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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은행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필요한 업무를 끝내고 은행을 나서면서도 그녀가 있는 곳을 또 쳐다봤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이제야 눈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곳엔 ‘여자 청원경찰’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구 남구 대명동 대구교육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조흥은행 대명동지점(지점장 안영수)에 근무하는 청원경찰 김윤정씨는 만 25세의 처녀 청원경찰. 지난해 11월 공개채용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해 건장한 여러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은행 청원경찰에 전격 발탁되었다.
“지원서를 보고 여자라서 경호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면접당일 김씨를 처음 봤을 때 그런 걱정은 사려졌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업무에 대한 철학이 명확하게 세워져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윤정씨를 면접하고 채용결정을 한 안영수(47)지점장은 밝고 명랑한 성격과 일에 대한 자신감이 합격 점수를 받게 된 요인이라고 말한다.
한 달에 서너 차례 김씨와 면담을 한다는 안 지점장은 남자 청경이 있을 때 보다 은행의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을 뿐 아니라 고객들도 만족해 여자 청경의 채용은 대 성공작이라고 자평한다. 그는 앞으로 여자청경이 다른 지점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술 유단자에게서나 풍길 법한 ‘도인의 향기’, 눈 깜짝할 사이에 총을 뽑아드는 서부영화 총잡이의 ‘민첩한 자태’, 궁예의 관심법을 이용해 수상한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읽어 낼 것 같은 ‘카리스마’가 그녀에겐 엿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스무살 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뛰기 시작한 10킬로미터의 조깅은 기본체력을 튼튼하게 만들었고, 수준급에 이르는 수영·사이클·배드민턴 등의 운동은 그를 민첩하게 움직이게 한다. 불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에 심취했던 동·서양의 철학과 명상은 마음의 본성(本性)을 관조(觀照)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면서, 작지만 무언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상대방에겐 중요한 일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작은 일들 속에서 세상사는 이치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됐어요.”
김씨의 주요업무는 객장 안내와 위험으로부터의 고객경호 그리고 입·출금 자동화기기를 관리하는 것. 요즘은 무인카메라 작동과 인근 파출소의 경비지원 등으로 인해 보안업무 보다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 분야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은행을 찾는 고객들에게 친절하고 친근한 인사말을 건네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업무에 도움을 주는 도우미의 역할이 더욱 필요해졌다는게 은행의 전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는 5월1일부터는 지금의 청원경찰 제복이 사라지고 정장스타일의 근무복을 입게 된다. 은행에 근무하는 모든 남·녀 청원경찰들이 입고 있던 지금의 제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떤 은행강도가 들이 닥쳐도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다”는 김씨는 퇴근 후엔 체력을 다지는 운동을 자주 한다. 업무의 특성상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
키 162㎝에 1남 4녀 중 막내인 김씨는 일찍 퇴근한다는 은행의 근무의 장점을 살려 여가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공부를 하며, 기회와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청원경찰 일을 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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