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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그 대답은 어느 새 "예"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어.. 으.. 에.."하는 뜻 모를 말더듬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순간과 사고(思考) 사이의 충동적 기호. 그것은 거짓인가, 진실인가.

어쩌면 나는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웠다. 몽고반점의 그 핏덩이는 어느새 계란 한 판을 가득 채울 정도의 나이로 사라져갔다. (참고로 큰 계란 한판에는 계란이 서른 개)

나는 말했어야 했다. 세상에 나오기가 싫다고. 그러나 다른 이면의 나는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오기 싫다", "나오고 싶다" 그 때 나는 감지했다. 나에겐 악마와 천사같은 두 개의 영혼, 혹은 사슴과 승냥이 같은 두 개의 목소리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결국 확실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응애응애"라는 뜻 모를 말더듬 울음 속에서 세상의 빛을 쬐었다. 그리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살고 싶어 살고 있는지, 살고 싶지 않은데 살고 있는지, 내 삶의 추리(推理)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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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최인석
ⓒ 정의득
최인석의 소설 <구렁이들의 집>의 주인공은 구렁이와 인간의 교미로 태어난 말더듬이, 덤 마더퍼커(Dumb Mother Fucker). 그는 10개월이 아닌 10년 동안을 어미의 뱃속에 들어있었다. 그는 조로(早老)증에 걸린 사촌누나 순이를 사랑했으나 순간적 쾌감을 즐기기 위해 순이를 죽음의 벼랑으로 밀어 버린다. 사랑은 존재의 상실 뒤에 더 크게 차 오르는 것. 그는 스스로 구렁이가 되어 배밀이로 흙을 차고 담벼락에 올라선다. 도광지야(度廣之野), 도광의 들판에는 삶의 진실을 꿰뚫는 완전한 빛이 기다리고 있을까?

작가 최인석은 밑바닥의 언어들을 조합하고 격렬하게 사용해 인간의 양면성과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예'라고 말하는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일까, "아니오"라고 말하는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일까. 사슴이 말하는 곳에, 아니면 승냥이가 말하는 곳에 진실이 있는 것일까. 진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혹 진실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인간들은 튼튼한 두 다리로 삶을 지탱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진흙바닥처럼 거친 인생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양지의 빛을 태우려고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배와 등뿐인 주름진 마디마디를 괴롭게 돌리며 비벼대고 있지는 않을까. 산다는 것은 구렁이 배밀이처럼 고달프거나 느릿느릿한 것. 도광지야(度廣之野), 도광의 들판에는 구렁이가 살기 좋은 축축한 대지가 기다리고 있을까?

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진실 역시 발길을 떠나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예, 아니아니, 으.. 어.." 같은 기호의, 기호의, 기호의 말더듬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리뷰 포인트> 두 번 읽으면 소설의 의미가 한 눈에 보인다. <구렁이들의 집>은 책의 표제작으로 단편모음집인 책 안에는 '구렁이들의 집', '잉어 이야기',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 '포로와 꽃게', '봉천동', '그 찬란하던 날' 등의 소설이 구렁이처럼 한데 엉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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