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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중반 마돈나와 함께 미국의 팝을 지배했던 신디로퍼. 무절제한 노출과 돌출행동으로 악녀의 역할을 담당한 마돈나와는 달리 신디로퍼는 소박한 진지함을 바탕으로 친근한 이웃집 언니 역할을 담당했었다.

여성지 "미즈"는 84년말 신디로퍼를 커버로 내걸고 '올해의 여성'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고, 여성지 "글래머" 또한 12월호에 '내년 여성 지위향상에 공헌할 것으로 보이는 7인의 여성'으로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제랄딘 페라로 등과 함께 신디 로퍼를 지목했다. 그 정도로 그녀는 미국 내 여성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녀의 대표적인 히트곡 의 가사를 살펴보자. 한국에 그녀의 노래가 보급되었을 때 <쉰밥>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돌았던 바로 그 가사이다.

In the pages of a blue boy magazine
Hey I've been thinkin' of a new sensation
I'm pickin' up good vibrations
Oop - she bop - she bop

필자의 영어 실력으로는 제대로 다 번역하기 힘들고 간단히 정리하면, 남성잡지를 보다 발정난 여자가 발브레이터를 들고 자위를 하며 달아오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Do I wanna go out with a lion's roar
Yeah I wanna go south and get me some more
Hey, they say that a stitch in time saves nine
They say I better stop - or I'll go blind
Oop - she bop - she bop

이 부분은 보통 사람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은유적 어법으로 되어 있다. 자위행위를 묘사한 것 정도로 이해하자. 그러다,

She bop--he bop--a--we bop
I bop--you bop--a--they bop
Be bop--be bop--a--lu--bop
Oo--oo--she--do--she bop
Oo--oo--she--do

그녀도 달아오르고 그도 달아오르고 나도 달아오르는 자위 잔치를 벌이자, 정도로 곡이 끝난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시절 따라불렀던 'she bop'은 이런 노래였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왁스라는 신인 가수가 'she bop'을 리바이벌했다. 'she bop'이 발음 때문인지 오빠로 둔갑했다.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아 사랑하고 있었나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아파 마음이 아파 내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젠 나를 가져봐
왜 날 여자로 안보는 거니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니

다른 연인들을 봐봐 첨엔
오빠로 다 시작해
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she bop'의 자위하던 여인이 "오빠! 나만 사랑해줘!"를 외치는 소녀로 퇴색해 있다.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여인은 오히려 더 나이가 어려진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오빠'라는 단어에서 미묘한 변태적 색깔과 미시적 권력 관계를 보게 되었다. 그건 내가 남들보다 더 예민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어렸을 때의 불우한 경험 때문일 것 같다. 처음 가본 교회 수양회에 창고에서 들려왔던 소리.

"오빠. 이러지 마. 오빠. 그만해. 오빠 거기야. 거기."

그 다음부터 교회 오빠 어쩌고 떠드는 말만 들어도 불결한 생각이 들었으며 그건 대학에 진학하고도 이어졌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80년대를 휩쓸었던 학형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다시 오빠가 복원되는 시절이었다. '형'이나 '선배'라는 호칭 대신 '오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불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재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어딘가 좀 어색했다. 더구나 똑같은 사람끼리의 만남인데도 '희재씨'와 부르는 여자와 '희재 오빠'라 부르는 여자와 결정적으로 계산할 때 커다란 차이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발 날 오빠라 부르지 말고 희재씨라 부르길." 이런 생각한 적도 많았다. "오빠라 부르지 말고 니가 계산해!"

또한,

다른 연인들을 봐봐 첨엔
오빠로 다 시작해
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이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도 있었다. 그냥 친근한 오빠로 가장해서 접근하다 어느 순간 연인으로 돌변하는 유치한 수법. 뻔히 애인이 있으면서 오빠 여동생 관계로 위장하여 바람피우는 수법.

아무에게나 오빠로 불러제끼는 연예인들, 구태여 오빠 소리 한번 들어보려 여자 나오는 술집을 찾는 아저씨들, 이 세상은 오빠 공해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를 오빠로 부르는 사람과 연애해 본 적도 없고 연애감정 느껴 본 적도 없다.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도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여동생과 오빠의 애틋한 정은 사라지고 온갖 변태적 추측이 난무하는 '오빠 이러지마" 의 근친상간 오빠만 남은 것이다.

물론 애틋한 관계라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렇게 오빠라는 호칭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을까? 그건 아무리 봐도 위선과 기만에 대해서 체질적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의 오감 때문일 것이다.

'she bop'의 "나 지금 자위하고 있어." 이 얼마나 화끈한가? 더 이상 추측을 할 필요가없다. 그런데 <오빠>의 '오빠'

너무 포괄적이다. 비단구두 사오는 '오빠'도 오빠이고 '오빠 이러지마.'의 오빠도 오빠다. 무슨 한국말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가? 애인이면 애인이고 오빠면 오빠이지 아무데나 다 갖다 붙이면 오빠인가?

여동생도 오빠라 부르고 애인도 오빠라 부르고 불륜연인도 오빠라 부르고 호스티스도 오빠라 부르고, 팬클럽 소녀들도 오빠라 부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어의 Elder brother가 이런 식으로 쓰이진 않는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오빠라 부르고 오빠라 불리는 호칭의 불명확함에 대한 거부감 그게 아마 나의 불편함의 정체인 것 같다.

무언가 애매모호하게 양다리 세다리 걸치면서 기회를 엿보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이 오빠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이 오빠로 둔갑한 21세기가 아직 낯설다.

그렇다고 '오빠' 말고 뚜렷한 대안도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예술 웹진 미인(www.meinzine.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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