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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 고생은 은(銀)주고도 산다’고 했던가? TBC 대구방송‘가슴을 열어라 틴틴’과 대구교통방송‘TBN 차차차’의 MC를 맡고 있는 이도현(31) 씨는‘은’주고 고생을 산 덕분에 행운의‘금(金)’을 얻을 수 있었다.
지역 방송가에서 표준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남자 MC는 보기 드문 일. 경북 경산이 고향인 그 역시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토종 경상도 사나이였다. 때문에 굳어버린 경상도 억양을 방송용 표준으로 고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뉴스만 나오면 무조건 따라하기 시작했죠. 그것도 모자라 녹화를 해 놓고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엔 전라도·서울·경상도 말이 섞여 어느 지역 말인지 모를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는 ‘느끼하다’는 주위의 핀잔을 들어가며 연습한 덕분에 여러 방송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을 만큼 완벽한 표준말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경북 경산중학교에서 대구 경신중학교로 전학하면서‘촌놈’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던 학창시절. 때문에 상위권이던 성적이 중위권으로 밀려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운수업을 하시는 아버지, 공장에 다니시는 어머니, 2남 1녀 중의 장남. 여기서 쓰러질 수 없었다. 그의 몸 안에서는 잡초 같은 생존의식이 본능적으로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남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스스로 과대표가 되어 각종 행사의 맨 앞에 섰다. 일찍이 자신의 ‘끼’를 발견, 대구 YMCA 레크레이션 지도자 과정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인생 항로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공사장의 막노동부터 접시닦이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고생했던 대학시절이었지만, 레크레이션 2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엔 각종 행사의 사회자로 초청 받는 등 이 시대 최고 입담꾼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이벤트회사에 입사, 무대설치부터 해체까지 도맡아 해야 했던 고생스러웠던 입사초년 시절. 하지만 그때의 고생이 밑거름이 되어‘행운’을 잡았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때 이씨의 사회를 눈여겨 본 안동 MBC PD가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스카웃 했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노력파에 속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여론이나 시사에 밝아야 생방송의 리얼리즘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틈틈이 책과 신문을 읽는다.‘100권의 책을 읽으면, 100마디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
‘인간은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는 멀리보기 위해 경주대학교에서 광고홍보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안 배우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신을 연신‘행운’이라고 표현하는 이씨. 그러나 땀과 눈물 섞인 그의 인생을 보노라면 행운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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