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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4월 14일자에 오는 23일부터 방송되는 MBC 새 일일연속극 '결혼의 법칙'에 출연하는 탤런트 오연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먼저 '한겨레'에 실린 일일극 '결혼의 법칙'에 대한 소개는 이렇습니다.
'결혼의 법칙'은 중매결혼 뒤 남편과 사별한 50대 여성, 연애 결혼을 한 50대 부부, 각기 이혼 경력을 지닌 40대 남녀의 재혼, 이혼 뒤 재결합을 도모하는 30대 부부, 20대 연상연하 부부 등 여러 유형의 부부를 통해 가정의 갈등과 사랑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결혼에 대해 어떤 법칙을 마련할지 모르겠지만, 오연수 씨는 바람 피우는 남편을 보다 못해 여섯 살 난 딸을 남편에게 맡긴 채 이혼하는 여성역을 맡았습니다. 그런 오연수 씨에게 한겨레 기자는 드라마의 역을 실제 자신의 상황에 대입했을 경우 어떤 입장일 것 같느냐는 질문을 하고 이에 오씨는 답합니다.
"애 때문에 이혼은 못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오연수 씨처럼 "애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지난 번 대전대 권혁범 교수의 '주례사의 조건'에서 언급한 이혼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견을 내주셨는데, 여기 결혼과 이혼에 관한 현실 한 조각을 끄집어 내 봅니다. 이번 글은 그 이혼에 대한 아주 작은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어머니의 전략에 의한 ‘약혼여행’
'도저히 조율할 수 없는 가치관 차이'와 '성(性)격차'.
인터넷 컨텐츠 기획자로 활동 중인 이 아무개(38) 씨가 남편과 이혼할 당시의 '이혼 사유'였습니다. 이른바 '이혼녀'의 꼬리표가 붙었으니 그의 삶은 흔히 말하는 '실패한 인생'에 들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어떤 경로로 '실패한 인생'에 접어들었고, 어떤 '실패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남편과는 세 번 만난 후 약혼했고, 8개월 후 결혼했습니다. 이른바 '마담 뚜'가 중매했는데, 내 어머닌 그야말로 꺼뻑 넘어가셨죠. 인물 좋고 학벌 좋고, 게다가 셋째아들이었으니. 물론 약혼 후 많은 회의가 들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른바 남편이 갖춘 '바깥여건'이 그의 어머니를 끌리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 또한 당시 그가 속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결혼해서 편히 살자는 속내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남편의 학벌과 경제력 등이 그런 생각을 가능케 했으니까요. 그러나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전략에 의해 우린 '약혼여행'에 보내졌습니다. 그 때 난 그와의 잠자리가 무척 힘들었는데 그것이 이혼의 동기 중 하나였던 성적 트러블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리석게도. 이것은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성(性)에 무지했는가를 자책해 볼 일이죠."
이씨는 이 당시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씨는 "나 같은 여자가 더 이상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아끼는 이들에게 앞으로 구체적으로 들려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없는 결혼생활, 이혼이란 모험보다는 습관을
그렇게 맞이한 결혼생활….
"보통의 우리네 여자들처럼 나(自我)는 없었습니다. 결혼 생활 내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현실을 숙명처럼 여기며 습관적으로 살았죠. 부부간의 정서에 금이 갈대로 간 상태에서도 '사는 데 큰 불편만 없다면 이혼해서 겪을 온갖 것들을 왜 사서 겪지?'하며 이혼이란 모험보다는 습관을 택했습니다."
당시 이씨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내 감정이 내 삶이 뭐 그리 중요할까"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외적으로 보이는 가정의 모습보다는 아무 감정 없이 대하는 부부의 모습이 더욱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그릇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혼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씨는 별거중인 상태를 청산하고 이혼을 했습니다. 당시엔 아이들이 어려서 따로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볼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아이들은 이씨와 함께 살며, 한 달에 세 번 정도 아빠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혼할 당시, 이씨는 "모든 것에 좀 가벼워져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일부러 감정이나 생각 등을 가볍게 가지려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 영화 관람 등 취미생활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씨는 자신의 인생을 객관화시켜 볼 줄 하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혼 후,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
이혼 후 이씨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 문제입니다. 이씨는 이혼할 당시 아이들과 관련해 남편이 가졌던 문제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빠와 만나고 헤어질 때, 큰 아이가 속울음을 짓거나 작은 아이가 서운한 표정을 보면 기분이 찹찹해집니다. 가끔 '우린 왜 같이 살면 안 되지' 할 때 가슴이 미어지기도 합니다.
큰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이 꼭 내 탓인 것만 같고, 혹시 아이들이 잘 못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엔 둘 다 웬만큼 자라서인지 자기들이 내 맘을 미루어 짐작해서 내가 상처받을 만한 직접적인 말은 피하는 듯합니다. 이런 점이 마음 아픕니다. 아이답지 않은 것 같아서..."
이씨의 경제생활은 이혼한 남편이 보내주는 월 90만원의 아이들 양육비와 자신이 받은 월급으로 꾸려나갑니다. 전남편이 보내는 양육비는 주 3일 저녁에 아이들 돌봐주는 보모에게 주는 비용 30만원, 방과 후 아이들 탁아비 12만원, 사교육비 15만원 등으로 사용됩니다. 나머지 생활비용은 이씨가 마련합니다.
이씨는 아이들 아버지에게 조금 더 돈을 요구할까 생각했지만,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모자라는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3년여 전 IMF 때.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던 이씨의 일거리가 뚝 끊긴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몇 개월 만에 통장은 바닥났고 양육비 90만원으로 생활을 꾸리기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일당 4만 5천원 받는 파출부였습니다. 내가 그 일을 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요."
한때 서울 모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던 이씨가, 직업의 귀천이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파출부로 나섰을 때는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씨는 아이를 부양해야 할 의무는 엄마에게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이씨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이혼할 수 없는 자기방어구실로 삼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이혼해야 할 상황인데도, 사회적 편견을 두려워해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씨 역시 이혼 당시 얽히고 설킨 가족관계속에서 '그냥 이렇게 살아버릴까'하는 마음이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한 후에는 오히려 스스로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대단함은 자기보호본능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답니다.
"처음 인터뷰 때 아이 둘 딸린 이혼한 여자의 모습이 전혀 아닌 것에 놀랐다. 아이들을 책임지고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도 신뢰감이 들었다."
이씨가 직장 CEO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씨가 느낀 사회적 편견은 오히려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인구조사를 나온 조사원이 "세대에 남편이 없는데 어디 사느냐"고 묻는 질문에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는 "우리가 얼마나 획일화된 삶에 속해 있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혼했던 부모를 둔 한 여성의 고백
이씨의 고백은 직접 이혼을 한 당사자로서의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이혼한 경험을 겪은 '아이'의 입장은 어떤 걸까요.
현재 정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백아무개(25. 여)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한 경험을 가진 이입니다. 당시 백씨는 새벽에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깨 무서움에 떨다가 잠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 기억은 부모님이 자주 싸운 기억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당시 그는 이혼한 부모님에 대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혼한 후 백씨는 어머니와 살고, 남동생은 아버지와 사는 이산가족이 되었으니, 백씨가 "가슴속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백씨는 말합니다.
"지금도, 그 당시에도 생각하는 건 그때 부모님이 저희들 때문에 함께 살았다면 아마 저희 남매는 더욱 삐뚤어지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요. 나름대로 저랑 제 동생은 반듯하게 자랐지요. 부모님의 모습도 훨씬 좋아 보이고요."
백씨가 그처럼 말하는 데는, 혹여 부모님의 불화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오히려 이른바 '탈선'으로 내몰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 가정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청소년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렇게 집밖으로 떠도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는지는 짐작할 만할 겁니다.
사랑, 연애, 결혼... 택하든 택하지 않든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하고 맞부딪치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드라마 ‘결혼의 법칙’에서 그 어떤 법칙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결혼의 법칙이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다만, 그 결혼의 법칙 역시 결국 삶의 법칙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세상에 실패한 삶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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