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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자, 그래야 공장으로 돌아가지”

3월 7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재가동. 1750명의 정리 해고가 아무렇지 않은 듯 부평 공장이 조업을 재개한 지 8일째인 지난 15일(목). 부평은 산고를 치르다 실신한 임산부의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었다.

부평 공장 사방에는 3000여명의 경찰들이 늘어서 있고, 공장 안에도 사복을 입은 어깨들이 문을 지키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아든 노동자와 좋든 싫든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지 않은 이유로 공장에 출근해야만 하는 노동자 사이의 오감도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형제처럼 지내던 이들 사이에 경찰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가 자리 잡고 말았다. 소주잔을 기울여서라도, 털어내고만 싶은 속내에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자리에 기자가 말석을 차지했다.

”경찰차 타고 비표에 스티커 붙여야 들어가”

“김씨 오늘은 출근했다면서? 혼자 정문으로 출근하겠다고 버티더니만... 쯧쯧”
이제는 공장이 아닌 산곡 성당으로 출근하고 있는 박씨가 먼저 말을 꺼낸다. 지난 7일 이후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경찰들이 호위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다. 홀로 정문 출근을 감행했던 김씨도 오늘은 경찰들이 태워주는 버스에 올라탄 모양이다.

“대의원들은 월차 쓰게 해, 출근도 아예 안 시키는데 뭘.”
다행인지 불행인지 1차 정리해고 명단에서 제외된 이씨가 입을 열었다. 90명의 노조 간부 중 60여명이 공장에 남아 있다. 회사는 그들 중 노조 활동을 할 듯 싶은 이들에겐 월차를 종용한다.

박씨는 “현장 노조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숨만 내쉰다. “안에서 사람들 좀 만나봐. 성당 대오랑 연결해서 같이 싸워야지. 잘릴 각오하면, 안 될게 무어야?”
박씨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답답하기는 이씨도 마찬가지다.

“공장 안에서 경찰들이 리시버 끼고 다니다가 수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상황실에 연락해서 용역 깡패들 투입하겠끔 되어 있어. 들어갈 때도 용역들이 비표 확인하고 직장, 조장들이 얼굴 확인하고 해.”

현장을 감독하는 직장, 조장들이 나눠준 비표에 스티커를 붙여 출근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색출해 낸다. 매일 일러주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지 않으면, 공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조차 없다. 계엄령과 다름 없는 분위기가 공장에 떠돌고 있다.

철창으로 가로 막은 노조 사무실

“회사에서 유인물 나왔다며, 한마음 회본가 하는 거 말야?”
“응, 산곡 성당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대우가 어렵다는 식으로 나왔더라구.”

회사에서 발행한 회보에는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이 투쟁을 포기해야, 대우자동차가 정상화 될수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안에서 노조 만들자는 얘기 없어?”
“아예 그런 얘기조차 안 해. 노조 사무실 입구 쪽에 철창 만들어 놔서 들르기도 어려워. 저리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도 어깨들이 훔쳐보고 있어서 말야.”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도 위압감에 질려 노조 사무실에 드나들기는 어렵다. 어제 저녁에서야 카메라 기자가 들어오는 바람에 용접해 놓은 철창을 떼냈다.

“그럼, 그 동안 문 하나씩만 열어 놓고 비상문도 다 닫아놓은 거야? 불나면 다 죽을 뻔한 거잖아.”
박씨의 눈에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일했던 공장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안 잘리고 일하는 내가 비굴해 보여”

“오늘은 어디서 일했어?”
“마후라 들고 6시간 일했어. 계속.” 공장 재가동 이전에는 칠이 잘못된 곳을 손봐주는 일을 했던 도장 기술자 이씨는 동료들이 떠난 후, 자신의 기술과는 상관없이 엔진에 연통을 다는 일을 하고 있다.

“왕따 만드는 거 아냐? 자격증까지 있는데, 지들 맘대로 옮겨 버리고. 한 마디로 미운 털 박힌 거잖아.”
함께 일하던 동료가 공장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에 불끈 열이 올랐는지 박씨는 소주잔을 입에다 털어 넣는다.

“이 쪽 봐도 불안, 저 쪽 봐도 불안. 24일에 퇴직금 통장으로 들여보낸다고 하던데, 봄 되면 장사하겠다고 나서는 놈들도 많을 거야.”
이씨는 박씨를 떠보려는 듯, 슬며시 퇴직금 얘기를 던진다.

“그 돈 받아 쓰면 정리 해고 인정하는 거 아냐? 지난 번에 과천 가서 보니까 200일, 300일 돼도 투쟁하는 사람 많더라. 여기서 그만 둘 순 없지.”
박씨의 맘은 굳은 듯 보였다. 이씨도 그의 맘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인다.

“나도 길게는 안 봐. 신문에 나온 것도 있고 3년에서 5년 뒤엔 나라고 안 잘리겠어? 부평 공장이 없어질 거라고 안에서도 수근대는 걸. 난 이번에 안 잘리고 일하는 내가 비굴해 보여.”
날이 저물면 박카스 한 박스가 슬그머니 놓인다

“그래도 밤이 되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신나 좀 달라고 다 불질러 버린다고 성당으로 찾아와.”
낮에는 사복 경찰들의 카메라에 노출될까 성당 출입을 꺼리는 사람들도, 저녁 무렵이 되면 박카스 한 박스 슬그머니 넣어주고 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차씨, 택시 그만두고 자존심 찾겠다고 열심이야. 이번에 잘린 직장들도 자기반성 해가면서 투쟁해. 잘릴 땐 다 같은 노동자거든. 리비아 조립 공장에 갔던 사람들도 24명 중에서 16명인가 잘렸대. 8명은 해고 인정 못 하겠다고 입국했어.”
박씨가 말하는 차씨는 대우자동차 위기가 오자, 회사를 떠나 택시를 운전하다 다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 싸우다 보면 이기는 날도 오겠지.”
“오래 살자. 그래야, 공장으로 돌아가지. 다시 같이 일해봐야 하지 않겠어?”내일 아침이면, 박씨는 산곡 성당으로 이씨는 공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끝나지 않은 산고를 치를 준비를 위해서.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www.e-unipress.com) 12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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