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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책장을 휙 둘러본다. 몇 권 안되는 책들인데, 한 번 읽고 꽂아둔 책들, 아직 채 읽지 못한 책들, 그 가운데 사회과학 서적을 제외하고 두 번 이상 읽었던 책은 없다. 내가 두 번 이상 읽었던 책으로 기억나는 것은 신영복 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고작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같이 책읽기를 즐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그럴 만한 책들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에 내 수중에 있지 않다. 결국 책장에는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없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옮긴이-조경숙)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는 가슴에 고여 넘쳐흐르는 것들을 나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책을 여기저기 빌려주고 몇 권씩 사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없지만 난 그 기억을 잠시 더듬는 것만으로도 다시 '작은나무와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교육이나 육아에 관련된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한 대안교육 잡지에 소개된 이 책을 접한 것은 2년 전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점점 아이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지만, 단지 경험의 공유나 공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항상 욕구불만처럼 삐죽거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것, 진정으로 한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고귀한 생명과 영혼을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아이에 비해 너무 메마르고 욕심에 차 있고 조급했고 갈팡질팡이었다. 그 때 이 책이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인디언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속에서 살아가는 '작은나무'에게는 아무도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차분하게, 대지에 젖어드는 봄비처럼 촉촉히 서로에게 녹아들 뿐이다. 어린 '작은나무'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친구들, 개와 나무까지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훔치게 했다.
그들의 이름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삶에서는 덫으로 잡은 여섯 마리의 칠면조 중 작고 약한 세 마리만을 가져간다. 백인들의 법에 의해 고아원으로 보내진 손자를 데려오면서도 여섯 살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는 무한한 신뢰, 조건없이 아낌없이 나누는 할아버지 친구들의 사랑. 나이도 직업도 재산도 그 어떤 것도 이들에겐 서로의 영혼에 다다르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작은나무'의 맑고 건강한,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들의 영혼을 떠올려 본다.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우리의 아이들, 그 어린 넋들이 상처받지 않고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자기 세계를 이루어 나가길 바라는 부모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이 따뜻함이 전해지길 바래본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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