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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권 침탈과 함께 한국인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었으나, 3·1운동 이후에는 이른바 문화 통치에 의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발행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정간, 폐간되고, 언론인들이 구속되는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고등학교 국사교과서 하권 172페이지, 4번째 단락)

교과서에서 만난 '민족지 조선일보'

얼마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이아무개 씨는 "국사교과서 172페이지를 한번 살펴 보라"는 이야기를 기자에게 건넸다. 거기엔 "조선일보가 '민족지'(民族紙)라고 표현돼 있다"는 말과 함께. 그 후 어렵게 구한 국사교과서, 역시 그곳에서 기자는 '민족지 조선일보'를 만났다.

물론 '민족지 조선일보'는 국사교과서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www.naver.com)에서 조선일보의 전 사장인 '방응모' 씨의 이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본문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방응모는) 1개월 후 사장에 취임하고 광산에서 번 돈을 몽땅 투자하여 <동아일보>와 더불어 <조선일보>를 2대 민족지(民族紙)의 하나로 육성하였다..."(출처: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이 대목에 들어서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몇은 한 번쯤 되묻지 않을까. "조선일보가 민족지. 그게 뭐가 큰 문제냐고" 올해로 82주년의 기나긴 역사(最古)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에게 '길들여져' 있는 이들에겐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국사교과서에 기록된 '조선일보가 민족지'라는 대목을 눈 여겨 살필 수밖에 없고, 이를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현재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을 공정하게 다루어야 할 국정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논쟁 중'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대구에서 열린 조선일보 반대집회-'삼일절 유인물 사건'을 계기로 열린 이날 집회를 비롯해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이승욱
'조선일보는 민족지' VS '조선일보는 반(反)민족지'

지난 3월 1일 대구에서 한 젊은이가 <조선일보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돌리다 5시간 동안 경찰조사를 받았다. 문제가 된 유인물에는 조선일보가 일제시대 ▲일본천황과 일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신문 ▲일제를 위해 민족의 재산수탈에 앞장 선 신문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고 민족혼 말살에 앞장섰던 신문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또 그 근거로 당시 조선일보와 조광(월간조선의 전신)에 실린 기사를 예로 들었다. 현재 그는 유인물을 돌리던 시민단체 회원 2명과 함께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로 조선일보사에 고소를 당한 상태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한 현직 기자는 '조선일보는 반(反)민족지'라는 주장에 대해 발끈했다. 이 기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조선일보가 친일행위를 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 일제치하에서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냐"고 되물었다. 또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조선일보의 친일행위를 문제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하고 "조선일보도 민족지로서 일제에 폐간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나름대로 일제시대 때 고충을 겪은 신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창간 당시 진보적인 인사들의 참여로 '무조건적인 조선일보는 민족지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적인 역사연구단체로 알려져 있는 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창간 초기 진보적인 인사들이 일부 참여하면서 진보적인 논조를 펴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현행 국사교과서에 실린 대로 1920년대와 30년대 초반의 조선일보를 민족지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문제삼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국사교과서 하권ⓒ이승욱
국사교과서만큼은 공정한 역사 기록돼야...

그렇다면 국사교과서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옥천시민모임) 전정표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가 창간된 이후 이상재, 신석우 등 민족주의자들의 참여로 반일노선을 걷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33년 방응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은 극에 치닫게 됐다. 결국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은 방응모 체제 이후 30년대와 해방 이후 40년대까지의 기간 동안 철저히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일제시대 조선일보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반일파 혹은 민족주의자들이 경영하던 시기와 친일파들이 집권했던 시기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서 전정표 대표는 "지금 고등학생들이 접하고 있는 국사교과서엔 단순히 조선일보 창간 초기 반일노선을 근거로 '조선일보는 민족지'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너무나 치우쳐 있는 역사인식"이라면서 "청소년들에게 공정한 역사인식을 가르치는 교과서만큼은 문제가 되고 있는 30년대, 40년대의 조선일보의 친일행적도 함께 교과서에 기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대표의 말대로 현행 교과서에는 위에서 예로 들었던 172페이지 4번째 단락을 제외하고는 조선일보의 언급은 거의 없다. 단지 177페이지 하단에서 178페이지에 걸쳐 조선일보가 주도적으로 벌인 문맹퇴치운동, 동아일보의 '브 나로드'운동이 간략히 기술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행 국사교과서는 조선일보에 대한 공정한 역사인식을 갖게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독자들이 직접 기억을 더듬어 고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국사시간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는 점으로도 이해가 될 법하다. 그렇게 우리는 은연중 '조선일보는 민족지'라는 인식을 '강요'받고 있어왔던 것은 아닌가.

▲사진은 지난 17일 대구 조선일보 반대집회에서 한 집회 참가자가 조선일보를 찢고 있는 모습ⓒ이승욱
'국사교과서 바꿀 기회가 왔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7차 교육과정개편에 맞춰 96년 9월 초판이 발행된 현행 국사교과서의 개정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내 교육과정정책과 한 관계자는 "작년부터 새로운 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대학교수, 일선 교사들을 중심으로 집필진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올해 안으로 심의를 거쳐 일선 국사교사들의 현장 검토를 마치고 오는 2002년엔 새로운 교과서로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교과서에서 '민족지 조선일보'에 대해 어떤 수정과 보완이 가능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94년에도 교육부는 국사교과서를 개편하기 위해 '국사교육내용 전개 준거안 연구위원회'(국사교과서 개편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당시까지 왜곡된 해방전후사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를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옥천시민모임이 펴낸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94년 3월부터 기획기사, 사설 칼럼 등을 총동원해 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의 사상에 문제가 있고 개편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보도를 함으로써 개편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도 조선일보와 언론사들의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공정한 역사를 기술한 국사교과서를 손에 거머쥐기엔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은 것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안티'조선 운동의 요체는 단순히 일제시대의 친일행적만은 아니다. 해방 이후 그리고 80년대 이후 조선일보가 보였던 보도 행태와 논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욱 핵심에 가까운 사항이다. 그러나 국사교과서에서마저 편협한 '민족지 조선일보'식 주장을 만난다는 것은 검토되고 보완돼야 한다.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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