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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가 지은 'HAMMER OF GOD'이란 책에 미래사회의 가상현실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책에 묘사된 21세기의 미래사회는 매트릭스에서 선보였던 완벽한 가상현실 체험기가 지금의 TV처럼 보급이 됩니다.
다만 매트릭스에서는 가상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목 뒤에 달린 접속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방식인데 비해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학자들은 두피에 분포한 대뇌 촉수에 수백만개의 전자 침이 내장된 헬멧을 밀착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냅니다. 미장원의 파마 기계를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방식의 약점은 두피와 헬멧을 완벽하게 밀착시켜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깨끗하게 밀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미용상의 이유로 처음엔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죽은 가족을 다시 살려내거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는 등 가상현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나 컸기에 곧 민머리 패션이 대세가 되고 덩달아 가발산업까지 번창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예측입니다.
느닷없이 SF 소설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무리 훌륭한 테크놀로지가 개발이 되어도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결정적으로 크지 않는 한에는 사람들은 몸에 익숙한 습관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수백년간 안경을 써 왔지만 눈 앞에 렌즈 대고 귀에다 안경테 거는 기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보청기는 항상 귓 구멍 모양에 맞추어 만들어졌으며, 노트북이 아무리 발전해도 키보드의 크기는 손가락보다 작아질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느닷없이 진화하지 않는 한 모든 기계는 인간의 몸과 생활습관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HDTV가 도입되고 있는 지금 수 많은 기술담론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간이 기술을 지배하는 것이지 기술이 인간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TV와 극장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극장에 들어가면 불끄고 숨 죽인뒤 영화에만 몰두하게 되는 반면 TV는 밥먹고 잠자고 시간 때우는 우리의 안방에 항상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HDTV도 고화질에 다양한 기능이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결국 안방에서 보게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TV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저택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TV만을 위해 별도의 방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HDTV를 안방극장이 현실화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은 서재에 커튼을 치고 방음을 하고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구입하는 꿈에 젖어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꿈'일 뿐입니다. 또 여건이 되어 그런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불을 끄고, 커튼을 닫고, 프로젝터를 예열시키고, AV 앰프를 작동시키는 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HDTV를 볼 준비가 됩니다.
지금 쯤은 짐작하셨겠지만 제 생각에 HDTV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전 국민에게 보급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TV처럼 간편하고 부담없는 도구로 자리매김 되어야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프로젝터나 프로젝션 방식 HDTV의 미래를 어둡게 봅니다. 아마 일부 소수 매니어의 독특한 취미생활 정도로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결론에 이른 또 하나의 이유는 프로젝션 방식 TV의 구조적 특성상 절대로 대량생산에 걸맞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프로젝션 TV가 보급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전자제품 값이 싸다는 미국에서조차도 아직 고가입니다. 커다란 렌즈가 3개나 들어가고, 1년에 한 번씩은 기술자가 와서 recalibration 작업을 해 주어야 하고, 수십 만원이 넘는 램프를 주기적으로 교환해 주어야 하는 기계적 특성 탓에 상당히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얼마 전 가전 3사가 선보인 브라운관 방식 32" HDTV의 미래를 가장 밝게 봅니다. 생산자 입장에서 브라운관 방식은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의 효과를 가장 크게 올릴 수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TV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계적 특성에다 별다른 유지 보수도 필요 없고 무엇보다도 광량이 크기 때문에 커튼을 닫고 불을 끄는 요란한 준비 없이 언제든지 리모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대다수 서민의 거실 크기가 5~6평을 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스크린 사이즈 면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시야각을 얻을 수 있는 HDTV입니다. 그래도 크기에 불만이 있으신 분은 TV 앞에 가까이 앉으시면 됩니다. 요새 TV는 각종 마이콤 장치로 떨림 현상이나 유해파 방출을 많이 제거했기 때문에 TV 앞 1.5M 정도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대량생산과 보급 측면에서 유망한 또 하나의 방식은 플라즈마 TV입니다. 지금은 40인치 스크린 하나가 1만달러를 호가하지만 그 기술적 특성상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제품입니다. '80년 초 CD가 처음 나왔을 때 당시 물가로 2만원을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은품 수준으로 무료 배포되는 것을 지켜 보셨을 것입니다. 왜? 마스터링이나 스탬퍼 작업만 끝나면 말 그대로 쾅 쾅 찍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DVD 역시 생산 공정이나 원가면에서 곧 무료 배포 CD의 운명을 따라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결론적으로 당장 HDTV를 사고자 하시는 분은 32" 브라운관 방식 HDTV를, 몇 년 기다려 보실 분은 플라즈마 HDTV가 값이 떨어지는 때를 노려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파나소닉의 34" 브라운관 방식 HDTV를 가지고 있습니다.
>>2편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HDTV에 대한 기사를 오늘부터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www.cnet.com을 방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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