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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뭔 산행이 이래? "
" 이렇게 빨리 내려올 거라면 이 산을 왜 타냐? "
" 산에서 놀다 오지 뭐. 좋잖아 넉넉하고 이 번 산행은 이렇게 차분하게 시작하자. 꼭 높은 산만 올라야 산인가. 산 맛은 산마다 다르듯이 봄 산행치곤 괜찮아. 여유롭고. "

행정구역상 전북에 속하는 구봉산(九峰山)은 990m의 낮은 산이다.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산 이름에는 몇 가지 유래가 있다. 하나는, 기암괴석의 아홉 개의 암봉으로 이뤄졌다는 것, 또 하나는 조선 중조때 율곡의 친구인 송익필의 호가 구봉(九峰)이었는데 운장산 서봉의 오성대에서 유배 생활을 한 것에 연유한다.

구봉산의 산봉우리가 아홉개라고 하지만 실제로 작은 봉우리까지 세어보면 더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9'라는 숫자의 의미는 많다라는 개념으로 쓰여서 붙여진 이름일 듯하다. 원래 구봉산은 암벽으로 이뤄져 밧줄에 의지하여 위험한 바위와 안벽사이를 산행하게 되었는 데 진안군에서 산행에 좋게 철제 가드레일과 안전장치등 등산로까지 잘 닦아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굵은 밧줄이 있다. 월악산행때 밧줄로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함께 떠올랐는데 한 번도 밧줄을 잡을 기회가 없다.

산삼을 많이 캤다고 하는 산이니 작은 산이지만 그 등허리가 굽은 것처럼 곳곳에 사람들과 보물찾기라도 하고 싶은 듯 많은 것을 숨겨두고 있는 산이 아닐까 싶다. 산행 등기점인 양명(陽明)마을은 약 210년 전 구봉산 중턱에 불공제각(佛供祭閣)을 지었는 데, 그 후 이 곳을 중심으로 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자리잡았다 하여 '양명'이라 불렸다 한다.

구봉산의 산행 코스는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는 양명마을에서 농장을 지나 몇 봉을 타고 내려왔다. 낙타 등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보이던 산은 직접 흙을 대이고 걸으니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느낌이 푹신하다. 육산(어머니의 품처럼 푹신푹신한 육질의 산)이라 그렇단다. 한 봉 한 봉마다 조금씩의 쉼을 가졌는 데 그때마다 선운산을 오르는 느낌을 함께 했다. 선운사를 가지고 있는 선운산이 오른쪽으로는 서해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새록새록 장면이 떠오른다.

구봉산 자락에선 양쪽을 다 볼 수 있다. 한 쪽은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을 볼 수가 있고 멀리 아파트 단지와 교도소를 볼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굽어보면 작은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다. 반대편 쪽으론 갑천이 흐르고 있다. 마치 에우르는 듯한 흐름은 그리 높지 않은 산 위였지만 내려다보는 것을 통해 자칫 거만해지기 쉬운 마음을 담가놓으라는 것처럼 보인다. 봉고차 한 대 보이는 걸 보니 천렵이라도 할 모양이다. 뭔가를 천변에 내놓고 부산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말 작다. 자연 속에서 녹아들지 못하면 마치 티끌처럼 보이는 게 사람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면 메아리처럼 곧장 만나는 경쾌함과 가끔 봄맞이 길에 데리고 나온 애완견의 발걸음까지 빠르다. 다른 곳과는 달리 구각정이 있어 갑천을 좀 더 조망하고 알맞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눈을 감아본다. 아아 이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좋은 산의 보호를 받고 사니 말이다. 남은 물과 과자부스러기를 나눠먹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아침을 적게 먹은 관계로 배도 고프고 일행 중 배앓이를 하는 친구와 함께 먼저 내려오기로 한다.

산행에서 가끔 그렇지만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엔 그 날의 피로를 풀기위해 거친 돌이 없다면 맨발로 내려오는 습관이 있다. 흙들이 깔린 계단을 내려오자니 갑자기 맨발로 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화를 벗어 배낭 양쪽에 묶고 양말을 벗어 챙겼다. 아직은 차가운 땅이었지만 왠지 생명을 품고 있는 듯 밟을 때마다 꿈지락거려 간지럽기까지 했다. 절반을 내려오니 묵은 소나무 잎들이 깔렸다. 조금 까칠했지만 잘 견뎌주었다. 마을 길이 나올 때까지 이십 여분이 넘게 맨발로 내려오니 발바닥이 흙빛이다. 계곡이라도 있었다면 탁족을 했을텐데, 지난 번 광교산을 내려오면서 차가운 물에 탁족하던 생각이 간절하다.

얼른 신발을 신고 내려오는 데 향기로운 쑥향이 봄볕에 짙다. 늦게 내려오던 일행과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몇 잎 땄다. 따다 보니 초등학교시절 연필깎이 칼로 동네 둑에서 쑥 캐던 일이 떠오른다. 볼은 발그무레하고 손등은 봄볕에 그을려 까칠했지만 작은 콧물을 삼키며 엉덩이가 아프도록 주저앉아 손수건에 캐담던 생각. 180cm가 넘는 키로 꾸부정하게 앉아 조심스레 봄을 캐는 남정네의 모습도 그렇게 어색해보이지 않은 것은 아마도 봄의 여유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멀리서 사람들 부르는 소리에 각자의 손아귀에 한 움큼 담고 씨익 웃는다.

산행기든 산행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둘은 쑥 한 줌을 어떻게 요리해 먹었는 지 꼭 글로 남기자는 약속과 함께 지친 몸을 이끌고 대전 시내로 들어왔다. 1인당 육천원하는 고기 부페를 가서 허기진 속을 채우고 7시 11분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앉자마자 일행 둘은 잠이 들고 난 버릇처럼 작은 수첩을 꺼내고 끄적거리고. 어스름한 저녁이 밤으로 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작아지면서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몸과 마음을 잠 속에 맡겨둔 탓이리라.

봄바람과 봄볕을 알맞게 맞은 몸은 못해도 한 달은 약 효과를 낼 것 같다. 도시에 뜬 달과 별을 등에 이고 다시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봄을 조금 뿌리며 걷는다. 일에 지쳐 도무지 짬을 내지 못한 님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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