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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3.8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왔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부녀자의 날’로 칭하는데, 3월 8일 하루는 모든 직장여성들이 하루를 쉬거나 오전근무만을 하고 체육대회나 야유회 등을 가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1949년 사회주의 신중국 건립 이후, 새로운 ‘혼인법’ 반포를 시점으로 해서 이들 중국여성들은 구시대에서 받아왔던 온갖 억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사랑과 결혼의 자유를 비롯해서 여성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형식적인 남녀평등의 논리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들 중국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평등의 정도는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는 듯하다.
중국 가정에서 남자들이 요리나 빨래 등 가사일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점에서 만큼은 나는 중국남자들을 조금 좋아한다. 얼마 전 중국의 북경사범대에서 실시한 남녀가사노동 분담률 비교조사를 보더라도, 중국의 남녀가사노동 분담률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서구 선진국가들보다 훨씬 높았다고 하니 가히 그 ‘평등’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남녀평등’문제에 대해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만큼 평등한 국가는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지난 해 중국사회과학원의 모 노교수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 교수님 왈 “듣자하니 한국은 남녀차별이 아주 대단하다고 하더군. 예전에 내가 알던 한국유학생 중에 매우 똑똑한 여학생이 하나 있었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물론 성적도 우수했어. 박사학위를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나는 틀림없이 그 여학생이 대학교수가 되어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나중에 우연히 그 여학생의 출신 모교를 가게될 기회가 있어서 소식을 알았는데, 듣자하니 몇 년째 강사노릇만 하고 있다더군. 그 대학의 한 교수가 그러더군. 한국에서 여자가 교수가 될 확률은 매우 적다고. 중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쯔... 그래 자네는 공부 마친 다음에 무슨 대책이 있나?”.
그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 물론 내가 얼마나 난처했는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남녀차별이 한국에서는 ‘정상’적으로 행해진다고 하는 그 말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저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과연 중국에서는 남녀차별이 ‘상상할 수 없는 일’ 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중국의 사회변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이 ‘평등’의 문제도 덩달아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가정폭력, 사회적 문제로 부상
최근 중국의 각 신문이나 방송에서 ‘부녀자의 날’을 앞두고 말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일까. 조금은 놀랍게도 가정폭력 문제이다. 얼마 전 션젼(深川)에서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한 가정주부가 사망한 사건까지 발생해 이 문제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모 리서치 전문기관에서 실시한 현대여성들의 각종 의식변화 조사결과에 대한 ‘공론’이다.
남녀평등문제만큼은 ‘우리를 본받아라’고 말하는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일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관련된 보도내용들을 보니 가볍게 넘길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그 가정폭력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나 처리방식 등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대부분이 그저 ‘집안일’이거나 남의 ‘부부싸움’정도로 생각해서 참견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더욱이 공안당국에 신고할 생각은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베이징 완빠오(晩報)의 보도내용을 보면, 전국부녀자연맹의 조사결과 중국은 매년 40만 가정이 해체되고 있으며, 이중 4분의 1이 가정폭력이 빚은 결과라고 한다. 또한 난팡왕(南方网)의 보도에 따르면, 광져우(廣州)시 가정의 30%가 이 가정폭력문제를 가지고 있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폭력의 주요한 피해자들은 부녀자들과 노약자, 아이들이며 폭력행사의 방법 역시 갈수록 흉악해져서 관련당국의 법적 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법체계상으로는 이 가정폭력에 관한 전문적인 법률이 따로 없고 ‘형사법’이나 ‘치안처벌조례’에 근거해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위 신문에 실린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러한 법조항들은 실질적으로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이 가정폭력 문제가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는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각 지방마다 전문적인 가정폭력 상담소나 신고센타를 운영하고 있고, 베이징이 1992년도에 전국 최초로 부녀자심리상담소를 개설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 부녀상담소의 가정 폭력 신고접수율을 참고하면, 9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눈에 띄게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폭력의 가해자들도 문화나 학력수준이 낮은 계층이 아니라 반 이상이 대학학력 이상이다. 그중에는 박사나 교수, 감독(영화, TV연출 등), 화가 등의 직업을 가진 상류층 남성들도 상당수였고, 소위 ‘맞는 여성들’도 고학력의 엘리트 계층이 반 이상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무슨 ‘개혁개방의 부작용’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신세대 ‘전위적 여성’들의 출현
최근 베이징 메이란더(美蘭德)리서치 전문회사에서 베이징, 상하이, 광져우, 청뚜등 대도시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두고 각 언론에서 말들이 많았다. 그 조사결과를 놓고 언론마다 ‘전위적 여성’들의 등장이라고까지 한 걸 보면 꽤나 흥미있는 일이다.
이 회사가 조사한 각 항목별 주요 결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5-59세까지의 여성들 중 약 20% 정도가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라는 의견을 밝혔다고 하며, 이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들의 찬성도가 24.7%로 총 평균비율보다도 높고 중노년의 여성들의 찬성비율보다도 더 높았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이러한 비율은 더 높다고 나왔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결혼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는 낳고 싶다’라고 밝힌 비율이 6.7% 였다. 비록 대다수의 기혼여성들이나 장년의 여성들은 이 의견에 그다지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미혼의 여성들 중 10.6%가 이러한 생각에 지지를 했다고 하니 이들 젊은 신세대 여성들의 ‘급진적 사고’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해 10월에 잠시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 있는데, 이 역시 ‘결혼하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소위 ‘사생아’ 논쟁이었는데, 청뚜(成都)에 사는 28세의 석사학위를 가진 미혼의 엘리트 여성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이 미혼여성의 대담한 발상을 놓고 각계의 의견들이 분분히 제출되었는데 물론 대다수의 의견은 ‘시기상조론’이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중국언론에서는 이러한 ‘전위적 사고’를 가진 여성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서 조사한 다른 조사결과를 보면, 60%의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경제적인 조건이 허락한다고 해도 전업가정주부로 되돌아 가지는 않겠다’고 답을 했으며, 이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는 놀랍게도 노년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노년여성들의 72.8%가 전업가정주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응답을 한 걸 보면, 그 무척 의미심장하다. 가사노동과 관련해서는, 22.5%의 여성들이 당연히 여성들의 가사노동도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에 적절한 가사노동비가 책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주요한 내용으로는, ‘동거’에 관한 조사이다. 조사대상자의 18.2%의 여성들이 ‘결혼 안하고 동거는 할 수 있다’라는 의견에 찬성했고, ‘매우 찬성’한다는 비율이 5.5%였다. 이중에서도 20살이하의 소녀들의 응답이 ‘매우 찬성’과 ‘비교적 찬성’한다는 의견에 무려 32.8%의 지지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도시로 보면, 베이징여성들이 ‘동거’를 가장 지지하는 여성들로 조사되었다. 최근 들어 소위 시험결혼족(동거와 같은 의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스훈족’(試婚族)들이 암암리에 중국대학가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이들 스훈족의 등장은 곧 위의 조사결에서 나타난 젊은 여성들의 결혼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실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15.7%의 여성들이 ‘독신주의’를 찬성했고, 20세 이하의 연령대에서는 28.1%가 ‘독신을 신봉’한다고 대답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독신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3.8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부분적이나마 신문보도내용을 바탕으로 중국 여성들의 현황을 간단히 스케치해 보았는데, 개인적인 결론은 이들 중국여성들이 마주치고 있는 현실이 더 이상 녹녹치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위에서 든 가정폭력의 문제 외에도, 개혁개방 이후 증가하고 있는 여성의 ‘성상품화’ 경향, 그리고 지난해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한 ‘추녀’에게 술집 출입을 금지한 이른 바 ‘추녀사건’이나 최근의 다이어트 열풍 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들은 현재 중국사회의 여성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 사이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이 강화되고 시장화 경제정책이 추진되면서 소위 샤강(下岡, 강제해직) 대상자들의 1순위가 바로 40세 이상의 여성들이 되었다고 하니 이들 중국여성들도 더 이상 법적인 평등권 보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위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듯, 자아의식이 뚜렷하고 기존사고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을 원하는 신세대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혁명’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즉 형평적인 평등을 획득하기는 했으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과 사고는 여전히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 이들 ‘전위적 신세대'들의 출현은 중국여성들의 새로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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