) 씨는 말을 이어간다. “여기 오는 게 편해요. 같이 의지하고 위로 받고, 싸우고 그러는 게 나아.”

“애들 데리고 나오려면 힘들지 않으세요”란 질문에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 애랑 3학년 올라가는 애 둘인데, 고모네 맡겨 놓고 왔어요. 봄방학도 끝났는데 3일째 학교에도 못 보냈어...”

말끝을 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싸우고 그러다가도 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강해져야지 하다가도 애들만 생각하면...” 몸으로 전투 경찰을 막아서던 억센 아낙도 아이들 생각엔 눈물을 떨군다.

“집도 다 내놓고 단칸방으로 옮겨야 하는데, 작은 애 학교 들어가자마자 이사 가야 할까봐.” 처음 만나는 기자의 손을 잡고 또 한번 눈시울을 붉힌다.

가족대책위의 하루는 노래배우기로 시작된다. “어디서 박수 치고 어디서 ‘투쟁’해야 할 지 모르겠어. 쑥스럽기도 하고...” 수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흩어지면 죽는다~’하고 첫 음절을 떼는 폼이 제법 익숙하다. 이젠 아이들도 엄마 따라, 아빠 따라 파업가를 부른다.

엄마들이 점심 선전전을 하러 거리로 나간 사이, 아이들은 천막의 주인이 된다. “여기 왜 왔어?” 이제 다섯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계집아이가 또랑또랑하게 대꾸한다. “엄마, 아빠 볼라고. 우리 엄만 투쟁해.” 요한이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심통을 부린다.

“요한아, 일루 와. 우리 동생 보고 놀자. 밖에 나쁜 아저씨들 있는데, 요한이가 동생 보호해야지.” 다른 엄마의 말에 요한이는 천막 구석에서 가운데 자리, 동생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경찰 아저씨들 나빴어. 왜 남의 회사에 들어오고 그래?” 여섯 살 요한이도 이제 알 건 다 아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산곡 성당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정리 해고 노동자, 파업가를 부르는 아줌마, 그리고 알 건 다 아는 여섯 살 요한이.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1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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