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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9일 '업무정지 가처분' 판결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던 서울 상문고 제5차 관선이사진이 지난 22일 서울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승소해 9개월만에 다시 복귀했다. 상문고 제5차 관선이사진은 내년 2월 10일까지 2년 동안의 임기를 맡게 된다. 오는 31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있게 될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 채비를 갖추고 있는 박경양(46·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이사장을 지난 28일 만났다.

- 근 9개월만의 복귀다. 지난 22일 판결 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다시 관선이사장의 직무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감회가 어떤가.

"처음(지난해 2월 10일) 맡을 때는 멋모르고 맡았는데 지금은 주변에서 상문고 정상화에 기대하는 바가 많아 부담이 된다. 생각보다 학교 구성원들의 갈등이 깊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어제도 학부모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아이들 학습권을 강조하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몰아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 지난 22일 서울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결정된 '동인학원 이사진의 임원 승인 취소'와 '관선이사 파견 적법' 판결의 의미를 돌아본다면.

"이 판결은 교육계에서 상당히 눈여겨 볼 일이다.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이 의미에 충실했던 판결이라고 본다. 그 동안 교육문제는 법 논리에만 매여 아무 진전을 보지 못한 일이 꽤 있다. 사실, 1심 판결(민선이사 승인)을 뒤집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법 논리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은 큰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판결은 사립학교 문제에 전향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항소심 판결 이후 2주일 안에 대법원에 상고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원고 쪽의 상고 여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아직 상고 여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쪽 변호사와 이후 소송에 대비한 문제를 논의했는데 상고심이 이루어지더라도 대법원에서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법원 판결이 끝날 때까지는 빠르면 2년, 늦으면 5년 정도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상문고 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쉽게 결론 내지 못할 것이다. 대법원 상고심과는 관계없이 제5차 관선이사진 임기 안에 반드시 상문고 정상화를 이뤄낼 것이다."

- 지난 24일 준비모임에서는 어떤 논의들이 오갔으며 오는 31일 있을 제1차 회의에서는 주로 어떤 현안을 다룰 예정인가.

"7명의 관선이사진이 모두 참가했던 준비모임에서는 나머지 이사들이 그 동안 학교 상황을 모르니까 주로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오는 31일에 있을 제1차 회의에서는 모두 16개의 안건이 상정돼 있다. 우선 교장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이미 장방언 교장에게 자진 사퇴를 권고했는데 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목사라 해임하는 건 내 손으로 안했으면 좋겠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우자 이사장이 해임한 행정실 직원도 복귀시켜서 교무와 행정 업무의 정상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또한 '학교발전위원회'를 구성해서 학교 정상화에 매진할 계획이다. '학교발전위원회'는 학운위나 이사회에 빠져 있는 모든 그룹을 망라하는 기구가 될 것이다. 이 단위에서 학교 발전을 위한 마스터플랜도 짜고 각 부문별 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마스터플랜은 제5차 관선이사진이 나간 후에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 만들 것이다. 이를테면 교사의 연구환경과 학생들의 학습환경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 등 가장 시급한 부분부터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2월 10일 서울시교육청은 '상문고 정상화 추진위원회'와 협의, 모두 7명의 제5차 관선이사진을 파견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들의 파견 사유로 △상춘식 전 교장의 횡령액 대물변제 액수 6769만5000원 부족 △법인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상의 필요 △법인이 임원취임승인 이후 불거진 교사들간의 갈등해소 미수습 등을 내세웠다.

당시 파견됐던 관선이사진은 박경양(이사장,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김대환(인하대 교수), 고승중(전 서울시 교육위원), 이용(동문 대표), 이태재(서울 영훈고 교장), 김승렬(서울시교육청 자문 변호사), 오기순(서울 세화고 교장) 등이다. 24일 새벽, 상문고 제5차 관선이사진은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준비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전 과제들을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교육청 이원근 교육지원국장이 배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제5차 관선이사진은 오는 31일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지난해 파견되었던 이사진이 그대로 유임되는가.

"현재 상황으로는 전원 유임된다. 만약 자퇴 의사를 밝힌 이사가 있으면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지난 주 회의 소집을 위한 연락과정에서 오기순(서울 세화고 교장), 이태재(서울 영훈고 교장) 이사가 구두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하거나 정식으로 사퇴 절차를 밟지는 않은 상황이다."

- 지난해 2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약 4개월 동안 활동하다 업무 정지 판결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상문고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자기 발언력이 높은 편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를 모으지 않고는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개인적으로 가장 문제라고 느꼈던 것은 사립학교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운영이었다. 법인 운영은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 동안 관선이사들이 '거쳐가는' 식의 운영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정 운용이나 법인 활동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었다. 최근 대룡골프장 사건이나 법인빌딩 소유 문제 등의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 모두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보면 상문고 학교운영위원회는 기능이나 위원 선출 과정만 보더라도 한국 사립학교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학교라 할 수 있다. 정관 내용도 거의 국·공립학교와 가깝다."

그동안 파견된 관선이사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박이사장은 특히 지난 99년 8월 1일에 파견된 제4차 관선이사진(이사장 이장호, 전 서울 반포중 교장)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당시 4차 관선이사진들은 상춘식 전 교장의 인맥 및 당시 서울시교육청 최용성 의사국장(상문고 개교 당시 서울시교육청 사학담당 계장)의 인맥으로 구성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박이사장은 "4차 관선이사들은 임무를 마친 99년 12월 31일까지 단 한 번도 직원회의에 참가해 신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4차 관선이사진은 교육청이 지시한 정상화 추진 계획 가운데 상춘식 전 교장의 횡령금 17억원 변제요구서에서 94년 이우자 이사장이 체결한 대룡골프장 부정임대에 따른 변제 의무금 4억2000만원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아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 업무 정지 가처분 판결 이후 상문고는 수업거부, 등교거부, 재배정 등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때와 당시 심경은 어떠했나.

"학생들이 장방언 교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등교 거부를 할 때 안타까웠다.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주체적인 결정이라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재배정 조처를 발표한 이후부터 계속된 전학 사태를 지켜볼 때는 이게 교육을 하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게다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손을 잡고 나가 전학시키는 일부 학부모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까지 나타나지 않았는가.

결국 아이들 학습권 중심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교사끼리의 갈등, 상씨 문중의 싸움 등 문제원인을 너무 피상적인 데 초점을 맞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시교육청의 부실한 지도감독이 원죄라고 생각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피해를 당한 후에야 겨우 들어와서는 뒷정리나 하겠다는 태도 아닌가. 상문고 사태 악화의 원인은 서울시교육청 때문이다."

- 항소심 이후 현재 상문고 상황은 어떠한가.

"점차 안정기로 들어서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분위기다. 어제 생활부장 교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 지각생이 100여 명 정도 되는데 판결 이후부터는 10여 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스스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들도 학생들 학습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법인의 예산이 없으면 발전기금이라도 거두어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 현안 가운데 많은 구성원들이 정상화에 비협조적인 일부 교사들의 태도를 비난하며 이들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상문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갈등 해소와 화합이 가장 큰 관건인데 지금 시기에 이들의 해임이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일단 교사들을 모두 만날 것이다. 그래서 학교 정상화와 관련한 관선이사회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설득할 것이다. 만약 그런데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일을 계속한다면 단호한 징계를 내릴 것이다."

- 항소심 판결과 제5차 관선이사진 복귀로 상문고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지난 8년의 상문고 사태를 평가한다면.

"상문고 사태는 다른 부패사학과 분명히 대별된다. 부패재단의 재진입에 맞서는 구성원들의 숫자만 봐도 그렇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싸운 학부모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다른 분규사학에도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그리고 지난 99년 8월 31일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다시 개정하는데도 많은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박이사장은 사립학교법과 관련,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비리나 부패 예방책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비리가 저질러졌을 때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법"이라 전제하고 "내부 감사권 등 사전에 학교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조항이 전혀 없고 비리가 발생해도 임시이사의 파견 동기를 어렵게 규정해 놓았다"고 말했다.

박이사장은 또한 '임원취임의 승인 취소'와 관련된 조항(사립학교법 제20조의 2 '학교법인의 현저한 부당행위가 있을 때')의 애매모호한 규정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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