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가꾸는 모임(공동회장 최해군. 박인호)에서는 4월 21일 영도경찰서 직원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터에서 "한국의 애환 영도다리 철거 다시 생각하자"며 영도다리 철거에 따른 현장 시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행사장에는 주최측 관계자 50여명과 주민 등200여명이 공청회를 지켜보았는데 제1부 <여는 마당>에서 최해군 회장과 박대석 영도구청은 각각 인사말과 격려사를 통해 다 같이 영도대교 보존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최영철 시인은 "영도다리 1934에서2001"이란 시제로
난간마다 스며 있는 그날의 언약
너를 까뭉개려 오는 저 성난 문명의 질주
어쩌나 아, 어쩌나
가만히 와서 너의 발목을 부여잡는 파도
가지마라 길을 막아선 저 달빛의 통곡
이라며 다리 철거에 따른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었다.
김영호 한국 항만연구회장은 다리설계도와 다리를 치켜들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다리공사 진행 과정과 선박 운항 현황을 소상히 소개하면서 1934년 개통식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4학년 이상 개통식에 참가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학년을 속이고 개통식에 참석하였다고 당시를 회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2부 공청회에서는 토론자 모두가 역사적 유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에 한 입을 모았으나 안영기 부산시 도로계획과장만이 교통정체와 시설물 노후로 철거의 불가피성과 유물 보존에 따른 부산시 측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3부 행사에서는 "굳세어라 금순아"란 옛 유행가 가사를 "굳세어라 영도다리"로 개칭하여 부르면서 200마리의 종이 갈매기를 날리며 행사를 마쳤다.
영도다리는 일제시대 때인 1932년 착공하여 1934년에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육교로 길이가 214.63m이고 7개 교각으로 건설되었는데 공사중 17명의 인부가 사망하였으며 당시 공사비는 70만 8천원이 소요되었다고 하며 개통식 당시 거대한 다리가 하루에 2번씩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인근 김해, 밀양 등지에서 모인 인파가 6만 명이 되었다고 전한다.
영도다리에서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생활고에 시달린 많은 사람이 투신 자살을 하였고 8.15 광복, 6.25사변을 겪으면서 피난민들이 난간에 비친 초생달을 보면서 향수에 젖곤 했다.
다리 난간에는 갖가지 사연들이 빼곡이 적혀 있어 미관상 좋지 않다며 수시로 지우고 있으나 아직도 곳곳에는 "000사랑한다" "000에서 만나자" 등 여러 가지 사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일제 침탈기로부터 근래 IMF를 거쳐 지금까지도 생활고를 겪거나 실연당한 사람들이 찾아와 한을 달래고 있다.
영도경찰서에 의하면 요즈음도 영도다리를 찾아 투신을 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1-2명은 되며 얼마 전에는 실직자가 투신하는 것을 구조하여 귀가시켰으나 한달 후 다시 그 장소를 찾아와서 투신하여 결국 생을 마감했는데 시체를 찾는데 3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영도다리가 철거된다고 하자 많은 시민들이 향수를 달래며 공청회장을 찾아왔으나 철거 당사자인 롯데측이 불참하여 대안 없는 형식적인 공청회가 되었다며 서글픔만 안고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옛 부산 시청 자리에 롯데측이 106층의 롯데월드 건설을 추진중에 있고 6.25당시 피난민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가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역사적 유적 보존과 개발 이익을 함께 충족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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